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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02. 2022

바람이 불어오면 6

소설

6.


 고층건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건물을 옆으로 세울 수 없으니 자꾸 위로 올리는 것이다. 최신 설비, 공기 정화, 인간의 쾌적을 위해- 같은 말이 고층건물을 지었을 때 따라붙는 말이다. 그럴수록 자연과는 동떨어지게 되며 니힐리즘에 빠질지도 모른다. 높이 올라갈수록 높은 곳에서 밑으로 떨어지려고 하는 사람도 늘어날지도 모른다. 자살을 위해 높은 곳을 찾는 사람들이 예전부터 늘 있었다. 떨어져 죽는 만큼 깔끔한 것은 없다. 실패가 없다. 약을 먹어도 제대로 죽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물에 빠져도 제대로 죽지 못한다. 하지만 50층에서 떨어지면 실패는 ‘무’에 가깝다. 실패가 없는 사람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다. 자살의 실패가 없는 것만큼 멋진 일은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높은 곳을 찾아서 몸을 던지는 사람은 세상에 만들어 놓은 질서에 이끌리지 않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나는 왜 ‘그럴지도 모른다’처럼 모호하게 말로 끝내는 걸까.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물처럼 철저한 관리를 요하는 아름다운 건물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한 사람이 없어지고 나면 더 이상 그 사람이라는 존재가 나타날 수 없듯이. 나는 승섭이의 부재 때문에 술을 마시는 일이 늘어났다.


 안도 다다오가 쌍둥이라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게다가 안도 다다오가 권투선수였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세상에 알고 나면 전부 흥미로운 일들이 가득하다. 승섭이만 봐도 그걸 알 수 있다. 승섭이는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까. 팬티 정도는 이제 네 손가락으로 빠르게 입을 수 있겠지. 우리는 그걸 대비해 연습을 했으니까. 그때 숨을 헐떡거리며 연습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도 다다오는 권투를 아주 잘했다고 한다. 그리고 건축가가 되었다. 권투를 잘하는 사람이 건축을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아니다 어쩌면 깊은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권투는 3분 동안 링 위에서 버텨야 한다. 건축도 그 세계에서 버텨야 한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은 기하학적이지만 그 속에 자연의 빛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언젠가 그녀의 웃는 모습을 안도 다다오의 롯코 집합주택을 배경으로 사진으로 담고 싶었다. 어째서 그런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을까. 알 수는 없다. 생각은 늘 알 수 없는 곳으로 흐른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만 생각은 밑에서 위로 솟기도 한다. 역류하는 하수구처럼. 생각은 그런 것이다. 생각을 많이 하면 할수록 생각이라는 흐름은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세계로 자꾸만 흘러간다.


 그때 밖에서 어떤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침대에 멍하게 누워있다가 고개만 살짝 들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밖에서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방문이 열리더니 비누향이 방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비누향은 이내 방안에 멈춰있는 퀴퀴한 공기의 틈을 악착같이 파고들었다. 비누향은 나에게 있어서 이성적인 감정을 매몰시켰다. 언어에 있어서도 정당한 의미도 사라지게 만드는 향이었다. 문이 전부 열렸을 때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선배의 그녀가 나의 자취방에 왔다.


 “밥 먹다 말고 먼저 가서 와 봤어요.”


 “전 다 먹어서.”


 “또 방에서 책 읽고 있었어요? 내가 방해가 된 건 아닌가요?”라며 그녀가 침대 옆으로 왔다. 비누향이 방 안의 모든 더러운 냄새를 압도했다. 나는 고개를 흔들며 아니라고 했다. 나는 앉은자리에서 조금 옆으로 옮겨서 앉았다. 방에서 엉덩이가 누릴 수 있는 곳은 침대뿐이었다. 승섭이가 오지 않게 되면서 방바닥은 그저 신발만 벗고 디딜 수 있는 공간이었다. 승섭이가 오면 방바닥에 걸레질이라는 걸 했다. 욕을 하면서.


 내 자취방의 방바닥이라는 건 방바닥으로써 아무런 기능이 없었다. 그녀의 무게가 침대에 실렸다. “무슨 책?”라는 말에 나는 안토니오 가우디의 책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는 책장을 한 장 한 장 천천히 넘기며 보았다. 그럴수록 비누향은 더욱 짙게 번졌다.


 “건축양식이 특이해요. 아름답구요. 스페인의 이곳은 너무 유명해져 버린 곳이군요. 전 너무 유명한 곳은 싫어요.” 그녀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 웃음을 가까이서 봤다. 방 안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건축은 의상 하고도 비슷한 면이 많은 거 같아요”라는 그녀의 말에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거기에는 백만 원짜리 웃음이 있었다.


 “둘 다 사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잖아요.”


 그녀는 긴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겼다.


 “건축이 나이가 많을까요? 의상이 더 나이가 많을까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이라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려 깊은 미소를 짓는 그녀 덕분에 방안의 죽은 공기 냄새가 사라졌다. 하지만 그녀의 미소 때문에 나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건축양식을 아르누보라고 불러요. 전 잘 모르지만”라고 나는 그녀가 책장을 넘기는데 방해되지 않게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탄포코!”라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무슨 뜻? 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전한 미소.


 “글쎄요, 무슨 뜻일까요? 스페인 말이에요.” 그녀는 답은 말해주지 않고 웃기만 했다. 초승달 같은 웃음인데도 환했다. 저 먼 하늘에서 수천 년을 그렇게 환하게 빛을 내준 달과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미소는 온전히 그녀의 것이고 그녀만의 그런 미소를 만들어냈다. 아주 오랜 후에 그 말이 탱고의 사투리 같은 말이라는 걸 알았다.


 “같이 먹으면 맛있는 반찬이 많은데 늘 혼자서 밥을 먹으려 한다면서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행복한 것만은 아닌 것 같아서.”


 그녀의 고개가 살짝 비스듬해졌다. 무슨 말일까? 하는 표정이었다.


 “다른 음식은 다 맛없게 느껴지니까요.”


 내 말에 그녀가 또 초승달 같은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남자가 혼자 사는 곳에서 다분히 나는 냄새가 나네요. 전혀 그렇지 않을 줄 알았는데”라며 그녀가 하얀 치아를 드러냈다. 입을 벌려도 좋은 냄새가 났다. 그녀가 옆에 앉아 있으니 내 감각의 척도가 제대로 인지를 분간할 수 없었다. 아마도 그녀와 나, 이렇게 둘만이 한 공간에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침대보를 손바닥으로 쓸어내는 시늉으로 그녀에 대한 대답을 대신했다.


 “사람들이 싫은 건 아니에요. 단지 어울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요. 선배에게 이런 말을 해봐야 소용이 없지만요. 선배는 계속 같이 어울리다 보면 나아질 거라고 했지만.”


 틈이 공간을 갈랐다. 기이하게 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전 뭐라고 해야 할지. 애초에 그렇게 생겨먹은 거예요. 살쾡이 새끼를 어릴 때부터 키워봐야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처럼 되지 못해요. 나의 내면에서 밀어내는 것 같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좀 잘 못 된 것, 읍.”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녀의 입술이 와서 닿았다. 키스는 아니었다. 그저 그녀의 촉촉한 입술이 메마른 나의 입술에 와서 살며시 닿았을 뿐이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나의 입술에 그녀의 입술을 올려놓았고 나는 놀란 눈을 하고 가만히 있었다. 입술의 움직임은 없었다. 맛을 느낄 수 없는 카스텔라를 입에 댄 것 같았다. 방 안의 공기도 멎어버렸고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던 제니퍼 원스의 ‘페이머스 블루 레인코트’만이 고요하게 굴러다녔다. 제니퍼 원스의 목소리는 빗소리에 잘 어울렸다. 빗소리는 레인코트가 제격이야,라고 말을 했고 빗소리와 제니퍼 원스의 노래는 하나의 스피어를 만들었다. 빗방울은 조금 드세져서 자취방의 작은 창에 날렵하게 와서 부딪혔다. 그녀의 입술은 나를, 내가 가보지 못한 기이한 곳으로 데리고 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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