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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04. 2022

바람이 불어오면 8

소설

8.


 하지만 그녀는 침착하게 내손을 지산의 티셔츠 안으로 이끌었다. 한동안 그녀도 내 손을 잡고 놓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그녀의 가슴은 한 손에 쏙 들어왔다. 유두의 감촉이 손바닥에 전해졌다. 손바닥을 움직이지 못하고 그녀의 가슴을 잡고 그대로 있었다. 입술과는 또 다른 부드러움이 있었다. 물론 고독은 더욱 짙었다.


 인간의 몸이라는 게 이렇게 부드럽구나.


 손바닥으로 따뜻한 감촉이 옮겨왔다. 동시에 바닥이 꺼지는 느낌이었다. 현기증도 들었다. 그것은 고독이었다. 필시.


 여자의 젖가슴을 처음 만져보았다. 그 처음이 선배의 여자의 가슴이었다. 나는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그녀의 얼굴이 어떤지 보지 못했다. 아마도 미소를 짓고 있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녀의 아름다운 미소가 보고 싶었다. 고개는 들지 못했다. 온갖 무게가 나의 고개를 꽉 누르고 있었다. 목이 꺾일 것만 같았다.


 고개를 들어야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걸걸하고 활발한 선배의 얼굴이 떠올랐다. 선배의 일그러진 얼굴이 스쳤다. 그녀의 가슴에서 손을 떼려고 했다. 그녀는 좀 더, 라는 말과 함께 그녀의 가슴에 대고 있던 내 손을 붙잡았다.


 “당신의 손은 여자 손 같군요.”


 내 속에 있는 내부의 시간성이 멈추거나 둔화되어서 퇴보했다. 느릿한 무엇이 내 몸속에서 혈관을 타고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있는 자취방이라는 공간이 먼 곳의 낯선 곳처럼 느껴졌다. 어떤 소리가 귀 안에서 들렸다. 근원적인 욕망이라는 것이 발아하고 있었다. 그 소리였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또 다른 나는 당연한 것이라 받아들이라고 침착하게 타박했다.


 그렇지만 떠오른 선배의 얼굴은 나를 위화감으로 내몰았다. 손바닥에 땀이 났지만 그녀는 함구했다. 나는 조금씩 손바닥을 움직여 그녀의 가슴을 만졌다. 작은 보풀처럼 그녀의 가슴에는 여리고 아름다운 세계가 있었다. 손바닥을 오므렸다 펴보면서 가슴을 문질러 보았고 손가락으로 유두를 느꼈다.


 그녀는 약간씩 몸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실이 내 앞에 딱 버티고 서 있었다. 의식을 통해서 할 수 있는 것이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었다.


 그녀가 내 앞에 있고 그녀의 가슴을 나는 만지고 있었다. 그녀의 보드랍고 작은 세계를 말이다. 내 마음을 유지하고 있던 총체적인 균형이라는 것이 조금은 무너졌다고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거짓말이라는 건 이래서 꼭 필요하다. 선배에게는 사실대로 말할 수 없다. 진실이라는 건 빈약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그녀의 작은 가슴과 입술에는 슬픔이 도사리고 있었다. 악착같이 그 언저리에서 머무르는 슬픔은 절대 거기서 빠져나오지 않으려고 했다.


 왜 그렇까. 도대체 왜 그렇게 느껴질까.

 인생이란 반드시 행복만이 가득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꾸준하게 행복하게 살다가 한 번 불행이 닥친 이들과 죽 불행하게 지내다가 한 번 행복이 온 사람이 있다면 어느 쪽이 좀 더 나은 삶일까.


 내 속의 총체적인 균형이 깨지듯, 그녀의 하나의 고통과 또 하나의 슬픔과 하나의 기쁨과 행복이 서로 평행하며 지내왔지만 그 균형이 깨져버렸다. 그녀의 가슴은 나의 손을 통해 그렇게 말했다. 가슴은 미미하나마 뛰고 있었으며 죽어서도 그 부드러움을 간직할 것 같았다.


 그녀는 나를 보며 자기 자신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나의 어떤 모습일까. 나 같은 인간에게서 그녀는 자신의 어떤 모습을 발견한 것일까. 그녀는 아름다웠고 밝았고 무엇보다 선배처럼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나와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가슴은 나에게, 손에 힘이 너무 들어갔다고, 힘을 빼라고, 살살 만져 달라고 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에 힘을 주고 있었다. 땀으로 흠뻑 젖은 손바닥으로. 나는 긴장하고 있었다. 긴장이 풀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매 순간 긴장하며 살아가고 있었을까.


 방안에 바람이 들어왔다. 방이 난방과 냉방에 취약했지만 바람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바람이 불어와서 방안을 어떤 기운으로 채웠다. 바람은 낯선 저편에서 불어오는 것이었다. 바람은 그녀를 위한 바람이었다. 그녀를 따라서 그녀의 공간에서, 그녀의 시간 너머에서 내가 잇는 자취방까지 그녀를 따라서 온 것이다. 언어를 잃어버린 채 나는 그녀의 온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바람에는 그녀의 비누향이 있었다. 스무 살 인생이란 좀 더 풀어헤쳐져도 상관없는 삶일지도 모른다. 긴장이 몸에 스며들어와 땀을 유발하고 목을 꺾고 하나의 냄새만 맡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가슴은 그녀만의 언어를 미묘한 문장으로 풀어냈다. 문장을 이으면 중편 소설 한 편이 나올 것 같은 직유가 가득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언어를 머릿속에서 나 나름대로의 형태로,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앞의 나날들이 두려웠다. 두려움 속에는 속 좋아 보이는 선배도 있었다. 선배를 생각하면 이러면 안 된다고 하지만 그녀의 가슴을 만지면서 그녀의 수 십 개나 되는 고통을 느꼈고 더불어 나의 통증도 느끼고 있었다. 고통은 희열을 동반했고 그 둘은 따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고리 같은 것이었다. 그녀의 옷을 벗기고 비 오늘 물구동이 속에서 온통 흙을 묻혀가며 거칠게 섹스를 하는 상상을 했다. 발기를 했고 나는 그녀의 가슴에서 손을 뺐다. 그 후에 나는 나도 모르게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고 말았다. 정확하게는 정신을 잃어버린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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