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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06. 2022

바람이 불어오면 10

소설

10.


 어린 시절에도 동물원에 가면 기린 우리에만 붙어있었다. 기린은 사람을 끄는 묘한 매력을 동물들 중에서 가장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 긴 목과 함께 가늘고 긴 다리가 그 모든 것을 지탱하고 있었다. 기린은 지구 상에서 가장 모순된 생명체다. 한 없이 길고 길어서 육식을 할 것만 같지만 쉬지 않고 풀이나 열매를 먹는다. 기린의 눈을 보고 있으면 기린은 자신의 모순을 받아들이고 있다. 기린을 보고 있으면 슬픔이 모든 것에 잔존해 있었다. 기린은 자신의 몸에 붙은 슬픔을 느끼며 기뻐할지도 모른다. 그래야 모순이니까. 모순에 모순을 거듭하면 균형이 맞아진다. 기린에 늘 끌리고 있었다.


 그녀가 기린을 보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브라보콘을 하나 주었다. 대기에 먼지가 많이 껴 뿌연 화면 같은 주말의 오후에는 기린을 잘 볼 수 없었다. 기린은 저 멀리 있었고 딱 한 마리가 나와 있었는데 어딘가를 향해 닿지 않는 곳을 보고 있었다. 브라보콘의 맛은 푸석하고 차가운 가을의 맛이었다. 선배가 화장실에 가고 우리 둘만 남아있으면 안절부절못했지만 그녀는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동물의 왕국에서 들은 이야긴데 기린은 헤엄을 못 친데. 거기다가 기린은 새끼를 제대로 낳을 확률이 37%밖에 되지 않아. 신기하지? 그래서 동물원에서 새끼를 낳는 날이면 동물원 직원들 전부 긴장을 하고 밤샘을 같이 한데. 대단하지?”


 '신기하지?'와 '대단하지?'는 비슷한 것 같은데 전혀 다른 말이다. 모두가 나와는 동떨어진 말이었다. 신기하면서 대단한 건 나에게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것들이다. 의미적으로 나에게 신기하고 대단한 것들은 대체로 호러블 한 것들이다. 그녀는 그 말을 하고서는 웃었다. 그녀는 유독 내 앞에서 웃음을 잘 보이는 것 같았다. 마치 너는 좀체 웃지 않으니 나의 웃음을 좀 가져가라는 식으로. 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머리카락에 가려졌던 귀를 드러내 주었다. 그녀의 귀에는 작은 귀걸이가 매달려서 반짝거렸다. 귀걸이는 그녀에게 선택되어 그녀의 귀에 매달려 반짝거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반짝임이 만져질 것 같았다. 나는 그만 손을 들어 그걸 만지려고 했다.


 그녀의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맑고 깨끗한 피부다. 이런 피부가 나이가 들어 주름이 점령하고 푸석해진다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래 그런 날은 너무 먼 훗날이다. 그런 날은 오지 않는다. 그녀의 피부는 정말 아이처럼 순수했다. 순수한 것들은 무섭다. 시간이 가장 순수하며 가장 무섭고 두렵다. 자연이 그렇고 아이들이 그렇다. 그녀가 무섭게 변할까 봐 덜컥 겁이 났다.


 그녀는 기억을 못 하는 것일까. 기억을 하지 않으려는 것일까. 애써 기억을 외면하는 것일까. 내가 간직하고 있는 그녀에 대한 작은 기억이 너무 선명한 걸까. 그녀는 진정 어른이 되어버린 걸까. 스무 살과 스물한 살. 그 차이는 무엇일까. 그 사이의 ‘골’에는 무엇이 흐르고 있는 것일까. 흐르는 그 무엇은 어째서 그녀에게 건너갈 수 없게 하는 것일까. 그런 사실이 있었는가 싶을 정도로 어느 순간엔가 소멸되어 버렸다. 그녀의 옆모습을 보면서 내 작은 기억이 없어졌다. 누군가 코드 선을 우악스럽게 뽑아 버린 것처럼.


 동물원에서 돌아와 우리는 자주 가는 주점 ‘숲’에서 술을 마셨다. 안주는 새로울 것도 없는, 늘 한결같은 대왕 계란말이였다. 계란말이는 숲의 특제 안주다. 식사대용이기도 했다. 뭘 어떻게 만들었는지 스펀지처럼 아주 부드럽고 뜨거운 밥과도 잘 어울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주인아저씨인 김 씨는 마를 갈아 넣는다고 했다. 김 씨는 우리보다 스무 살이나 많다. 하지만 서른 살은 더 많아 보이는 외모에 한 살도 차이 나지 않는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었다.


 “내가 결혼을 했다면 말이야, 이 가격에 너희들에게 이런 계란말이를 만들어 줄 수 없었겠지. 먹어라구.”


 김 씨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못 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김 씨는 남자들끼리 온 손님들에게 늘 같이 잔 여자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자주 바뀌었고 전부 김 씨에게 목매다는 그런 여자들의 전형이었다.


 우리는 주말에는 자주 동물원에 갔으며 돌아오면 숲에서 우리만의 지정석에 앉아서 계란말이를 씹어 먹으며 소주를 입 안으로 부었다. 김 씨는 뜨거운 계란말이에 케첩보다는 와사비가 더 어울린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계란말이는 세 명이서 먹기에도 많은 양이었다. 아마도 한 판을 다 쓰는 모양이었다. 술이 더 취하면 라면을 끓여 먹었다. 소주가 위장으로 내려가고 나면 뜨거운 계란말이가 입안에서 소주 맛을 재워 주었다. 곧이어 와사비의 킁 한 맛이 따라왔다. 그렇게 계절은 우리 곁에서 서서히 지나가고 있었다.


 “내가 조금 있으면 입대를 해야 하니 이 여자를 네가 잘 보살펴줘야 한다. 알겠지! 하하.”


 술잔이 몇 순배 돈 다음 선배는 잘생긴 그 얼굴로 나와 그녀의 일은 전혀 모른 채 그런 말을 했다. 나는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그녀는 멀지 않은 미래를 다시 갈 수 없는 아주 먼 미래처럼 생각했다. 그렇게 보였다.


 “당신이 입대를 하고 나면 우리 모두는 어떻게 변해 갈까”라며 조금은 취한 그녀는 미소를 잃지 않고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는(선배는 내 목에 자신의 팔을 둘렀다) 남자로! 넌 여자로 다시 태어나 있겠지. 하하 마시자!”


 어쩐지 질문에서 살짝 비켜간 듯한 대답이었다. 선배는 웃으며 말했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웃을 때 번지는 주름을 늘 보다가 웃음이 사라진 자리에 여흥을 남긴 주름 자국은 내 마음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모두 소주를 꽤 빨리 마셨다. 세 명이 모여서 술을 마시면 우리는 속도감 있게 소주병을 비웠다. 한국영화에서 소주병을 마구 비우는 모습을 본 미국 영화 기자들이 도대체 저 녹색병은 뭐기에 사람들이 울면서 자신의 내면을 다 드러내는 거야? 도대체 왜?


 소주는 평소에 꺼내지 못했던 말을 꺼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럼에도 나는 늘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숲에서 술을 마시고 취기가 오를 때쯤이면 테이블에는 학생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물론 우리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말이다. 술이 올라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술을 마셨고 작은 소리가 큰 소리로 바뀌었고 사회를 비판하기 시작하면서 김 씨의 움직임도 아주 분주해졌다. 내 모습은 그 속에서 방황하고 있었고 혼잡함 속에서 쪼그라 들어갔다. 단순한 내가 복잡한 사람들의 언어를 받아들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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