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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07. 2022

바람이 불어오면 11

소설


11.


 다른 테이블 술자리에서 학교 내 비리에 대해서 학생들은 이야기를 했다. 대의원 학생들로부터 흉흉한 소리가 번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흉흉한 소문이 아니라 흉흉한 사실이었다. 총장은 사람들의 선택을 받은 선출직이 아니라 임명직이라는 것과 그 총장이 올해 들어 갑자기 입학에 관한 학교 교칙을 바꿔가면서까지 학생 몇 명을 부정 입학시켰다는 소리가 돌았다. 고요하게 지나갈 수 있었던 이 사건은 그 학생이 지역 국회의원의 지식이라는 소리가 나돌면서 대의원 학생들이 학생부에게 건의를 했고 학생부에서 조사에 들어갔다. 그러면서 소문은 사실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출혈이 있었다. 학교 측과 마찰이 있었고 마찰이 일어나면서 투쟁하던 학생 한 명이 학교 측에서 데리고 온 사람들에 의해 밀리면서 벽에 머리가 부딪혀 중환자실에 들어가 아직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학교의 학생들이 들고일어나게 되었다. 부정입학으로 들어온 학생은 성적이 되지 않았음에도 학점을 제대로 받고 있었고 그 사이에는 자본이 오고 갔을 모양이었다. 일파만파 커져간 학교의 문제는 사회문제로 이슈가 되었고 방송국까지 불러들였다.


 이 사건을 언론에 제보한 학생부 학생 한 명이 학교에서 이어지는 도로의 20킬로미터 끝에 있는 터널에서 사고사를 당했는데 석연치 않았다. 경찰이 오고 갔지만 경찰들도 소극적인 수사로 마무리를 힘으로 학생들뿐만 아니라 부모들과 지역의 주민들까지 합세해서 시위에 동참하게 되었다. 지역 국회의원이 이 사실에 깊게 개입이 되어 있었고 사건은 점점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면서 경찰들도 부패한 것이 탄로 났다.


 학생부의 학생들은 총장실 앞에서 시위를 했고 일반 학생들도 점점 늘어나면서 학교는 수업의 진행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학교의 총장은 대선을 앞둔 거대 기득권 국회의원과 연결이 되어 있어서 총장의 사퇴는 국회의원에게도 타격이 가해질 판이었다. 학교에는 수많은 유인물이 흩날렸고 아침부터 밤까지 시위를 했다. 자취촌에 있다가 학교에 올라가면 가는 투쟁하는 학생들에게 이끌려 그들과 같은 대열에 서서 투쟁을 했다.


 어쩌다가 내 얼굴이 언론의 사진에 노출이 되면서 부정적이 영향을 끼치는 학생으로 낙인찍혔다. 반사회적인 학생이라는 기운이 강하다고 학교 측에서는 인정을 했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팻말을 들고 있다가 잠시 앉아 있을 때 진압대가 밀려 들어왔다. 아수라장이었다. 하늘에는 여러 가지 색깔의 종이들이 날아다녔고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귀 안을 우악스럽게 파고들었다. 그 사이를 학생들의 절규가 틈을 벌렸다.


 새들이 날아가면서 하늘의 노을도 같이 묶어서 가버리고 나면 해는 어느새 서산 너머로 숨어버리고 하늘의 색이 바뀌는 날이 되었다. 그러고 나면 온도가 떨어졌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가 싶더니 밤이 되면 외투를 껴입어야 할 만큼 추워졌다. 바람이라도 불면 뼈마디가 으스스 떨려왔다.


 총장은 결국 악마의 눈물을 보이며 사퇴했고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더불어 거대 기득권의 국회의원도 수사를 받았지만 어쩐 일인지 풀려나서 대권주자 대열에 이름을 올리고 계속 국정을 본다는 발언으로 활동을 했다. 지난 과오는 잊고, 라는 말이 사람들에게 퍼지더니 지난 과오를 사람들은 잊게 되었다. 나는 시위를 하다가 다리를 좀 다쳤지만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했단. 나는 이후 미묘하지만 다리를 조금 절었다. 썩 불편한 점은 없었지만 후에 나는 이 불편함 때문에 어딘가에서 불행한 일을 당 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당연하지만 알지 못했다.


 자취방에서 카포티의 ‘밤의 나무’를 읽었다. “그래서 내가 기타를 좋아한다니까. 버스에 타면 사람들이 얼간이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지. 하지만 기차는 사람들이 자기 패를 다 보여주는 곳이니까”라는 문장을 좋아해서 읽고 또 읽었다.


 잠이 오지 않아 돈을 긁어서 소주를 마시러 ‘숲’으로 갔다. 평소에는 괜찮았지만 긴장을 하면 나는 나도 모르게 다리를 미묘하게 절었다. 가난하다고 하지만 대학생들은 술을 많이 마셨다. 돈이 없어서 술을 마실 때는 용기처럼 돈이 튀어나온다. 그래서 이상하지만 대학교 근처에는 여성들이 칵테일 같은 것을 만들어주는 ‘바’가 많이 생겨났다. 나는 그 사이를 피해 ‘숲’으로 향했다. 29인치의 허리가 28인치로 줄어들었다. 내 감정을 추스를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차가워진 계절에 소주를 위장에 부으러 갔다. 그러고 나면 아마도 카포티의 소설 속처럼 기차를 타고 패를 다 꺼내 보여줄 수도 있다. 몸무게는 그동안 더 줄어들어서 여학생과 싸워도 이기지 못할 정도로 민망해졌다. 주말에는 씻지도 않았다. 어차피 학교에 가기 전에 씻을 텐데. 치약이 아까워서 양치질도 하지 않았다. 책을 한 손에 들고 그저 침대에 누워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는 시간이 더 늘었다. 가끔 다리가 욱신거릴 때 일어나서 다리를 주물렀다. 최소한의 움직임만 하면 허기를 면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배고픔을 참을 수 없을 때면 통장의 잔고를 뽑아서 ‘숲’으로 대왕 계란말이를 먹으러 갔다.


 그녀의 슬픈 잔존 감은 어째서 내 방에서 빠져나가지 않고 보이지 않는 형태를 지닌 채 방에 틀어박혀서 나를 내려다보는 걸까. 섬세함을 지닌 채 배려하는 얼굴을 하고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뜬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녀의 부재가 남긴 그녀의 잔존은 방안에 스며들어서 내내 나에게 그녀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상상 속의 그녀는 슬픈 얼굴을 하고선 나에게 가슴을 내어 주었다. 보드라운 가슴을, 아름다운 가슴을.


 작고 초라한 방에 혼자 있지만 그녀가 나를 쳐다본다는 느낌 때문에 덜 외로웠다. 퀴퀴한 자취방이 좋아지기는 처음이었다. 그럴수록 깊은 고독으로 빠졌다. 나는 몸을 아기처럼 말고 그대로 잠이 드는 경우가 잦았다. 시간이 갈수록 익숙해져 갔다. 시간이란 무서운 것이라 시간이 가지는 의미 속에 나 역시 녹아들었다. 나는 설탕이 되어 뜨거운 물에 융해되었다. 따뜻함으로 그녀의 시선은 나를 안아 주었다. 보드라운 그녀의 가슴을 나는 만지고 싶었다. 이제 자취방에서 냄새를 풍기는 컵라면도, 그보다 냄새가 덜 한 골뱅이 캔도 따지 않을 것이다. 승섭이 녀석도 오지 않는 자취방에 오롯이 그녀의 향이 남아서 나를 내려다볼 수 있게, 그렇게 해 놓을 것이다. 그녀가 내 방에 다녀간 이후 방 안에서 수음도 잦아졌다. 하고 나면 밀려드는 표현할 수 없는 무게 때문에 몸이 짓눌리는 기분이었다. 기분이 아주 나빴다. 나도 모르게 방바닥에 침을 뱉었다. 시간이 좀 지나면 그런 기분 따위 잊어버리고 그녀의 가슴을 생각하며 또 수음을 했다. 나도 모르는 굶주림. 그것을 풀어헤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했고 그러려니 하지도 않았다. 아마도 그 굶주림을 선배나 그녀는 보았을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나를 풀어주려고 했겠지. 왜? 어째서? 그들이 나를 마음대로 하려고 하지? 순간 화가 났다. 카세트 플레이어를 벽에 집어던졌다. 곧 후회를 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했던 어리석은 행동 중에 가장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자취방에서 유일한 사치인 음악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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