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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15. 2022

돌아온 얼음 사나이

하루키 오마주


돌아온 얼음 사나이 - 하루키의 단편 '얼음 사나이' 후편을 상상해서 적어 보았다


 극장 안이 휑하니 썰렁했다. 필요 이상으로 크고 어둡고 축축하고 불안하게 굴절된 냄새가 군데군데 났다. 그건 사람들이 신발 바닥에 묻혀 달고 온 비의 냄새였다.


 나는 일인용 자리에서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하고 미동도 않은 채 어깨를 움츠리고 다리를 꼬고 팔짱을 끼고 앉았다. 화면에는 스크루지 영감이 고스트에 의해 과거로 끌려가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극장을 감도는 축축한 냉기가 점점 심해졌다.

 숨을 토해내는데 입김이 하얗게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극장 안이 꽤 춥군. 하고 생각했다.


 어때? 영화는 재미있는가?


 고개를 돌려보니 남극으로 아내와 같이 가버렸던 얼음 사나이가 내가 앉은 의자 옆 계단에 앉아 있었다.


 스크루지 얘긴 걸. 자네가 와서 그런지 극장 안이 몹시 춥군.


 얼음 사나이는 모호하고 투명한 눈빛으로 스크린 쪽을 바라보았다.


 자넨 왜 돌아왔는가?


 나의 물음에 얼음 사나이는 무엇인가 말을 하려는 기미를 보이다가 다시 스크린을 응시했다.


 밖은 비가 오는데 왜 혼자서 스크루지 같은 영화를 보고 있지?


 응시하고 한참 지난 후 스크루지가 과거의 자신을 보는 장면이 나올 즈음에 얼음 사나이는 힘겹게 물었다. 얼음 사나이가 말을 할 때마다 닿을 수 없는 깊은 하얀 숨을 토해냈고 극장 안은 점점 남극의 기운으로 떨어졌다.


 글쎄, 그건 아주 바쁜 가운데 약속이 일그러져 비어있는 공백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하다가 이렇게 되어버린 것 같군. 덕분에 자네는 나를 찾아 이곳으로 왔지 않은가.


 내 말에 얼음 사나이는 힘겨운 미소를 지었다. 미소는 더 이상 사교적이지 않았다.


 난 곧 가야 하네. 아내가 임신을 했어. 처음에 갔을 땐 좋았지. 하지만 아내는 그곳에서 적응을 못하는 것 같네. 그것은 심리적인 경향을 말하는 것이네. 아내는 과거라는 것을 가지고 있지. 모든 과거를 말이네. 과거가 없는 나와는 달라. 과거를 봉인한 나와, 과거가 없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아내에게는, 까지 말하고 얼음 사나이는 숨을 쉬었다.


 아내는 배 속에 아기를 그저 얼음 덩어리로 생각을 하고 있네. 아내는 아기가 반은 자신을 닮아서 마음까지 얼어있지 않으리라 기대하고 있었네만.


 나는 팔짱을 더 끼고 몸을 더 웅크렸다.


 영원한 과거, 그 헤아릴 수 없는 무게가 옭아매고 있는 아내는 그 덫에 점점 더 깊게 빠져 들어간다네. 그럴수록 과거가 아내를 누르고 있네. 나는 아내에 대해서는 모든 걸 알 수가 있네.


 잠시 틈이 있었다. 틈으로 차가운 냉기가 몽실몽실 구름처럼 퍼졌다.


 얼음이 된 고독한 나의 눈물을 아내는 입으로 녹인다네. 아내의 온도가 변하고 있어.


 나는 어렴풋이 얼음 사나이가 남극에 가게 된 경위를 떠올려봤다.


 그렇군,라고 나는 짧게 대답을 하고 얼음 사나이에게 악수를 하려다 다시 팔짱을 꼈다. 그는 내가 앉아있는 의자를 붙잡고 일어났다. 의자의 손잡이에 살얼음이 꼈다. 그의 움직임에 극장 안은 마치 냉동고가 된 것 같았다.


 또 언제 올 텐가?


 우물 밑바닥에 돌을 던지고 바닥에 닿는 시간이 흐른 후.


 언젠가.라고 얼음 사나이가 대답했다.

 

 얼음 사나이가 떠난 후에도 극장 안은 냉기로 인해 몸은 떨렸고 영화를 보는 몇몇 안 되는 사람들이 허연 숨을 토해내며 기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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