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에세이
하루키 에세이 ‘하루키 일상의 여백’의 북커버는 이렇게나 촌스럽다. 이 책 보다 더 촌스러운 북커버는 ‘하루키 여행법’이다. 이렇게나 촌스럽게 북커버를 디자인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이게 유니크해서 이런 예전 버전을 찾는 하루키 마니아들이 생겼다고 한다.
이렇게 촌스러운 북커버 덕분에 친근하게 느껴진다. 디자인이 마치 이제 일러스트나 포토샵을 배우고 갓 직장에 뛰어든 사회 초년병이 디자인해 놓은 것처럼 날 것 같다. 이 폰트도 넣어보고, 이 정도 크기도 한 번 집어넣어보고, 다 같이 한 번 해보자.라고 해서 만들어 버린 북커버의 디자인 같다. 그래서 촌스럽지만 그래서 세련돼 보인다.
이 책은 정사각형에 가까운데, 정확한 정사각형은 아니다. 일반적인 책의 비율에서 벗어났고 그렇다고 정사각형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니라서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레어템이 될지도 모르는 책이다.
추천의 말을 장석주 시인의 글로 시작한다. 한때 문학사상사에서 나오는 하루키의 출판물은, 소설이고 에세이고 추천사에 장석주 시인이 글을 썼다. 단편 소설집 ‘신의 아이들은 춤춘다’에서도 장석주 시인의 추천의 말로 시작을 한다. 장석주의 글을 읽는 재미도 있다. 장석주 시인의 시만 읽어서는 하루키와 어떻게든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장석주는 또 문학평론가이기도 해서 그런지 하루키의 문체에 대해서, 그의 문학 세계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장석주 시인은 시인이나 문학평론가로도 유명하지만 언젠가부터는 박연준 시인의 남편으로 더 유명한 것 같다. 박연준 시인도 장석주 시인의 아내로 유명하기도 하고. 두 사람의 나이차 때문에 두 사람은 유명하게 되었다. 박연준 시인의 시와 산문은 명치끝을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날카롭고 아픈 구석이 있는데 인스타그램의 일상에서는 아주 깨발랄해서 좋다. 전혀 어른스럽지 않다.
어른이라는 건 되고 싶지 않아도 언젠가는 어른이 되어 있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늘 진지하고 진중하게 말하고 다녀야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하는 말이나 어떤 행동이나 사람들과의 관계나 담아내는 사진에게 농담이 섞여 있고 철이 없다고 해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죽 철 없이 지낼 거야. 남들에게 말 못 할 불안을 가득 안고 매일 아슬아슬하게 지내고 있기에 그걸 잠시 라도 잊기 위해서는 철들지 않고 지내는 것뿐이야. 그 방변으로 글을 쓰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모두가 아는 이야기 말고 모르는 이야기, 나만 간직한 이야기, 깜깜한 이야기, 빛과 어둠이 아니라 그늘과 옅은 그림자에 대한 글을 지치지 않고 쓰고 싶어. 저를 비롯해서 글 쓰는 걸 멈추지 마세요,라고 하는 것 같다.
장석주 시인이 말한 것처럼 하루키의 ‘가벼움’ 속에는 하찮은 것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가득하다. 그건 하루키의 여러 에세이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 큭큭 하며 웃게 되는 포인트가 마음의 위로를 한다. 그런 하루키의 시선은 우리가 보통 가지고 있는 일종의 이타성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하찮은 것들을 위해서 방탄소년단도 노래를 불러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책을 읽다 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있는데 오래된 책이라 그런지, 아니면 이 책만 그런 건지 글과 글 사이의 간격이 뒤죽박죽이다. 간격이 일정하지 않은 건 물론이고, 그 간격이 조금씩 다르다. 간격이 아주 짧은 것부터 강처럼 아주 길게 벌어진 간격도 있다.
이 책의 타이틀이 ‘달리기, 고양이, 여행’이다. 하루키의 루틴 같은 생활의 습관과 태도를 통해서 여백을 채워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 달리기에 관한 부분은 달리기 에세이 ‘달리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전초전 같은 모습이다. 하루키가 달리는 것에서 느끼고 얻는 것에 대해서 잘 말하고 있다.
나 같은 경우가 10년을 넘게 거의 매일 한두 시간씩 달리고 있는데, 주위에서 가끔 하루키를 얼마나 좋아하면 하루키처럼 매일 달리냐,라고 하는 말을 듣는데, 하루키를 좋아해서 조깅을 매일 하는 것이 아니라 달리는 게 좋아서 매일 조깅을 하는 것인데 사람들 중에서는 편견을 가지고 그렇게 말을 하기도 한다.
하루키 빠에다, 조깅 마니아인 소설가 김연수도 하루키를 따라 하고 싶어서 달리는 게 아니라 조깅이 좋아서 달리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그건 김연수의 달리기 에세이 ‘지지 않는다는 말‘을 읽어보면 잘 나온다. 김연수 소설가도 하루키처럼 번역을 하기도 했다. 여러 모로 하루키와 닮긴 닮았네.
하루키의 이 책에서는 어떤 무언가를 설명하는데 길게 하지 않는다. 간결하고 간단하게 끝낸다. 그런데 어? 더 궁금한데?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애초에 술렁술렁 읽어주세요,라고 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또 포인트는 적확하게 집어낸다.
재미있는 것은 글의 내용과는 조금 다른 사진들이 책 사이사이에 있다. 근 몇 년 동안 나오는 하루키의 에세이에는 그런 점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이 책에는 로드킬을 당해 죽어있는 아르마딜로의 사진을 조그마하게 삽입을 한다던가, 다람쥐에 대한 사진도 아주 작게 삽입을 해놨다. 놀려 먹는 공간이 없도록 하겠다! 뭐 이건가? 싶기도 하고. 게다가 교미 중인 다람쥐에 대한 설명은 진지하다. 하긴 저들은 진지하게 교배를 위해 교미를 한다.
인간처럼 쾌락을 위해 교미를 하지 않는다. 설명에는 하루키도, 진지하게 대낮에 일을 벌이고 있는데 싱글벙글 웃으며 일을 벌이면 곤란하다고 했다. 다람쥐를 관찰했던지 검은 다람쥐는 검은 다람쥐끼리 사귀고 갈색 다람쥐는 갈색 다람쥐끼리 사귀는 것 같다고 했다.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맞는 건가. 여기까지가 초반인데 뒤로 갈수록 큭큭 거릴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점점 불어난다.
오늘의 선곡은 릴스 최고, 요즘 가장 인기 있는, 무엇보다 노래가 너무 좋은, 미나 오카베의 에브리 세컨드 https://youtu.be/5zjTR7BVV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