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Oct 04. 2023

사진관 살인사건

소설과 영화의 차이?


영화 넘버 3에서 재떨이와 야쿠자 이인자와 룸의 살벌한 대기에서 야쿠자가 홍콩도 중국에 반환되었는데 독도도 일본 땅이라고 우긴다. 그래서 재떨이가 독도는 우리 땅 노래를 한 번 읊으면서 독도가 누구 땅이냐고 재차 묻는 장면이 있다.


영화가 나온 게 97년돈데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하면 조폭건달도 열받아서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예전에 안정환이 일본 리그에서 뛰고 있을 때 경기에 출전하러 경기장에 들어가는데 기자가 독도는 어느 나라 땅입니까!라고 물으니 1초도 망설임 없이 독도는 한국땅!라고 했다.


최근에는 일본 구독자가 취소하든 말든 쯔양이 자신의 영상 자막에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근래에 먹고사는 게 힘들어서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못하는 분위기지만 미국이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했는데 받아들이는 이 분위기 정말 이상하다. 이러다가 영화 속 조폭들도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말했다가는 이상하게 몰고 가지는 않을까.


영화 이야기가 나온 김에 예전 영화 중에 ‘주홍글씨’라고 있다. 이 영화를 찍고 이은주가 목숨을 끊었다. 영화를 보면 엄지원이나 이은주는 그 역할 때문에 첼로나 피아노나 노래나 엄청나게 연습을 했을 것이다. 이 영화 때문에 이은주 배우를 잃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뭘 말하는지 모호하고 그저 야하고 변태적인 모습에만 초점을 둔 장면만 가득하게 보인다.


이 영화는 김영하 소설가의 ‘사진관 살인사건’이 원작이다. 정확하게는 99년에 티브이 단막극으로 먼저 ‘사진관 살인사건’이라는 동명제목으로 원작을 극화했다. 단막극은 김영하의 소설대로 흘러간다. 사진관에서 남편이 죽고 그의 아내가 의심을 받는다.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아내, 지경희 역으로 김서라가 나오고, 그녀를 조사하는 형사로 김갑수가 나온다.


이 이야기는 겉으로는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아가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인간의 욕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갑수 즉 김형사의 아내는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웠고 김 형사는 아내와 바람을 피운 남자의 머리에 총구멍을 대고, 남자는 오줌을 줄줄 싸고, 아내는 불륜 남자가 싼 오줌이 묻은 이불을 맨발로 빤다. 그 후로 아내는 영혼이 나간 것처럼 행동을 한다. 다른 사람이 된다.


지경희를 취조하는 과정에서 그녀와 그녀의 사진을 담으면서 사진관에 자주 오는 아마추어 사진가도 등장하는데 이들 모두 겉으로는 내뱉을 수 없는 또 다른 욕망이 있다. 그건 김 형사 역시 마찬가지다.


참고로 방탄소년단의 정국이 낸 세븐의 내용은 말랑말랑한 내용이 아니다. 일주일 동안 지쳐 쓰러질 때까지 사랑을 나누겠다는 이야기다. 마지막까지 다 짜내서 밤마다 사랑을(아주 순화해서 하는 말이지만) 한다는 아주 야하고 무척 야한 이야기다.  


마돈나가 세상에 야한 노래를 들고 나왔을 때 인간의 욕망을 이렇게 노래로 표현하는 걸 막지 마라, 니들이 나를 막아도 나는 하겠다. 라며 마돈나는 자신의 노래와 뮤직비디오에 자신만의 세계를 과감하게 가감 없이 담았다.


무척이나 야해서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은데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듯 노래를 들어보면 세븐이나 마돈나의 노래나 자연스럽게 흡수가 된다. 그건 아마도 아티스트의 재능이 그 역할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김영하의 소설 ‘사진관 살인사건’을 읽어도 그렇다. 전혀 야할 것 없는 이야긴데 읽으면 이야기 그 너머의 인간의 욕망에 대해서 손으로 만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왜 그러냐 한다면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욕망이 있다. 내 것이 있지만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한 성적 호기심도 있고, 말로 꺼낼 수 없는 나만의 성적 판타지도 있다. 이 욕망은 본능에 가까운 것으로 사회생활이 부족할 정도로 인지가 안 되는 사람도 성적욕망을 푼다. 풀어야 하고.


예술이란 이런 욕망을 드러내기를 주저 없이 하지만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해야 한다. 안 그럼 외설이 되니까.


단막극과 소설의 마지막은 좀 다르게 끝이 난다. 소설의 마지막에는 김 형사가 아내의 맨발을 만지면서 끝난다. 그 더러운 이불을 빤 아내의 발을 만지면서. 이 이야기는 지경희와 사진작가, 그리고 김 형사. 이 세 사람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등장하는 네 명의 남녀가 인간을 대변하듯이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https://youtu.be/vBDwGgQqs2Y?si=qc98NaSgu7NW1w0y

KBS 같이삽시다

소설도 무척 재미있고 단막극도 아주 재미있다. 잘 만들었다. 그러나 몇 년 후에 영화 주홍글씨로 다시 나오면서 비극이 된다. 주홍글씨는 원작이나 단막극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못한다.


변혁 감독이 김영하 소설가의 ‘사진관 살인사건’과 ‘거울에 대한 명상’ 단편 소설을 섞어서 만드는 바람에 이도저도 아닌 영화가 되어 버렸다.  


욕망을 드러내는 방식이 위에서 세븐이나 마돈나, 김영하 원작 소설이나 단막극과는 다르다. 표층적으로 드러나는 방식이 너무 과하다. 그저 ‘거울에 대한 명상’으로만 영화를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거울에 대한 명상은 동성연인인 두 여자와 그 여자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한 남자의 이야기. 두 여자는 학창 시절에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다. 아픔을 나누면서 두 여자는 사랑을 한다. 그런데 한 여자가 그를 만나면서 두 여자의 사랑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거울이라 여겼던 한 여자의 배신으로 한 여자는 보란 듯이 그와 결혼을 한다. 그는 버려진 차 트렁크에서 한 여자와 갇혀 죽으면서 세상에 거울은 없다고 소리를 지른다.


주홍글씨는 이런 바탕으로 시작하여 그 속에 사진관 살인사건이 벌어지면서 드러나는 인간의 욕망, 그 설명할 수 없는 건조하면서도 축축한 인간의 속내를 말하는 이야기다. 김영하 소살가의 ‘사진관 살인사건’ 단편 소설을 올려본다. 이 소설은 단편 소설집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에 수록되어 있다.



사진관 살인사건         -김영하     

살인 사건은 왜 일요일에 자주 발생하는 것일까. 글쎄 정확한 통계야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 경우엔 그랬다. 일요일. 그것도 비번인 날에 자주 터진다. 집에서 쉬고 있다가 불려나가서 더 그런 느낌이 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 사건도 일요일에 터졌다. 아내와 함께 교회에 나가 지루한 설교를 듣고 있는데 삐삐가 왔다. 빌어먹을. 과장이었다. 호출기에는 과장의 고유번호 3143과 살인사건 코드 01이 함께 찍혀 있었다. 과장은 그런 식으로 삐삐의 집단 호출 기능을 이용해 수사관들을 불러들인다. 강도는 02, 강간은 03. 그 외의 사건은 모두 04다.

“들어 가봐야겠어. 사건이야.”

  아내는 돌아보지 않았다. 찬송가가 시작되었고 모두들 한껏 엄숙한 표정으로 입을 모아 노래했다. 나는 아내의 어깨를 한번 잡아주고는 교회를 빠져나왔다. 아내와 나 사이엔 예수라는 남자가 가로막고 서 있었다. 그때부터다. 아내의 몸에서 뭔가가 빠져나간 뒤의 일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예수라는 남자가 너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끊임없이 죄를 고백하게 만든다. 울고 웃게도 한다. 그건 내가 아내에게 해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예수는 내가 권총으로 위협할 수 도 없는 자이다. 물론 내가 총을 겨눈다고 오줌을 지리거나 하지도 않겠지만.

  교회 주차장은 만원이었다. 그곳에서 차를 빼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경비원에게 오천 원을 집어주자 그가 핸드 브레이크가 풀린 차들을 이리저리 밀어 길을 내주었다. 그 비좁은 길을 곡예 하듯 빠져나와 구십 도로 절하는 경비를 뒤로한 채 달렸다. 경광 등을 올려 달고 액셀러레이터를 냅다 밟았다. 현장 상황이 급한 건 아니었다. (사람이야 이미 죽지 않았는가.) 급한 일은 따로 있었다.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보고서만 수십 장을 날려야 한다. 우선 시체를 검안하고 간단한 증거를 수집한 후에 재빨리 서로 돌아와 청 상황실로 속보를 보내야 한다. 검찰에도 보내야 하고 국과수로 협조 의뢰도 해야 한다. 여하튼 피곤한 일이다. 그저 한 명만 죽어 있기를 바랄 뿐이다. 사람이 두 명이면 보고서도 두 배가 되니까.

  과장은 사우나라도 하다 왔는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다. 비번인데 불러내서 미안하다는 의례적 인사 따위는 서로 잊은 지 오래다.

“빨리 왔네. 현장엔 조형사가 나가 있는데, 살인 사건 처음이잖아. 자네 오는 대로 보내나고 했으니까 우선 현장 나가봐. 별건 아닌 거 같더군. 킁. 사진관에서 주인 남자가 피살됐다나봐. 거기 관할 파출소에서 현장 통제하고 있다니까 소장한테 인수인계 받을 거 받고.”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받고 돌아서는데 과장의 말.

“상황 파악되는 대로 일단 들어와서 보고서부터 쓰는 거 알지?”

  현장에 도착하니 구경꾼들이 파리 떼처럼 몰려 있었다. 인원 통제 중이던 파출소의 순경이 경례를 했다. 가끔 신기했다. 내 어디가 경찰 같아 보이는 걸까. 어떻게 저렇게 단박에 알아보는 걸까.

"우리 조형사 어딨나?”

“안에 계십니다.”

  사진관은 평범했다. 입구 간판에는 ‘17분 완성, EXPRESS' 라고 노란 바탕에 검은 글씨로 씌어져 있었고 코닥사의 마크가 왼쪽에 붙어 있었다. 시내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작은 사진관이었다. 대형 가족사진 같은 건 찍을 수 없겠지만 증명사진 정도는 가능해 보였다. 입구에 길게 놓여져 있는 유리 진열장엔 필름과 카메라 렌즈, 부속품 등이 구색을 갖추고 있었고 진열장과 평행하게 인조 가죽 소파가 놓여져 있었다. 사진이 인화되는 동안 고객들이 기다리는 곳. 벽에는 양산을 들고 비키니를 입은 한 여자가 5×7, 8×10 등의 여러 사이즈로 인화된 채 웃고 있었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자 조명 기구가 있는 넓은 공간이 나왔고 한쪽엔 원탁과 간이의자가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 조형사는 그 곳에서 감식반과 함께 지문을 뜨고 있었다.

“잘돼가?”

“지문은 많은데요. 쓸 만한 게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흉기는?”“없습니다.”

“근처는 수색해봤어?”“아까 파출소 애들하고 둘러봤는데 별게 없어요.”

  시체는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뒤통수 쪽에 둔기로 얻어맞은 듯한 상처가 있었다. 상처 주위엔 피가 머리카락과 엉겨 붙어 있었다. 나이는 사십대 초반 정도.

“둔기는 들고 가는 일이 별로 없는데.”

  나는 중얼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둔기가 될 만한 물건은 없었다. 굳이 있다면 카메라 정도? 그러나 피 묻은 카메라는 없었다. 의자가 두 개쯤 쓰러져 있었고 피살자가 저항한 흔적이 약간 남아 있었다.

  조형사는 지문 채취용 파우더를 손에 잔뜩 묻힌 채로 일어서더니 한쪽 구석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한 여자가 잔뜩 웅크린 채 간이의자에 앉아 있었다.

“저 여자가 피살자 부인이랍니다.”

“뭐 좀 물어봤어?"

"아뇨. 그럴 짬이 없었습니다.“

  사건 현장의 목격자 혹은 용의자의 최초 진술이 중요하다. 그때는 경황이 없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진실이 나오는 수가 많다.

“아주머니. 저 좀 봅시다.”

  여자는 아주머니라고 부르기엔 젊었다. 갓 삼십대가 되었거나 많이 보아야 삼십대 중반쯤이었다. 파마기가 없는 단발머리에 곱상한 외모였다. 치정인가?

“어떻게 된 겁니까?”

  담배를 피워 물며 다짜고짜 질러 들어갔다. 여자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모르겠어요. 시장 갔다 와 보니까."

“들어왔을 때. 저렇게 엎어져 있었다는 거예요?”

“예.”

“아줌마. 거짓말하면 큰일 나요. 내 말 알아요? 무슨 뜻인지.”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줌마 시장 갔다 온 거 본 사람 있어요?”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아줌마 말을 어떻게 믿어요? 뭐 시장에서 물건 사고 받은 영수증 같은 것도 없어요?”

 여자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좋아요. 그럼 들어왔을 때, 뭐 이상한 낌새 없었어요? 누군가 여기서 나왔다든가, 뭐 그런 거요.”

여자는 입을 꾹 다물고 말하지 않았다. 뭔가 깊이 생각하는 낌새였다. 옆으로 다가온 조형사가 책상을 내리치며 큰 소리로 윽박질렀다.

“이 아줌마가 바쁜 사람 붙잡고 장난하나? 아무거나 본 거 있으면 다 얘기하라니까요!”

 여자는 쭈뼛거리며 진열장 쪽으로 걸어갔다. 조와 나는 그녀를 따라갔다. 여자는 진열장 위에 놓여진 사진 봉투 하나를 집어 들었다.

“들어왔을 때, 이게 있었어요.”

“이게 어쨌다는 거요?”

 여자는 박스를 가리켰다.

“원래 여기 있어야 하는 건데, 이렇게 밖에 나와 있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사진 맡긴 사람이 왔다간 거죠. 들어오면서 이상하다 했어요. 사진을 꺼내놨으면 맡긴 사람이 온 거고 그럼 그 사람이 돈 내고 가져갔을 텐데, 그냥 덩그러니 여기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물어보려고 안에 들어갔더니 그이가 저렇게.”

 여자는 끔찍하다는 듯이 얼굴을 가렸다. 나는 장갑을 끼고 봉투 속에서 사진을 꺼내보았다. 꽤 잘 찍은 사진이었다. 아마 수동 사진기로 전문가가 찍었음직한 것들이었다.

“이 사진들도 지문 채취해.”

 나는 사진 봉투를 증거 수집용 비닐 봉투에 집어넣고 봉했다.

“아주머니, 어쨌든 최초 목격자니까 일단 서까지 가셔야 되겠네요. 자, 감식팀 일 다 끝났으면 앰뷸런스 불러서 시체 싣고 현장 폐쇄하고 출발합시다. 조형사, 현장 사진은 다 박았지?”

 조형사가 자동카메라를 들어보였다. 감식 팀이 먼저 승합차로 출발했다. 나는 주변을 잠시 살펴본 후, 서로 향했다. 여자는 뒷자리에 조형사와 함께 태웠다. 뭐랄까. 특이한 느낌을 주는 여자였다. 조형사야 신참이니까 알 수 없을 테지만 내 코엔 그 냄새가 난다. 그것은 청결한 화장실과 비슷하다. 물기 하나 없이 깨끗한 바닥, 미미한 방향제 내음, 개방된 은밀함, 금세 씻겨나간 더러움 같은 것들.     

 간단한 보도 자료 만들어 출입 기자들한테 뿌리고 상황실로 1차 수사 보고 날리고 검찰하고 통화하고, 분주한 시간들이 흘러갔다.

“나머진 나한테 맡기고 저 여자 조서부터 받아.”

 과장의 지시가 떨어졌다.

“피의자로 받을까요? 참고인으로 받을까요?”

 과장이 멀끔 내 얼굴을 바라본다. 그도 판단을 내리지 못한 표정이었다.

“일단 참고인으로 받지. 지문 감식 결과, 사망 추정 시간 나오면 그때 가서 피신(피의자 신문 조서) 받고. 오케이?”

 여자를 앉히고 노트북을 부팅 시켰다. 윙윙. 하드 디스크 돌아가는 소리. 저 노트북 속에 아름다운 이야기는 없다. 죽이고 강간하고 훔치고 사기 치고. 그런 내용들만 가득하다. 한때는 저 노트북으로 소설을 쓰고 싶던 적이 있기도 했었다. 아주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말이다. 사치스러운 생각이었다. 이젠 모든 것에 무뎌졌다. 치정 살인에도 윤간에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 그저 하나의 일일 뿐이다. 세탁소 주인이 모피 코트를 볼 때나 논술 강사가 학생들의 답안을 볼 때와 비슷한, 그저 그런 일상이다.

 아내와의 이야기를 쓸 수 있었을까? 글쎄. 이젠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글로 쓰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갔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누가 읽어줄지도 의문이다. 내겐 삶의 전 무게가 걸린 일이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저 뻔하디 뻔한 치정일 뿐이다. 이곳은 세상의 밑바닥이다. 쓰레기 하치장이다. 이곳에 들어오면 모든 것이 쓰레기로 변한다. 나는 그 쓰레기들을 치우며 산다. 쓰레기를 치우다 보면 모든 게 쓰레기로 보인다. 아름다운 사랑? 그런 건 없다. 정액으로 칠갑한 치정 사건이거나 그도 아니면 여고생의 일기장에나 들어 있을 치기 어린 감상이다.

 여자의 주소와 주민등록번호, 직업, 전과 사실을 묻고 신문에 들어간다. 이름은 지경희. 직업은 주부, 전과 사실은 없다고 한다. 여자는 무엇엔가 불안해하고 있다. 계속 내 질문을 못 알아듣고 있다. 시장에 갔다는 시각도 혼란스럽다. 물론 돌아온 시각도 마찬가지. 이 여자가 범인인가? 그렇지만 이 여자가 흉기도 아닌 둔기로 자기보다 머리통 하나가 더 큰 남편을 살해하기는 좀 어려워 보인다. 다른 남자가 있는 걸까? 그게 가장 설득력 있는 시나리오다.

“혹시 아주머니 애인 있어요?” 여자가 고개를 번쩍 든다. 나는 다시 질문을 해본다.

“애인 있냐구요?”

 여자는 천천히 고개를 젓는다.

“거짓말하면 안 되는 거 알죠? 이거 위증죄로 걸려요. 그럼 콩밥이에요.”

물론 거짓말이다. 경찰에서 진술한 것에는 위증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거 보세요. 아주머니. 알리바이가 없어요. 무슨 말인지 알아요? 시장에 갔다 왔다면서 영수증 하나도 안 챙겨오는 주부가 어디 있어요? 갔다 왔다는 시간도 명확하지 않잖아요. 이러면 아주머니가 범인이라는 얘기밖에 안 나와요. 아주머니가 죽였어요?”

 여자는 손을 내저으며 강력하게 항변했다. 제가 안 죽였어요. 제가 왜 죽여요. 죽일 이유가 없어요. 난감한 노릇이었다. 현장에서 둔기도 발견하지 못했으니 설령 알리바이가 없다 해도 기소하는데도 무리가 있었다. 결정적 증거가 없었다. 몰아붙이는 수밖엔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남자의 돈 관계나 주변 인물 수사로 범위를 넓혀가야 했다.

“그럼 아주머니가 안 죽였다 칩시다. 혹시 짐작 가는 사람 없어요? 돈 문제로 원한 관계가 있다든가, 평소 사이가 나빴던 사람이 있다든가.”

 여자는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이런 식이면 조서 꾸미다가 밤새기 십상이었다. 한참을 묵묵히 앉아 있던 여자가 고작 한 말은 이거였다.

“배고파요.”

 힘이 쭉 빠졌다.

“이 상황에서 배가 고픕니까?”

여자는 힘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고 보니 나도 배가 고팠다. 시간을 보니 벌써 오후 여섯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할 수 없었다. 밥은 먹여야 했다. 나가면서 조형사를 불러 현장 주변에서 여자에 대한 평판과 소문을 수집하도록 지시했다.     

 여자는 묵묵히 국밥을 입 속으로 떠넣었다. 그러다가 문득,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형사님. 아까 그 사진 말씀인데요.”

 여자의 입에서 국밥 국물이 조금 흘러내렸다.

“진열장 위에 있던, 안 찾아간 사진 말이오?”

“예.”

“그게 뭐요?”

“그 사람 같아요.”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남잡니까?”

“예.”

“자주 오는 남자예요?”

“예. 아주 자주.”

“뭐 하는 사람인데요?”

“그건 몰라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와요. 사진을 많이 찍어요.”

“그런데요?”

 여자의 볼이 붉어졌다.

“절, 그러니까 저를,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

 육개장이 식어가고 있었다. 나는 한 숟가락을 입 속으로 퍼 넣은 후, 그녀를 채근했다. 계속 말 해봐요. 여자는 더 이상 국밥을 먹지 않았다. 대신 멍한 표정으로 그 남자에 관한 이야기를 주절주절 말하기 시작했다.

 여자는 한때 작은 건설 회사의 경리였다고 했다. 여상을 나와 처음으로 취직한 직장이었으나 별로 흥미는 없었다고 했다. 그럭저럭 삼 년쯤, 그 직장에서 뒹굴다 다른 직장으로 옮겨봤지만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직장을 그만두었고 연애도 했다. 그렇지만 남자가 사 년 만에 자기를 차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해버렸다. 그 무렵 유일한 혈육이었던 아버지가 죽었고 여자는 그야말로 홀로 남겨졌다. 그때 지금의 남편을 우연히 사진관에서 만나 그것이 인연이 돼 함께 살게 되었다고 했다. 남편은 결혼에 한 번 실패한 경력이 있었지만 여자에게는 잘 대해주는 편이었고 간단한 사진 현상 기술도 가르쳐주었다고 했다. 결혼 생활은 별탈이 없었지만 (여자는 여기에서 잠시 주저했다. 그러다가 모든 걸 포기했다는 표정으로), 그 별 탈 없음이 문제였다고 말했다. 남편과의 사이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도 생기지 않았고 (그것이 어느 쪽의 문제 때문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사진관의 일이라는 것도 하루 종일 네 평짜리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이 찍어온 사진을 현상하고 인화해서 돌려주는 게 전부였으니 그녀가 무료했던 것도 이해가 갈 만했다.

 처음에야 다른 사람들이 찍은 사진을 보는 재미라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두 번이지, 손님들 사진이래 봐야 어디 여행 가서 찍은 증명 사진 형 기념사진이거나 졸업 사진, 입학식 광경, 어린애들 노는 사진 따위가 전부였다. 모두가 비슷비슷했고 그녀는 곧 지루해졌다. 작품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야 흑백은 자기가 직접 현상하고 컬러도 충무로 같은 곳에 맡기니까 그녀 손에 들어올 리가 만무했다.

“그래서요? 그게 어쨌다는 겁니까?”

 그게 이 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여자는 숟가락을 놓고 휴지로 입가를 닦았다. 그녀는 작고 도톰한 입술을 가졌다. 얼굴선도 갸름했다. 매력이 있었다. 살인 현장이나 취조실에서 볼 때와는 또 느낌이 달랐다. 이런 여자와 연애를 할 수 있을까. 나는 뜬금없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관방에서 밤을 보내고 아침이면 부스스한 모습으로 해장국을 먹고 그리곤 헤어져 서로를 그리워하고,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여자의 얘기는 계속되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왔어요. 처음엔 그저 무심히 필름 받고 이름 적고 태그 떼어서 건네주고 그랬어요. 그런데 인화를 해보니까 사진이 좋더라고요. 풍경 사진이었는데 어디 제주도쯤 되는 것 같았어요. 참 잘 찍었다 싶어서 유심히 보는데 이상한 사진이 한 장 끼여 있는 거예요. 풍경 사진이 계속 이어지다가 갑자기 난데없이 사람의 맨발이 하나 찍혀 있는 거예요. 그리곤 다시 그 풍경 사진들이 계속되죠. 그러니까 풍경을 계속 찍다가 발을 찍고 그리곤 다시 풍경을 찍었다는 거 아니겠어요?”

 여자의 얼굴엔 홍조가 떠올랐다. 그녀의 남편은 오늘 죽었다. 그런데 지금 다른 남자의 얘기를 하면서 얼굴을 붉힌다. 이것 봐라.

“그래서 사진을 찾으러 왔을 때, 넌지시 물었어요. 발을 뭐 하러 찍으셨어요? 남자가 웃더군요. 보셨군요. 하면서요. 그리곤 묻더군요. 가끔 발을 찍고 싶을 때 없어요? 제가 대답했죠. 누가 발 같은걸 찍겠어요. 인물 사진 수백 장 찍어봐야 발 나온 사진은 거의 없을걸요. 실수라면 몰라도.” 그건 그랬다. 그런데 그 발이 어쨌단 말인가?

“그게 시작이었어요. 어쩌면 그 사람, 그런 식으로 사진관의 여자들에게 접근하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슬쩍 눈길을 끄는 사진을 섞어두는 거죠.”

“그럴 수도 있겠군요.”

 여자는 엽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때 내 휴대폰이 요란한 소리를 냈다. 과장이었다. 무슨 밥을 그렇게 오래 먹냐는 질책이었고 나는 곧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들어가야겠네요. 위에서 난리군요.”

 여자는 휴우, 하고 한숨을 쉬었고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겨 일어났다.

“정말 저를 범인으로 생각하고 계신 거예요?”

 나는 부인했다.

“아뇨. 그건 조사해봐야 알죠.”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우리는 터덜터덜 걸었다. 여자의 뒷모습, 어딘가 허황해 보였다. 오늘 그녀는 남편을 잃었고 (애정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사진관에 찾아온 남자와 연애를 했었다면 그 남자도 버렸다. 내일 지문 감식 결과가 나오면, 그리고 여자의 알리바이가 계속 증명되지 못한다면 여자는 구속 기소될지도 모른다. 그 후엔 청주여자교도소에서 평생을 보내게 될 게고.

 과장에게 다가가 여자가 말해준 남자 얘기를 간략하게 요약해 보고했다. 과장은 일단 그 남자도 수사선상에 올리라고 말했고 우선 여자의 조서를 빨리 꾸미라고 했다. 남자는 곧 불려올 것이었다. 신병이 확보된다면.

“조서 다 꾸미면 귀가시킵니까?”“그래야지. 아직 참고인인데. 킁. 일단 귀가시키고 애들 붙여. 귀가 전에 감식 반에서 뭐 건지면 잡아두고.”

 여자는 취조실 의자에 힘없이 앉아 있었다.

“계속하죠.”

 여자는 깊은 숨을 내뱉고 침을 한번 삼킨 다음 진술을 시작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남자는 자주 찾아왔어요. 올 때마다 필름을 맡겼죠. 남자의 필름에는 점점 더 이상한 것들이 담겼어요. 발 다음엔 배꼽이 있었구요. 아, 이걸 말씀드려야 하나.”

“말씀하세요.”

“엉덩이요. 엉덩이도 있었어요. 남자 거요. 사진 잘 찍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추하진 않았어요. 맑은 날 밤의 반달처럼, 그렇게 찍었더라구요.”

“그래서 그걸 보고 그 사람한테 뭐라고 말을 하신 적이 있습니까?”

“예.”

 당돌한 여자였다. 설령 엉덩이가 찍혔더라도 조용히 건네주면 그만 아닌가.

“글쎄, 뭐랄까요. 꼭 저한테 말을 거는 느낌이었어요. 형사님은 모르실 거예요. 하루 종일 거기 앉아 있노라면 정말 지루하거든요. 남편은 무뚝뚝한 편이었고 게다가 사진관에 붙어 있는 날이 거의 없었어요.”

“어딜 다녔는데요?”

“자기 말로는 기원에 간다고 해요. 바둑을 좋아하긴 하거든요. 그렇지만 기원에 가는 거 같지만은 않았어요. 알 수 없죠. 그 인간이 어딜 돌아다니는지. 어쨌든 전 혼자일 때가 많았어요. 그렇게 앉아서 계속 현상기에 필름이나 밀어 넣고 있자니, 정말이지 심심했어요. 그런데 그 남자가 그렇게 말을 걸어오니까, 이런 말 드리기 뭐하지만, 반가웠어요. 고마웠구요. 그래요. 그건 사실이에요. 남편 죽은 날에 이런 얘기나 주절거리다니, 제가 미친년 같죠?”

 나는 노트북을 한쪽으로 밀쳐놓고 커피를 마셨다.

“아닙니다. 계속하세요.”

“우린 많은 얘기를 했어요.”

“엉덩이 얘기요?”

 무심결에 말을 내뱉고 나서 나는 아차 싶었다. 여자는 원망스런 눈길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하긴 경찰서에서 이런 얘기나 하다니, 헤픈 여자 소리 듣기 딱 좋지요.”

“아, 미안해요. 계속하세요.”

“좋아요. 계속하죠. 남자는 어느 전문대학 강사라고 했어요. 취미로 사진을 배웠다더군요. 부인이 있지만 사진은 돈 많이 드는 취미라고 싫어한댔어요. 어쨌든 남자는 계속 필름을 맡겼어요. 그러더니 하루는 자기 전신 누드를 찍어왔더라구요. 괜찮은 몸이었어요. 나는 물끄러미 그 사진을 한 참 동안이나 바라봤죠. 이 남자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궁금하더라구요. 사실 저하고 자고 싶다면 이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싶은 생각도, 아, 세상에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죠. 그냥 생각이 그랬다는 거예요. 그 누드는 뭐 노골적인 건 아니었어요. 몸을 공처럼 웅크린 자세였어요. 그러니 중요한 부분이 보인 건 아니구요. 근데 그걸 보니까 문득 저도 그 공범이 된 것 같았어요. 남편 몰래 연애편지 교환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거요. 그래서 그 사람 왔을 때 물어봤죠. 누드 찍을 땐 기분이 어떠냐구요. 남자는 웃더군요. 그 사람 웃는 모습이 참 괜찮았어요. 그러면서 말해주더군요. 어릴 적ㅇ로 돌아간 느낌도 든다면서. 아주 상쾌하다구요. 찍고 싶으면 말하라더군요. 저는 손을 내저으면서 말도 안 된다고 했죠. 그러자 그 남자는 바이바이 하고 가버렸어요.”

 나는 조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요점만 말해주세요.”

 여자는 꿈에서 깨어나는 사람처럼 흠칫 놀라는 기색이었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주저질주저리 늘어놓지요?”

“아주머니도 빨리 끝내고 가야잖아요.”

 시계를 보았다. 일곱시 삼십분이었다. 여자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더니 말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남자가 남편과 마주쳤어요. 그 남자는 언제나 남편 없을 때만 골라서 왔었는데 그날은 남편이 어디 나갔다가 들어오는 길이었어요. 이상하죠. 남자들은 아나 봐요. 남편은 그 남자를 유심히 봤어요. 느낌이 있었겠죠. 나는 서둘러 사진 봉투를 그 남자에게 건네줬죠. 나중에 남자가 묻더군요. 그 늙은 남자는 누구냐고. 나는 둘러댔죠. 친척이라고. 남자는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알게 됐어요. 그 남자가 맡긴 필름을 현상하고 있는데 남편이 들어왔어요. 가서 쉬어. 남편이 저를 밀어내더군요. 제가 하겠다고 앉아 버텼지만 그날따라 남편은 완강했어요. 그날의 필름에 담겨 있던 건......”

“뭐였나요?”

“그건, 저였어요.”

“아주머니 누드 말입니까?”

 여자는 여고생처럼 부끄러워하며 웃었다.

“아아뇨. 그냥, 제 스냅 사진이었어요. 제가 사진관에 있는 모습, 슈퍼마켓에 다녀오는 거, 자전거 타는 거. 뭐 그딴 거요.”

“그걸 남편이 봤군요.”

“예.”

“남편이 화를 냈나요?”

“아뇨. 남편은 우울해 보였어요. 술을 퍼마셨고 밤에 잠을 자지 못하더군요. 저는 좀 미안했어요. 어떤 사이냐, 남편이 묻더군요.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했죠. 그냥 나를 짝사랑하는 남자다, 그랬죠.”

“그게 전부입니까?”“그 뒤로도 그 남자는 사진관 주위에서 계속 얼쩡거렸지만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았어요. 남편이 늘 사진관에서 절 감시하고 있었고 설령 자리를 비워도 불시에 돌아오는 일이 많았으니까요.”

“답답했겠군요.”

 여자는 고개를 숙였다.

“솔직히, 그랬어요. 남편이 밉긴 했어요. 아, 그렇지만 그렇다고 죽이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럼 아까 압수한 그 사진은 뭡니까?”

“아, 그거 말씀이세요? 그날 아침, 한동안 발을 끊었던 그 남자가 다시 왔어요. 남편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말이에요. 저는 반가우면서도 좀 불안했어요. 남편이 언제 올지 몰랐으니까요. 남자는 필름을 맡기면서 말했어요. 그게 마지막이라구요. 저는 서둘러 필름을 현상기에 밀어 넣었죠.”

“뭐가 있었나요?”

“역시 풍경사진. 아마 서울역 근처를 찍은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 중 한 장이 칠판에다가 저를 사랑한다고 분필로 적어놓은 걸 찍은 거였어요. 그걸 보려는 순간 남편이 들어왔어요. 남편은 제 손에서 그걸 빼앗았어요. 그리고 화를 내더군요. 그렇게 화내는 건 첨 봤어요. 저는 변명했지만 남편은 믿지 않았어요. 남편이 너무 화를 내길래 사진관을 나온 거였어요. 그러니까 사실 시장에 간 건 아니었지요. 그냥 동네를 이리저리 돌다가 돌아온 거예요. 그랬더니 그 사이 남편이 그렇게.”

 여자는 코를 훌쩍였다. 나는 감식 반에 전화를 걸어 압수한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의경 하나가 사진 봉투를 들고 뛰어왔다. 나는 한 장 한 장 사진을 꺼내보았다. 비둘기가 떼를 지어 고가 위를 날아가는 사진. 술 마시는 노숙자들, 연기를 뿜으며 출발하는 기차 바퀴 등이 찍혀 있었고 그 중 한 장에는 그녀가 말한 대로 돌연 ‘경희, 사랑해’라고 적힌 칠판이 찍혀 있었다.

“그 남자 이름 알아요?”

 여자가 봉투를 청색 매니큐어의 흔적이 남아 있는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거기엔 그 남자의 이름, 정명식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과장에게 갔다.

“과장님. 이 친구 좀 불러야 되겠는데요.”

“그래? 뭐 용의점이 있어?”

“사건 직전에 피살자가 이 사람 사진을 가지고 부인과 다퉜답니다. 이 자가 이상한 사진으로 이 아주머니에게 접근했고 최근엔 이 아주머니 사진을 자주 찍기도 했다는데요.”

“일단 신병 확보해. 임의 동행으로.”

 과장의 지시에 따라 형사 셋이 남자의 집으로 급파되었다. 여자는 어딘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그런 여자를 채근해 조서의 나머지 부분을 채웠다. 그리고는 조서를 여자에게 읽힌 후에 매니큐어 칠한 손에 빨간 인주를 발라 조서에 간인을 하게 했다. 여자는 무기력하게 손을 내게 맡기고 있었다.

“귀가해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멀리 가시면 안 됩니다. 가능하면 집에만 계시는 게 좋을 거예요.”

 여자는 일어나서 나와 과장에게 꾸벅 절을 하더니 밖으로 또각또각 걸어 나갔다. 과장은 턱짓으로 김 형사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가 여자를 따라나섰다.     

 휴식이다. 그 남자가 올 때까지는. 나는 민원실 쪽 벤치로 나가 담배를 피웠다. 어느 경찰서나 민원실은 교통 과와 가까이 있다. 자동차로 누군가를 친 사람들과 그의 가족들, 피해자들이 한데 엉켜 초조하게 담배를 피우거나 나름의 법률 상식을 자랑스럽게 떠들고 있다. 백이니 천이니 하는 액수들이 껌값처럼 불려진다. 그래도 이곳에 오면 어쩐지 마음이 편하다. 여기서는 형사가 아닌 익명의 한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누가 죽였을까? 청결한 화장실을 닮은 그 여자? 아니면 그 여자를 짝사랑했다는 남자? 아니면 제3의 인물?

 삐리릭. 휴대폰이었다. 여자 주변을 탐문하러 내보낸 조형사였다.

“아, 계장님. 접니다. 조민기.”

“뭐 잡히는 거 있어?”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 말로는 그저 조용하게 사진관이나 지키고 있던 여자랍니다.”

“남편은?”

“남편은 좀 문제가 있는데요. 근처 다방에 자주 출입했구요. 안마시술소도 심심찮게 들렸구요.”

“젊은 마누라 두고 왜 그런 데를 다니지? 그래, 첩이 있는 건 아니고?”

“글쎄. 사진관 해서 그럴 능력이 있었겠어요?”“보험 관계 조사해봤어? 보험협회에 전화하면 다 나오잖아.”

“깨끗해요. 교통상해보험, 연금 보험 말고는 없어요.”

 나는 머리를 긁었다.

“뭐야, 이거.”

“저 들어갈까요?”“일단 들어와서 그 여자 카드 관계 뒤져봐.”

 깨끗하다. 남자는 가끔 성욕을 다른 곳에서 해소하는 정도. 보험에도 들지 않았다. 강도로 위장하지도 않았고 원한 살 일도 없다. 그 조그만 사진관 운영해서 사채놀이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남의 돈 크게 빌릴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가능성은 여자의 남자관계뿐이다. 만약 그렇다 해도 공모한 것 같지는 않다. 그랬다면 여자가 저렇게 순순히 다 불어버릴 리가 없지 않은가.

 삐리릭. 과장의 호출이었다. 담배를 던져 끄고 뚜벅뚜벅 사무실로 걸어 들어간다. 이럴 때면 어쩐지 내가 피의자가 된 느낌이다. 최근엔 유치장에 창살을 없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오랫동안 그곳에서 지내다 보면 갇혀 있는 게 그들이 아니라 나라는 생각까지 든다.

“저 남자야.”

 과장이 소파에 앉혀놓은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남자까지만 맡아.”

 남자를 내 책상으로 데리고 왔다.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직업 적고 신문에 들어갔다. 남자는 말쑥한 회색 슈트에 목까지 올라오는 터틀넥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단정한 지식인 스타일이었다. 악수를 하며 팔 힘을 재어보았지만 그리 강해 보이지는 않았다. 평생 운동과는 별 관련 없이 살아왔을 사람이었다.

 남자는 항의한다.

“전 아무 짓도 안 했습니다. 제가 왜 여기서 신문을 받아야 됩니까?”

“밤늦게 오시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몇 가지만 호가인하면 끝납니다. 참, 본격적으로 참고인 조서 작성하기 전에 몇 가지만 물어보고 시작합시다. 영신포토라고 알지요?”

“예.”

“거기 사장 죽은 것도 알지요?”

 “예. 오면서 들었어요. 그런데 그게 저와 무슨 상관입니까?”

“여주인이 있었죠?”“예.”

“잘 안다고 하던데?”“잘 알기는요. 그냥 사진 뽑으러 갈 때 말 몇 마디 나눈 죄밖엔 없어요.”

“그래요? 여자 말로는 선생이 이상한 사진을 찍어서 자기에게 줬다던데.”

“이상한 사진이라뇨?”

“예를 들면 선생 누드라든가, 뭐 그런 거요.”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기 누드를 찍는 게 불법인가요?”

“아니죠.”

“그런데 뭐가 문제죠?”“그 여자 사진도 찍었다고 하던데?”

“그건 그 여자가 찍어달라면서 필름을 주길래 몇 장 찍어준 거뿐이에요. 그것도 잘못인가요?” 나는 책상 서랍 속에서 사진 봉투를 꺼냈다. 그 중에서 ‘경희, 사랑해’를 찍은 사진을 꺼내 남자에게 제시했다.

“이 사진 당신이 찍은 거죠? 아, 만지지는 말고 그냥 보세요.”

 남자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사진을 들여다보더니 푹, 웃음을 터트렸다.

“이건 제 아들놈 거예요. 초등학교 일학년 아들놈이 지 짝을 좋아해요. 하루는 절 데리고 학교에 가더니 그걸 쓰고는 찍어달라는 거예요. 찍어서 여자애 주겠다는 거였죠. 글씨 보세요. 영락없는 어린애 글씨잖아요.”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사진관 여자 이름이 경희인 건 알고 계셨어요?”“예?”

 남자는 놀란, 아니 그보다는 혼란스런 기색이었다. 잠시 그러더니 힘차게 머리를 저어댔다.

“아뇨. 알 리가 있나요. 알 필요도 없구요. 그 여자야 제 이름을 알겠지만 저야 알 필요가 없죠. 그냥 사진 맡기고 찾아가고, 그러면 되는 거죠.”

 나는 책상 고무판 위에 던져져 있는, ‘경희, 사랑해’라는 하얀 글자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잘 보세요. 명색이 아마추어 사진가인 제가, 그것도 나이가 서른이 넘어서 이런 유치한 짓을 하겠습니까? 사랑을 고백할 사진이라면 이런 식으로는 안 찍습니다.”

 이걸 조서로 꾸며야 하나. 난감했다. 이 자의 아들을 불러 대질이라도 시켜야 하나. 이 얼마나 우스꽝스런 짓인가. 너 이거 네 짝꿍 주려고 아빠보고 찍어달라고 한 거니?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단 말인가. 또 설령 그 애의 진술을 받는다 해도 증거 능력이 없지 않은가. 아니면 그 애 담임한테 전화해서 경희라는 애가 있냐고 물어야 하나. 만약 이 남자 말이 사실이라면, 그럼 그 여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건데.

“사진관 주인 남자 본 적 있어요?”“있습니다.”

“둘이 싸운 적 있어요?”

“아, 그 여자 찍어준 것 때문에 남편이 절 좀 꺼려한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괜히 오해 살 것 같아서 그 뒤론 그 가게에 잘 가지 않았어요. 그 것 말고 직접 부딪친 적은 없습니다.”

  나는 노트북을 내 앞으로 가져다 놓았다. 남자의 얼굴에  긴장의 비치 떠올랐다. 피조사자들의 일관된 반응이다. 나에게만 보이고 상대방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이것이 형사의 노트북과 사진기의 공통점이다. 어쩌면 나도 이렇게 사진을 찍는 건지도 모른다. 증명사진 찍듯이 앉혀놓고, 팍!

 조서엔 인간들의 다양한 표정이 담겨 있다. 그들은 무심히 흘려보낸 삶의 한 단면을 드러내야 한다. 그날 당신은 뭘 했습니까? 누구와 술을 마셨습니까? 왜 마셨습니까? 몇 시까지 마셨습니까? 술값은 누가 냈습니까? 사람들은 기억해야 한다. 기억하지 못하면 끝장이다. 그리하여, 찰칵.

“자, 시작합시다.”

 나는 조서에 필수적인 몇 가지 사항을 쳐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자의 알리바이를 집중적으로 추궁한다. 남자는 사망 추정 시간에 학교에 있었다고 했다. 강의는 없었지만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았다고 했다.

“전자 출입증인가요?”

“예. 아마 도서관에 조회해보시면 제 출입 기록이 나올 거예요.”

“그것만으로는 충분히 알리바이가 안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빌려줬을 수도 있으니까요. 혹시 도서관에서 만난 사람 없어요?”

“아, 있습니다.”

 남자의 표정이 밝아졌다.

“거기서 조교를 만났고 선배 강사들도 봤습니다. 함께 흡연실로 내려가 커피를 마셨거든요.”

 그 사람들의 이름과 과를 적었다.

“그럼 사건 당일에는 가 사진관에 간 적이 없다는 말이죠?”

“예. 그렇다니까요.”

 일단 이걸로 끝이다. 남자의 무인을 받았다. 남자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잠깐요.”

 남자는 나가려다가 흠칫 놀라 뒤를 돌아다보았다. 나는 과장에게 신문 조서를 넘겨주고 남자를 따라나섰다.

“커피 한잔 하시죠.”

 남자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따라 민원실 쪽으로 나왔다.

“앉으세요.”

 남자는 내가 뽑아다준 자판기 커피를 받아들었다.

“그 여자, 지경희 말인데요.”

나는 뜨거운 커피를 후후 불어 식히다가 남자 쪽으로 시선을 주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그 여자 어때요?”

“어떠냐니요?”

“그냥 느낌말입니다.”

 남자는 좀 골똘히 생각하더니 종이컵에서 입을 뗐다.

“그건 왜 물으시죠?” 남자를 찔러보기로 했다.

“여자는 당신을 의심하고 있어요. 그래서 당신이 불려온 겁니다. 여자는 당신이 자기를 좋아해서 남편과 다퉜고 그래서 죽였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커피를 목으로 넘기며 남자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제서야 말씀드리는 거지만, 그 여자야말로 좀 이상했어요. 사실 아까는 조사받느라 말씀드리기가 뭐했는데요. 이제 알리바이도 증명되고 했으니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처음에 그 가게 다닐 때는 여자 혼자 있었어요. 그 여자 얼굴 반반하잖아요? 분위기도 있었어요. 어딘가 외로워 보이기도 했구요. 그 여자가 제 사진을 좋아해서 몇 번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어요. 여자는 사진에 대해선 잘 모르는 눈치였어요. 그냥 속성 인화 기술만 남편한테 배워서 하는 것 같았어요. 가끔 제가 찍은 셀프 누드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어요. 이런 건 어떻게 찍는 거예요? 하면서요. 글쎄. 형사님도 아시겠지만 남자들은 그럴 때, 좀 흔들리잖아요. 뭐 기분이 나쁘진 않았어요. 거기까진 좋았죠. 그런데 날이 갈수록 그 여자가 점점 심해졌어요. 나중엔 노골적으로 자기를 찍어달라는 거였어요.”

 남자는 그 순간 조금 망설였다.

“계속하세요.”

 나는 남은 커피를 홀짝 들이켰다.

“어느 날, 그 여자가 이러는 거예요. 남편은 제사가 있어서 지방에 내려갔다면서 자기를 찍어 달래요. 이건 좀 노골적이잖아요. 전 안된다고 했죠. 여자는 막무가내였어요. 사진관 셔터를 내리고 문을 걸어 잠갔어요. 글쎄, 그렇게까지 하니까 좀 욕심이 생기더라구요. 사실 가끔 동호인들끼리 돈을 모아서 모델을 사기도 하지만 그건 드문 일이고. 여자가 살집도 적당히 있는 게 광선 잘 받게 생겼더라구요.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거기 증명사진 찍는 데 있죠? 거기서 조명 때리고 찍었죠. 많이는 못 찍었어요. 한 통쯤 찍었을래나.”

“그 필름 가지고 있어요?”

“아뇨. 그 여자가 가지고 있어요. 그게 내심 불안하긴 했어요. 그래서 언젠가는 그 여자 만나서 그 필름 달라고 하려고 햇거든요. 아니면 없애버리든가.”

 남자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누드라 이거죠?”

“예.”

“흠.”

 남자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혹시 다른 일은 없었어요?”

“다른 일이라뇨?”

“잤다든지.”

 남자는 펄쩍 뛰었다.

“왜 이러십니까. 저도 가정이 있는데요. 그냥 그게 끝이었어요. 사진 찍고 나니까 여자가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긴 했어요. 그러더니, 더 찍어줘요,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안 된다고 했죠. 동네가 빤해서 사실 불안했거든요.”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교통사고 처리를 마친 팀들이 승합차를 타고 교통과로 들어가고 있었다. 피로한 모습들. 그들은 날이면 날마다 감자처럼 으깨진 자동차와 사람들을 만나며 산다. 스키드 마크의 길이를 재고 악다구니를 질러대는 당사자들의 변명을 들어야 한다. 그런 일에 비한다면 살인 사건은 깔끔하다. 일단 한쪽은 조용하니까. 남자는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던지고 꾸벅 인사를 한 후, 경찰서 밖을 향해 걸어갔다. 남자의 뒷모습엔 숨길 수 없는 뭔가가 있다. 어쩌면 저 남자는 안도하고 있을 것이다. 그 여자와 몸을 섞지 않은 것에 대해. 아니면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그 여자와 몸을 섞지 않은 것에 대해. 아니면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그때 왜 그렇게 쉽게 그 여자의 유혹에 넘어갔던가를. 그런 것들이 뒤섞여 남자의 뒷모습은 황량했다. 하긴 그러는 내 뒷모습은 얼마나 다를것인가.

집으로 전화를 했다. 아내는 자고 있었다.

“오늘도 늦어요?”

“다 끝났어.”

“종결됐어요?”

경찰관 마누라 생활 십 년에 아내도 경찰이 다 되었다.

“아니, 내일 감식 결과 나와 봐야지. 내가 맡은 조서는 다 꾸몄어.”

“어서 들어와요.”

아내의 남자. 그에게 권총을 들이대고 죽여 버리겠다고 위협을 했었지. 그 남자는 오줌을 쌌다. 흥건하게. 그리고 내 무릎을 잡고 빌었다. 아내는 넋이 나갔는지 장롱 구석에 틀어박혀 내가 하는 짓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뭔가가 아내에게서 이탈했다. 그 뒤론 다른 사람이다. 아내는 남자가 오줌을 지린 이불을 욕조에 넣고 발로 밟아 빨았다. 갖다 버려. 내가 소리를 질렀지만 아내는 대꾸하지 않았다. 아내는 이십 분이나 그 이불을 밟고 있었다. 이불을 다 빨아 널고 나서 아내는 병원으로 가서 아이를 지웠다. 내 아이가 아니라는 걸 아내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아내에게는 유일한 임신 경험이 되었다. 그 후 나는 무정자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아내는 그 뒤 예수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다 젊을 때 얘기다. 이제는 혹여 아내에게 다른 남자가 생겨도 그렇게 날뛸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그냥 보내버릴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어쨌든 권총 들고 러시안 룰렛을 하자고 설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확실하다. 다음날, 정명식의 알리바이를 확인했다. 그의 선배와 조교들은 그가 도서관에 있었음을 증명해주었다. 지경희를 다시 불렀다. 여자는 전날보다 훨씬 초조한 기색이었다.

“정명식이가 아주머니 누드를 찍었다면서요?”

여자는 얼굴을 붉혔다. 그러더니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아주머니, 울지 말고 묻는 말에만 대답하세요.”

잔인한가. 그렇지 않다. 개인적인 삶이란 없다. 우리의 모든 은밀한 욕망들은 늘 공적인 영역으로 튀어나올 준비가 되어 있다. 호리병에 갇힌 요괴처럼, 마개만 따주면 모든 것을 해 줄 것처럼 속삭여대지만 일단 세상 밖으로 나오면 거대한 괴물이 되어 우리를 덮치는 것이다. 그들이 묻는다. 이봐. 누가 나를 이 호리병에 넣었지? 그건 바로 인간이야. 나를 꺼내준 너도 인간. 그러니까 나는 너를 잡아먹어야 되겠어. 여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어젠 왜 그 얘기 안 했어요? 그냥 스냅이라고 했잖아요.”

“그걸 꼭 말해야 하는 건가요?”

여자는 물기에 젖은 눈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나는 조금 움찔했다. 눈물에 젖은, 그러면서도 도발하는 여자는 아름다웠다. 욕정이 꿈틀거린다. 그리고 그녀와 나 사이에 가로놓인 가상의 카메라를 통해 그녀의 나체가 들여다보인다. 둥근 어깨, 아직 처지지 않은 가슴. 가는목선.

나는 조금 더 몰아붙이기로 한다.

“이거 보세요. 어제 아주머니 남편이 죽었어요. 뒤통수가 깨져서요. 그러니까 관련이 있든 없든 남편과 관계될 수 있는 건 다 말씀 하시라구요.”

여자는 입술을 깨물었다.

“찍었어요. 네, 아주 많이 찍었어요. 찍고 찍고 또 찍었어요. 엎드려서도 찍고 가랑이를 벌리고도 찍었어요. 그래요. 이제 됐어요?”

여자가 갑자기 소리를 쳤다. 강력계 안이 일순 조용해졌다. 모두들 하던 일을 멈추고 나와 여자를 바라보았다.

“어이, 일들 해. 신경 끄고.”

나는 회전의자를 돌려 일갈하고는 다시 여자 쪽으로 돌아앉았다.

“좋아요. ‘경희, 사랑해’ 라는 사진 말인데요. 그 남자 말로는 그게 자기 아들이 찍어달라고 해서 그 학교에 가서 찍은 거라더군요. 그리고 아주머니 스냅 사진도 아주머니가 찍어달라고 했다면서요?”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정 선생님이 그래요?”

여자는 어깨가 쑥 내려갔다.

“예.”

“그분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여자는 고개를 숙였고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봐요. 아주머니, 어떻게 된 거냐니까요?”

형사님이 어떤 여자에게서 꽃을 받았어요. 그럼 형사님은 그 여자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지 않아요? 그런데 그 여자가 와서는, 꽃이 잘못 배달됐다고 하는 거예요. 아니면 돈이 남아돌아서, 심심해서, 그도 아니면 꽃집을 하는데 꽃이 남아서, 두면 상해 버릴 것 같아 보냈노라고 한다면, 그냥 그런 거예요. 그게 진실인 거예요. 꽃 받은 형사님만 바보 되는 거죠. 안 그래요?”

“좋아요. 다른 얘기 합시다. 그날 정명식이는 사진관에 온 적이 없다더군요. 아침에 확인해 보니 알리바이도 확실하고.”

여자는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네요.”

“뭐가 다행이에요?”

“정 선생님이 안 죽였다니 다행이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여자의 얼굴 한구석엔 쓸쓸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여자는 안도하면서 동시에 서운해 하는 것 같았다. 여자들은 한번쯤은 바라는 것일까. 어떤 남자가 자기를 위해 남편을 죽여주기를. 목숨을 걸어주기를. 아서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일어난다 해도 그건 추문이다. 그 흔하디흔한 치정 살인.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하는 춥잡한 거래로 환원될 뿐이다. 인가의 삶이란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설계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과장의 책상 위로 전화 서너 개가 동시에 요란하게 울려댄다. 과장은 그 모두를 몇 초 간격으로 집어 들고 동시에 통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뭔가를 조용하게 속삭이던 과장이 내게로 다가왔다.

“어이, 나 좀 봐. 킁.”

과장은 창가로 나를 데려갔다.

“저 여자, 귀가시켜.”

“왜요?”

“오늘 아침에 사진관 근처에 차 대놓고 자던 놈, 불심 검문을 했는데, 우리 조형사가 말이야. 트렁크에서 피 묻은 야구 방망이가 나왔어. 혈액형도 일치해. 감식 결과 나왔는데 사진관 진열장에서 그놈 지문도 나왔대, 폭력 전과 4범이라더군. 자백만 받으면 돼. 조형사가 데리고 들어올 거야. 지금 출발했대.”

“왜 죽였답니까?”

“조사해봐야지.”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와 노트북을 접고 손깍지를 낀 채로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자 역시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용의자가 잡혔습니다.”

여자는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정 선생님은 아니죠?”

“아닙니다.”

여자는 핸드백에서 거울을 꺼내 자기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가셔도 좋습니다.”

여자는 화장을 고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간 휘청거리더니 입구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안내해 주었다. 들어온 길을 찾지 못하는 여자. 그녀의 습관인지도 몰라.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도대체 어디로 들어온 거지. 어떻게 나가야 하는 거지. 그녀는 늘 그렇게 물으며 살아왔는지 모른다. 현관 앞에서 그녀를 배웅했다. 뭔가 말을 해주어야 하는 건 아니었을까. 내 잘못이 아니었다고. 그 얘기를 먼저 꺼낸 건 당신이었다고. 당신의 누드와 관련한 어떤 얘기도 내 관심 사항이 아니었노라고. 여자는 말할 틈을

주지 않고 떠났다. 하지만 다행인지도 몰랐다. 그런 변명은 피차 피곤하니까.

용의자가 수갑을 찬 채로 끌려왔고 조형사가 신문을 맡았다. 과장과 내가 번갈아가며 함께 신문했고 용의자는 약간 저항했지만 증거들이 쏟아져 나오자 쉽게 자백했다. 그는 사진관 남자가 자주 가던 레지의 기둥이었다. 출감한 후, 둘의 관계를 알게 되었고 기회를 엿보다가 사진관 여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사진관에 들어가 겁을 주려던 것이 흥분하여 그만 죽이게 되었노라고 말했다.

겨우 이런 거였나. 나는 미궁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혼란스러웠다. 과장에게 집에 들어가 쉬겠노라고 말했다. 천천히 집으로 차를 몰아오다가 횡단보도 앞에 정차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갑자기 충동적으로 차를 유턴시켜 사건 현장으로 향했다. 사진관은 셔터가 올라가 있었고 희미하게 여자의 윤곽이 드러났다. 나는 한참 동안을 차 안에서 사진관에 동정을 살펴보았다. 한 시간 후, 정명식이 나타났다. 그는 주춤주춤 사진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를 보자 여자가 풀썩 자리에 주저앉았고 우는 것 같았다. 정명식이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잠시

후, 그가 사진관 밖으로 나와 갈고리로 셔터를 끌어내렸다. 그리고는 상가 쪽 뒷문으로 돌아가 사진관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리고는 휴대폰으로 정명식의 아이가 다니고 있다는 학교에 전화를 걸어 담임을 찾았다. 한참 후에야 전화가 연결되었다. 담임선생님은 여자였다. 나는 물었다. 그 반에 혹시 경희라는 여자 아이가 있습니까? 담임은 의아한 목소리로 그런 아이는 없다고 말해주었다. 요즘에 그런 이름 잘 안 써요. 새롬이, 하나, 한별이, 초롱이, 이런 이름이 많아요. 나는 알았다. 고맙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차를 몰아 집으로 향했다. 아내가 힘없는 목소리로 나의 귀가를 반겨주었다. 자리에 누웠다. 아내가 옆에 앉아 과일을 깎았다. 나는 아내의 발을 잡았다. 붙어먹던 놈의 오줌, 그 오줌에 젖은 이불, 그 이불을 주거라 밟아 빨아대던 그녀의 발, 그 발을 꼭 잡았다. 아내는 내 손아귀에 붙잡힌 발을 빼내려 애썼다. 아이, 좀. 그렇게 버둥거리다가 그만 아내 손에 들린 과도가 내 팔뚝을 스쳤다. 금세 뻘건 주이 가면서 피가 흘렀다. 아내는 눈을 흘기며 소독약을 가져다 내 팔에 발라주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잠이 들었다. 꿈속의 나는 과일이 되어 아내

에게 껍질이 벗겨지고 있었다. 행복한 꿈이었다.

[『문학동네』, 1999년 봄]     

매거진의 이전글 만달로리안과 보바 펫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