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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Nov 25. 2023

프로파간다

땡전뉴스

프로파간다의 그 유명한 담배를 든 여성의 뒷모습이다


지금 이 세계는 프로파간다에 의해 움직인다고 해도 거짓이 아닌 세계가 되었다. 이렇게 ‘선전’을 통해서 대중의 마음이 움직이는 세상은 오래전부터였다. 지은이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선전의 아버지라 불리며 프로이트의 조카라는 점도 자신을 알리는데 한몫을 했다.


유튜브가 세상에 도래하고 나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새로운 단어 ‘바이럴’도 이 사람, 에드워드 버네이스가 탄생시켰다. 선전은 보통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되는데 버네이스는 부정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모든 분야에 사용되는 프로파간다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소설만 그동안 읽어서 그런지 너무 어렵다. 단어도 어렵고 내용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아마 대부분이, 일반 대중은 거의 모두가 프로파간다에 알게 모르게 흡수되어 있다. 한 번 프로파간다에 빠져들게 되면 아마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이다.


프로파간다를 잘 보여주는 책 표지


여기 ‘땡전뉴스’라는 게 있다. 모두가 봤을 ‘서울의 봄’의 그 전두광, 그가 집권했을 무렵, 밤 9시만 되면 뚜 뚜 뚜 땡 하면서 맨트가 “전두환 대통령~”라고 시작을 했다. 거의 신격화시켰다. 이렇게 신격화시키는 프로파간다 방법으로는 책에도 나오지만 거대한 그림 같은 것들이 있다. 북한의 김정은이 백마를 탄 그런 큰 그림이나 히틀러의 거대한 그림 같은 것들이다.

 https://youtu.be/SZwWwAUMNsg?si=h3_KNc0wase_2SMm

KBS역사저널 그날

히틀러의 옆에는 파울 요제프 괴벨스가 있고 괴벨스는 대표적인 프로파간다이다. 땡전뉴스에서 전두환 집권 시절 9시만 되면 ‘뚜 뚜 뚜 땡~ 전두환 대통령~~’ 이걸 바로 괴벨스가 만들어 낸 것이다. 히틀러가 집권 당시 전 국민에게 작은 라디오를 배포하고 9시만 되면 뚜 뚜 뚜 땡 하고 나면 히틀러 어쩌고 하면서 독재자 중심의 방송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괴벨스는 날 때부터 골수염인가? 때문에 다리를 절게 되는데 가난 때문에 수술을 받지 못해 결국 다리가 나을 수 없게 되었다. 가난으로 인해 아버지가 대학교 학비를 대줄 수 없다는 말에 괴벨스는 자신이 알아서 학비를 벌겠다 했다. 그는 키도 크지 않아서 160 정도 되었는데 대학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와 순수하게 사랑을 하지만 그녀의 집안에서 반대를 한다.


그녀가 부자와 결혼을 하는 것을 보고 괴벨스는 그녀에게 화가 나서 유서까지 쓰면서 결혼을 반대했다. 괴벨스는 자신 같은 노동자는 죽어라 일을 해도 돈이 쉽게 벌리지 않는데 자본가 유대인들은 펑펑 노는 거 같은데 큰돈을 벌어들이는 것에 큰 분노를 느낀다.


후에 히틀러가 법정에서 하는 연설을 듣고 반해 버려 그에게 다가가서 그의 오른팔이 되어서 유대인 징벌과 독일 정복을 위해 언론을 장악한다. 그게 정권이 국가와 국민을 잡으려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지금 현재 대한민국도 언론 장악, 그런 비슷한 세계가 되어 간다.


괴벨스는 프로파간다로 많은 것을 만들었는데 주인공이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것도 괴벨스가 만들었다. 이전에는 가장 중요한 인사가 먼저 등장했겠지만 괴벨스는 히틀러를 가장 늦게 등장시킨다. 극적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모두가 왜 히틀러가 나오지 않지? 보고 싶은 히틀러를 빨리 불러라 할 때에도 등장시키지 않다가 사람들이 조금씩 화가 치밀 때 그때 히틀러를 등장시켜 사람들을 환장, 환호하게 만들었다.


요즘에는 사라진 극장에서 영화 상영 직전 대한늬우스 역시 괴벨스 작품이다. 정부찬양 뉴스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극장에서 영화 시작 전에 틀어 주는 것이다. 집에서는 뉴스를 선택해서 보지만 극장에서는 전부 몰입해서 보게 된다.


괴벨스보다 더 한 사람이 그의 아내 마그다이다. 괴벨스보다 더 나치였고 히틀러가 죽기 진적 그 사실을 알고 히틀러에게 죽지 말라고 애걸하기도 했다고. 공식적인 아내가 없던 히틀러는 마그다를 내세울 정도로 마그다에 대한 믿음이 강했고 마그다 역시 나치가 되어 목숨을 버리는 것쯤 아무것도 아니었다. 히틀러는 애인과 결혼식을 하고 그다음 날 아내에게 청산가리를 먹여 죽인 다음 자신도 자살을 하는데 죽기 직전 괴벨스에게 전화를 해서 총통 자리를 물려주고 자살을 한다.


공식적으로 하루동안 총통이었던 괴벨스는 다음 날, 1945년 5월 1일에 그 유명한 가족 몰살을 한다. 그때 아직 어린아이들 6명에게 사탕이라며 청산가리를 먹이는데 큰 딸은 그게 뭔지 알고 먹지 않으려고 하지만 억지로 먹는다. 청산가리를 먹는다고 해서 바로 죽지 않는다. 굉장히 고통스럽게 죽는다. 속이 찢어지는 고통으로 거품을 물고 아이들이 벌벌 떠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마그다는 집 앞에 있는 나치들에게 가서 우리가 죽고 나면 전부 불에 태워라고 했다. 죽어서 연합군의 노리개가 되기 싫다며 괴벨스와 함께 죽는다.


여러 매체나 영화, 티브이에도 괴벨스에 대한 이야기가 많으니까 찾아보면 재미있다. 마그다는 히틀러를 너무나 사랑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왜냐라면 괴벨스와 결혼한 이유가 그가 가장 히틀러 가까이 있기 때문이었다. 프로파간다에 흡수되면 왜 빠져나오기 힘드냐면 동네 어르신들이 KBS 9시 뉴스에 대통령이 영국방문 한 장면을 5분 넘게 했는데 그걸 보면서 굉장히 좋아하고 있었다. 아직도 어르신들 중에는 전두환 집권 당시 경제가 발전했다며 찬양하는 사람도 있다.


현재는 기업과 대중의 관계의 프로파간다가 중요하다. 더불어 개인과 개인의 관계 역시 프로파간다에 의해서 움직이거나 소비가 되는 경향이 아주 짙어졌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를 통해서 일인기업이 늘어남에 따라 기능적으로 효율적이지만 부정적인 면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자본주의, 공산주의, 냉전, 이념, 흑색선전 같은 단어가 뜻하는 바를 자세하게 알고 싶으면 프로파간다를 파보면 된다. 미국은 반전 국가였는데 오랫동안 그래왔다. 1916년 우드로 윌슨은 반전 공약을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됐다. 지미 마터 역시 반전 공약으로 1976년 대통령이 되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전에서 패하여 폭망 분위기였다. 세계 최강 미국이 아시아의 뭐? 베트남이라는 이름도 모를 나라의 호찌민이라는 할아버지에게 전쟁을 졌다니,라며 충격과 침울한 분위기였다. 더 이상 아시아의 문제에 미국은 신경 쓰지 않겠다 했다.


다음 해인 1976년 지미 카터라는 듣보잡이 나오게 된다. 지미 카터는 당시 정치경력이라고는 조지아주 주지사 4년밖에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상의의원이나 하의의원 경력도 없는. 그런 지미 카터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반전공약 때문이었다. 당시 대한민국에 주둔한 미군철수였다. 주. 한. 미. 군. 철. 수.


한국에 주둔한 3만 명의 젊은 미군을 다 철수시키겠다고 공약하면서 미국 내에서 인기를 얻는다. 제럴드 포드 현직 대통령이 지고 만다. 엄청난 일인 것이다. 그래서 진짜 주한미군을 빼내려고 하고 박정희는 당시 지미 카터를 부르고 박근혜와 마중을 나가고. 이 장면이 유튜브에 컬러로 된 좋은 화질로 영상이 있다.


예전에 지미 카터 이야기를 한 번 했었다. 박정희가 죽고 전두환이 집권을 하면서 지미 카터는 재선을 노리고, 그 사이의 이야기가 정말 재미있다. 김대중은 감옥이 있고. 그는 감옥에서 정말 죽는다며 눈물까지 흘렸다. 지미 카터가 재선이 되어야 풀려나기 때문이다. 레이건이 되면 사형이 집행된다. 그러나 레이건이 미국 대통령이 되고 눈물을 흘렸다. 그때 전두환이 레이건에게 나를 워싱턴에 불러 전두환 정부를 미국에서 인정해 준다면 김대중을 풀어주겠다고 전화를 건다.


94년 김일성이 죽기 직전 지미 카터가 김일성과 만난 일화가 유명하다. 둘이 보트 위에서 웃으며 앉아 있는 장면을 연출한 사람이 바로 대우의 김우중 회장이었다. 김우중 회장도 어떤 면으로 대단한 프로파간다였다. 이야기하면 너무 기니까 여기에서 그만하고.


이쯤에서 봐야 할 영화라면 '트럼보'다. 미국의 천재 작가 달튼 트럼보의 이야기. 정부의 탄압에서 굴하지 않고 미국 할리우드 명작 시나리오를 썼던 달른 트럼보.

공주와 평민? 제목이 별로라 다시 바꾼 제목으로 영화가 나온 것이 ‘로마의 휴일’이었다. 희대의 천재 글쟁이 달튼 트럼보는 로마의 휴일 각본을 영화사에 판매할 때에도 자신의 이름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판다. 정부의 탄압 때문이었다.


당시 정부는 민주주의를 표방한다는 명분하에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진보 성향의 각본가들을 탄압한다. 여기에 레이건 (당시 배우협회 회장) 대통령부터 당시 최고의 인기 배우 존 웨인, 로버트 테일러 등 많은 배우들이 정부 쪽에 서서 탄압에 가담한다. 하지만 그레고리 팩 같은 배우는 트럼보 같은 진보주의자들을 응원하며 반미활동 조사위의 만행과 정부를 비판했다.


자신들의 편에 섰던 판사가 뇌출혈로 사망하게 되자 정치 스캔들에 휘말려 감옥에 가게 되는 트럼보. 그때가 1950년 6월이었다. 감옥에서 수모를 겪으며 수감 생활을 하는 트럼보. 수감 생활은 힘들기만 하다. 그래도 클레오에게 편지를 쓸 수 있어서 두려움을 잊고 잠시 행복하다. 가장 운 좋은 불행아라고 말하는 트럼보.


할리우드의 천재 극작가 달튼 트럼보. 그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이름을 바꾸고 활동을 시작하는데. 달튼 트럼보의 이야기를 한 영화 ‘트럼보’는 정말 재미있다. 당시 여러 영화인들이 동료들을 정부에 고자질하여 달튼을 포함해 10명이 증언을 거부함으로 1960년대 초까지 영화계를 떠나야 했다. 이들을 ‘할리우드 10’이라 불렀다.


그러나 강력한 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달튼 트럼보의 창작 욕구를 누를 수 없었다. 달튼은 수모, 고통, 고욕 모든 것을 짊어진 채 10개가 넘는 가명으로 활동하며 존재가치를 증명해 낸다. 좌절하고 쓰러지고 넘어져도 주저앉지 않았던 트럼보. 결국 그는 미국의 최고 극작가가 된다. 정말 재미있는 영화다. 대한민국 탄생이래 난생처음 겪는 탄압으로 폐지된 KBS 시사 프로그램 ‘더 라이브’가 다시 방송되는 그날까지.


https://youtu.be/gnOOgJv4k3Q?si=HOWxsDLTWM3KxvOb

한반지 영화 예고편 처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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