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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고개를 들어 구름이 반쯤 가리고 있는 새벽의 달을 바라보았다. 달은 늘 차갑지만 언제나 아름다웠다. 독특한 서정성을 가득 품고 마동에게 무엇인가 말을 해 줄 것만 같았지만 침묵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은 냉정한 달은 밤이면 어두운 하늘로 꿈처럼 떠올라 마동을 내려다보았다. 그럴 때마다 자위력을 잃어버린 마동을 어디론가 데리고 갈 것만 같았다. 마동은 철탑 밑에서 달이 전해주는 빛의 포자를 한껏 빨아들였다. 안개가 몸 안에 들어차 하얀빛을 피웠다. 어딘가에 반사되어 빛을 내는 해와 달리 달은 스스로 빛을 낸다. 달은 마동에게 말은 없었지만 빛을 나누어 주었다. 달이 드디어 마동의 질문에 대답을 해 준 것이다. 바람이 잦아들고 습한 기운만이 새벽의 대기에 가득 들어찼다. 이 상태로 두 시간만 가만히 앉아있으면 입고 있는 옷이 축축해질 것이다.
겨울의 새벽이 여름의 새벽보다 따뜻하다. 관념적인 말이지만.
지금 여름의 새벽은 습하고 축축함이 따뜻하게 아파트 밑에서 올라왔다. 여름밤의 습한 기운은 바다가 인접한 곳에서는 기이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바다에 붙어있는 마을은 더더욱 습한 기운을 직접적으로 맞이했다. 해변의 카페에서 인간과 공생하는 장군이가 어리었다.
장군이는 어떤 변이체일까.
그 존재가 진정 동물인지 어떤지, 물질의 혼재인지, 오래 전의 얼마나 비열한 짓을 저질렀는지 또는 그 반대편에 있었는지 학습으로는 알 수 없는 존재였다. 더불어 설명이 불가능한 방법이 소설가의 책장에 꽂힌 책만큼 많았다. 짐작을 할 수 없는 존재. 유추가 되지 않으며 상상할 수 없는 존재. 예부터 먼지처럼 떠돌다가 유전자처럼 지금까지 내려온 존재.
마동은 어려운 말을 걸러내고 그렇게 간추렸다. 장군이가 어떤 존재인지 무슨 관념체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그렇게 찾아 헤매는 또 다른 생명체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장군이는 지금 여기 인간의 세계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이미 오래전에 찾았을 것이다. 대형견 그레이트데인 장군이를 생각하니 혈관이 빠르게 움직였다. 마동의 몸속의 피가 마치 살아서 그레이트데인과 가까이 접합하려는 듯 수면에서 깨어나서 몸속의 이곳저곳을 들쑤셨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품었을 때처럼.
장군이는 자신을‘형성변이자’로 소개하고 오랜 시절부터 인간과 같이 살아오는 방법에서 평범함과 타협을 선택했다. 장군이는 마동에게서도 자신과 비슷한 어두운 기운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거역할 수 없는 어둠의 도트가 마동에게 있다고 했다. 그는 아직 도트가 어떤 형상을 하고 있는지 어떠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 그 힘이 어떤 식으로 현실에 영향을 가져다주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만약 최악의 경우 자신은 죽음으로써 그 도트의 움직임을 끝내야 한다.
죽음.
그레이트데인 장군이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서로 얽혀있는 관계일까.
그들은 연결된 관계가 아니라 얽혀있어서 서로 꽈리처럼 꼬아진 매듭이 아닐까. 매듭을 풀려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야 하고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렇지만 방법이라는 것을 동원해도 매듭을 더욱 복잡하게 얽히게 하는 장치일 뿐 풀리지 않는다. 그런 관계로 형성되어 있는 존재들이 사라 발렌샤 얀시엔과 장군이다.
옥상에서 얼마나 있었을까.
마동은 달을 바라보았다. 침묵하는 달.
그 뒤로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며 언어를 내보이는 마른번개.
무엇하나 마동에게 정확하게 말해주지 않았다. 마동은 마른번개의 언어를 알아듣고 싶었다. 여름 새벽의 기운은 마동을 흥분시켰다. 여름밤이라 그러한지 달빛 때문인지 마음이 흥분되었다. 첫 수학여행을 기다리는 학생처럼 고취되어 있었고 가슴이 뛰었다. 마른번개가 좀 더 큰 규모로 내리쳤다. 따뜻했다. 몸속에서 무엇인가가 올라오고 있었다. 따뜻함은 점점 뜨겁게 달아올랐다.
저 멀리 여명이 보인다. 벌써 날이 밝아오는 것인가. 아니다. 아직 시간이 이르다. 그렇다면 저것은 무엇일까.
마동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눈앞에서 그렸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과 가슴골을 보니 목이 뜨거워져 있었다. 오른손을 목 언저리에 갖다 대었다. 확실히 손바닥으로 뜨거운 기운이 밀려왔다. 여명이 세상을 한순간에 밝게 비쳐주었다. 새로 산 전구를 갈아 끼운 듯 세상이 밝아졌다. 하지만 저건 분명히 날이 밝아 오는 것이 아니다.
저 붉고 밝은 빛은 무엇이란 말인가. 어째서 사람들은 저 밝은 빛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단 말인가.
새벽에 가지는 시간개념은 한낮에 보이는 달처럼 아이러니했다. 이 새벽을 사람들은 다른 층위에서 즐기고 있었다. 그런 여름의 하루, 새벽시간에 아파트 옥상의 난간에 마동은 위태롭게 앉아 있었다. 목에 대고 있던 오른손바닥으로 연탄이 자신을 버려가며 재가 되기 직전의 뜨거움이 느껴졌다. 마동은 밝아오는 핏줄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답답하더니 한순간에 에고가 과잉되어서 터져 버릴 것 같았다. 날이 밝아 온다. 아니다. 날이 밝으려면 아직 멀었다. 여명 같은 빛이 점점 더 거대하게 빛을 발하며 마동이 있는 난간으로 뻗어 왔다.
마동은 빛에 잠식되었고 답답함을 느꼈고 몸은 빛에 의해 불타올랐다. 방파제에 나간다면 저 멀리 보이는 빛을 더 자세하게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순간 대지가 재빠르게 푸른빛을 강하게 냈다. 마치 집에서 잠이나 자고 있을 인간들이 꼴 보기 싫어서 전부 깨어나게 하기 위해 제우스가 심술을 부리듯 과격한 빛을 세상에 뿌렸다. 낮처럼 환해지기 시작했다. 롬바드 스트리트처럼 미간에 주름이 졌다. 환해지는 빛에 닿아 마동의 몸은 너무 뜨거웠다. 빛이 강해서 익어버릴 것만 같았다.
양손을 겨우 들어서 쳐다보았다. 양손의 끝에 불이 붙어 버린 게 아닌가 할 정도로 몸이며 팔이 뜨거웠다. 그렇지만 핀란드식 사우나보다 더 뜨거운 곳에 오래 앉아 있는 느낌도 아니었다. 무더위에 오랫동안 달려 숨이 차올라 막히는 느낌도 아니었다. 이건 몸이 그저 타오른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불이 활활 타올랐지만 만져지지 않는 타오름이었다.
몸 안의 에고가 타오르고 있었다. 뜨거워서 고통스러웠지만 실체가 없는 불타오르는 느낌을 마동은 어찌하지 못하고 힘들어 할 수밖에 없었다. 마동의 양손을 몸에 갖다 대어봤다. 몸이 뜨거워서 손을 댈 수가 없었다. 펄펄 끓어오르는 물주전자의 불룩 나온 몸통을 만지는 것과 흡사했다. 마동은 몸이 불덩이 같아서 몸에 갖다 댄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손바닥을 타인의 손을 쳐다보듯 이리저리 움직이며 보았다. 마동의 손이었지만 자신의 손이 아니었다. 손바닥이 익어 갔고 손의 움직임이 이질적이었다.
웅웅.
마동의 무의식으로 새벽시간 속에 흡수된 사람들의 암울한 소리가 들렸다.
우우우웅.
깨어있는 사람들의 의식이 전달되었다. 몹시 불쾌하고 더러운 의식이 마동의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왔다. 그것은 지하세계에 굴을 파고 살아가는 눈이 없는 생물체보다 더 깊은 추악함을 가지고 있는 인간들의 소리였다.
웅웅웅.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