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9

229

by 교관


229.


요컨대 정부가 공무수행 중에 정부의 차에 치여 교통사고를 당한 일반인이 팔다리를 잃었거나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었다면 정부는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에 대해서 개입을 하고 개인을 위한 허울 좋은 보상이라는 명분으로 매스미디어를 이용한다. 국가는 축척의 욕망이 가득하여 자본을 매몰시켜 놓는다. 그 와중에‘공공성’이라는 관념이 빠져버리게 된다. 국가 기둥의 붕괴는 이곳저곳 늘 일어나고 있지만 정부는 책임을 회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 속에서 국민의 죽음이 이루어지면 공공성은 더욱 회복하기가 어려워지고 국민을 위한 국가구조가 아닌 소수를 위한 시스템으로 불신만 가중된다. 갈등이 점진적으로 커져가며 갈등해소에 들어가는 비용 또한 어마어마해진다.


결국 교통사고를 당한 당사자만 절망 속에서 하루를 보낼 것이고 정부를 비난하며 시간이 갈수록 일상과는 자연스럽게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정부를 비난하는 당사자에 사람들의 손가락 짓이 늘어나고 당사자는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소외되어 간다. 일부 당사자와 가족이 전사로 변하지만 정부는 거대한 아케이드다. 맞서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뿐이다.


당사자는 시간이 갈수록 과연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인가. 국가가 나서서 해줘야 할 일을 국가가 외면해 버리고 나면 피해를 받은 당사자는 격렬한 사랑을 하며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된다.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사회라고 불리는 큰 덩어리, 그러니까 자본주의는 당사자의 암울한 모습을 하고 생활하는 것을 시간이라는 매개를 빌려 덮으려는 자세를 취한다. 개인의 고통은 개인이 알아서 하라는 분위기가 강했으며 관료들은 친분으로 쌓은 탄탄한 권력으로 자본을 회수하려는데 주력할 뿐이다.


사람들은 공공연히 악마를 보는 것이다. 다리가 없는 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집 밖에 나와서 하루에 볼일을 하나정도 보고 나면 하루가 훌쩍 지나가 버릴 만큼 이 사회는 그들에게 냉대하기만 하다.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은 소외된 채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괜히 나서지 마라. 빅브라더는 무서운 얼굴을 하고 묵언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에어컨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전력과다수급이 필요하고 한쪽에서는 폭염에 쪽방촌사람들이 죽어갔다. 대부분의 식당은 음식의 원형에 가까운 요리를 멀리했고 접시의 공백을 필요 이상으로 양념과 양으로 덮어버렸다. 팔아버리면 그만이었고 현지화에 가까운 조리법으로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기에 급급했다. 냉면을 먹고 있으면 냉면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냉면을 냉면으로 받아들이느냐 냉면 이외의 것으로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은 인식론의 문제였다. 무의미가 의미를 대신하는 것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본질이 사라져 버린 후 경험적 인식은 미디어의 정보와 마찰을 겪지만 결국에는 방대한 정보에 무릎을 꿇고 만다.


타인과 달라 보이는 외모, 다른 생각을 지니고 있으면 냉대받는 사회, 오직 젊음이 삶의 상징이고 젊음에 상응하는 외모지상주의는 사회를 이루는 구축점 같은 모습이라고 미디어는 아닌 척하며 조장했다. 늙어서 죽음에 이르는 것은 자연스럽고 신성한 현상임에도 사회는 애써 외면했다. 자연스러움을 배척한 모습들이 사회 곳곳에서 나타났다. 자본주의는 늙어가는 사람들의 입지를 좁게 만들었고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신체적 기능이 하나씩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두려움과 우울함을 동반하는데 자본주의는 한몫을 했다. 죽음을 심도 있게 다룬 영화는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외면받았다.


인기로 먹고사는 연예인들은 나이가 들어 죽음에 다가갈수록 인기가 하락했으며 사회는 그런 인간의 상승과 하강을 보며 조롱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사람들의 지식은 올랐지만 의식은 밑바닥에서 머무르고 있었고 상상력의 고갈은 가족 간에도 칼부림을 만들었다. 현대판 고려장이 곳곳에서 나타났고 일각에서는 죽을 때가 되면 알아서 죽음을 찾아가자는 소리까지 나왔다. 자본주의는 죽음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과 젊음은 추앙하는 반면 죽음과 죽음에 가까워지는 인간은 싹둑 배제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들에게는 자본이 생각 이상으로 많이 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나이가 든 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되찾기 위해 꿈리모델링 회사를 찾는 것이다. 꿈을 다시 되찾고 또는 그 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파는 것이 자본주의사회 속으로 파고든 것이다.


어둡고 질척한 죽음에 이르렀다고 마동은 생각했다. 몸에 푸른 불꽃으로 어딘가로 떨어질 때 휑한 눈으로 마동을 바라보았던 악취 가득하고 더러운 그림자들에게 둘러 쌓였었다. 그들의 모습은 그야말로‘죽음’ 그것이었다. 마동은 그 죽음이 가득한 암흑의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죽었다고 생각했었다.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다면 천국은 없더라도 지옥은 존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성폭행을 일삼는 멀쩡한 정신의 소유자들 때문이라도 지옥은 실제로 존재해야 한다. 법망을 피하고 잡히지 않는 수많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죽고 나면 지옥에서 멀쩡한 정신으로 완전히 불구덩이 속에서 뼈가 익어가고 고통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한다.


푸른빛의 불꽃은 욕망과 본능이 응축된 불꽃이었다. 마동은 퀭한 두 눈의 더러운 그림자들 틈 속에서 죽음에 닳았다고 생각했을 때 이곳이 지옥이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어쩌면 다행이었다. 마동은 철도청의 파업 소식을 잘못들은 자신 때문에 친구들이 죽었다고 생각했기에 마동은 죽은 후 지옥으로 가야 마땅했다. 몸이 뜨거워져 즉각적인 대처도 하지 못하고 아파트 옥상의 난간에서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지만 눈을 뜬 이곳은 지옥은 아니었다. 적어도.


낯선 곳에 누워있었다. 침 대 위.


낯선 곳이지만 낯설지 않은 이곳, 여기는 어디일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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