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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의 모습은 오백 년도 더 지난 후 발견된 미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공기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천천히 수분이 빠져나가버린 미라의 모습 말이죠. 피해자는 무엇에 의해 한순간에 몸속에 있는 수분이 몽땅 빠져나갔다는 말인데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것도 알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류 형사는 신참형사에게 지금 하는 말은 아무것도 받아 적지 말고 기억도 하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신참형사는 코스메딘 산타마리아 델라 교회입구에 있는 진실의 입 같은 입술로 “알겠습니다”라고 굵직하고 믿음직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그런데 마동 씨는 그 시각에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류 형사가 신참형사에게 돌렸던 시선을 마동에게로 옮겼다.
“옥상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옥상이요?” 류 형사의 눈빛에 또 다른 빛이 들어왔다.
“네, 옥상에 올라가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하, 이렇게 무더운 밤에 옥상에 올라가는 사람은 잘 없죠. 역시 당신은…….”
“그래서 올라간 겁니다. 사람이 없어서 말이죠. 여름밤의 하늘은 바라보기 좋으니까요.”
“하늘을 보고 무엇을 했습니까. 그저 하늘을 바라보았습니까?”
“네.”
류 형사는 마동이 뒷말을 하리라 기다리고 있었지만 마동은 입을 다물었다.
“마동 씨, 실은 아파트 복도에 설치되어 있는 카메라에 당신의 모습이 포착되어 있어서 당신은 알리바이가 확실합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가 세 시간 정도 있다가 집으로 들어오더군요. 그 시각이 당신은 옥상에 있었던 시간이었고, 그 시간에 어떻든 아파트의 살인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마동은 사실 집으로 들어온 것은 기억이 없었다. 그저 지옥처럼 보이는 곳으로 떨어지면서 정신을 잃었고 눈을 뜨니 병원이었다. 마동은 류 형사에게 옥상에서 새벽의 빛을 바라보다가 정신을 잃었다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류 형사는 신참형사에게 스마트폰의 사진첩을 열라고 했다. 그 속에서 몇 장의 사진을 마동에게 보여주었다. 마동은 사진을 건네받고 들여다보았다.
“감식반이 죽은 여자의 몸 위에서 피해자의 시신을 분리하려고 건드리는 순간 모래알갱이처럼 무너져 내렸습니다. 다행히 감식반이 오기 전, 시체가 먼지처럼 변하기 전에 이 친구가 찍어놓은 사진입니다.”
마동의 눈에 사진 속의 장면은 현실성에서 벗어난 모습이었다. 영화 속의 추악한 한 장면을 찍어놓은 사진처럼 보였다. 방독면을 쓰고 있어서 침대 위의 여자는 죽어있는지 잠을 자는지 확실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는 여자의 몸 위에 앉은 채 미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겨울바람에 마를 대로 말라버린 나뭇가지처럼 변해버린 남자가 사진 속에 있었다. 완전히 미라가 되어 버린 모습이라 사진으로 들여다봐서 남자인지 여자인자도 알 수는 없었다. 류 형사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겨 다음 사진을 마동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사체를 건드리자마자 먼지로 변한 후의 모습이었다. 여자의 모습은 그대로이고 그 위로 입자가 불규칙적인, 조금은 굵은 모래가 떨어져 있었을 뿐이었다. 뼈도 먼지처럼 바스러졌다. 류 형사의 이야기를 들이니 마동의 머릿속에서 이들의 행위가 선명해지는 듯했다. 류 형사는 생각하는 마동의 눈을 놓치지 않고 계속 바라보았다.
“바다에서 바닷물이 끓어올라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익어서 죽어버린 50대 남자는 자신의 의붓딸을 늘 성폭행해 오던 사람이었더군요. 그는 자신의 의붓딸뿐만이 아니라 옆집에 살고 있는 정신지체 여인도 성폭행을 한 기록이 있었습니다. 남자는 그 여자를 건드려도 괜찮다고 생각을 해버린 것이죠.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꾸준히 한 것입니다.” 류 형사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러는 동안 마동의 얼굴을 주시했다.
“바닷물이 가스레인지 위 냄비 안의 물처럼 끓어올랐습니다. 바다에 가스호스를 꽂아서 펄펄 끓이듯 바다가 부글거리며 끓었습니다.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했어요. 거인이 떠먹는 거대한 매운탕을 보는 듯 죽은 물고기들의 비린내가 바닷가에 퍼졌습니다. 그리고 이내 물고기가 썩는 냄새가 일대를 점령했습니다. 물고기 떼 사이에서 사람이 익어서 죽었습니다. 50대 남자는 성폭행을 수도 없이 저질러서 그런지 가장 고통을 심하게 받으며 죽어간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끓는 물속에서 다리와 팔의 감각이 점점 사라져 가고 폐는 뜨거워지는 주위 환경을 이겨내느라 얼마나 많은 팽창과 수축을 반복했을까요. 심장은 또 어떻게 그 펄펄 끓는 바닷속에서 극심하게 뛰었을까요.” 류 형사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마동의 표정을 살폈다. 마동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사진에 시선을 고정하고 미라처럼 움직임도 없었다.
“우리 인간이 말이죠. 그러니까 남자들은 나이가 들어 갈수록 성도착에 집착을 보이기도 합니다만 이성으로 눌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웃음을 지을 수 있고 본능만이 아닌 이성적으로 사고를 한다는 것이죠. 성범죄자들은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늘 처벌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가벼웠습니다. 죄를 짓고 버젓이 길거리를 활보하고 다닌다는 게 아디 가당한 일입니까.” 류 형사의 목소리는 조금 높아졌다.
“성범죄자들이 응당한 처벌을 받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기다린 고도란 과연 무엇일까요? 고마동 씨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베게트도 고도가 무엇을 말하는지 확실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다는 건 그 어떤 것도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갑자기 그건 왜?” 마동은 사진에서 류 형사의 눈으로 시선을 돌렸다.
“역시 심오한 대답이군요. 당신의 표정만큼 심오합니다. 글쎄요, 저도 왜 고도를 기다리는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군요. 마땅히 할 말을 찾다가 그럴 수도 있고 말이죠. 대학시절 딱 한 번 읽었던 책이라서 기억에 남아있는 지도 모르겠군요.” 류 형사는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 지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