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남녀 5

소설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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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너, 어제 내가 탄 택시 번호판을 찍더라. 넌 얼굴은 영 아니지만 역시 내게는 영웅이었어. 영웅을 위해 만들었어."


“뭐야, 자꾸 그런 말투.”


리사가 만들어 온 제육볶음을 조금 집어먹고 화장실로 향했다. 변기에 대고 구토를 하고 돌아오니 제육볶음이 전부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었다. 구토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너 지금 되게 못생긴 거 알아?”


그 말에 나는 웃었다.


“너 처음 웃었어, 못나게 웃는 거 알아? 못생겼다고 하니 웃네. 바보 같은 놈.”


아, 그러고 보니 그 녀석이 며칠 동안 보이지 않았다. 고향에라도 간 모양인가. 그 녀석은 늘 고향에 가고 싶어 했다. 사람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이상한 말을 쏟아냈지만 그 녀석은 사랑받고 싶어 하는 그런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 녀석이 보이지 않고 3일이 지났을 때 아침에 고시원에 들어오니 그 녀석의 방을 고시원 주인과 누군가가 마스크를 쓰고 치우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는 내 물음에 고시원 주인은 “인생 실패자 새끼들이 죽으려면 다른 곳에서 죽지 왜 꼭 여기서 죽고 지랄이야"라며 소리를 질렀다. “인생 루저 새끼들은 한눈에 알아봤어야 했어.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죽을힘 있으면 그 힘으로 악착같이 살면 돼. 이 새끼들 아직 배가 불러서 그래. 너희 같은 놈들 일하고 일할 때는 세고 셌는데 해보니 힘드니까 좀 하다 때려치우고 카드 빛내서 옷 사고, 게임방에서 게임이나 실컷 하고 말이야. 이 새끼들 결국에 갚을 돈이 불어나니 나 몰라라 도망치듯 자살이나 해버리고."


왜 멋대로 치우냐고 나는 대들었다. 주인은 눈을 부릅뜨고 나에게 무슨 관계냐고 물었다.


“친구입니다."


“친구? 친구 좋아하네. 친구 새끼가 그래? 친구가 죽은 지 며칠이 지나도 몰라? 너 이 새끼도 인생 실패자지. 너 이 새끼 여기서 너도 자살하려고 하지. 돈 줄 테니까 나가 이 새끼야."


나는 고개를 숙여 고시원 주인에게 죄송하다고 했다. 착실하게 살고 있다고, 그 친구는 여기에서 알게 되었다고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비참했다. 여기서 쫓겨나면 갈 때가 없다. 억누를 수 없는 크고 딱딱한 분노 같은 것이 배를 아프게 했다.


장례식장은 고시원 앞의 새로 지은 호텔 같은 장례식 장이었다. 그 녀석의 이름은 최중훈이었고 나이는 27세였다. 27세, 27세에 죽을 생각을 하다니. 그 녀석은 방에서 자살한 게 아니었다. 여기서 좀 떨어진 거리에서 사고로 죽었다. 아니 사고인 척 트럭으로 뛰어들었다. 그 사실을 고시원 주인은 어떻게 알고 자살이니 소리를 질렀을까. 도시는 참 이상하다. 교통사고로 판명이 나서 가족에게 보험금이 돌아갔지만 그렇게 보이도록 노력하며 죽었다. 죽음도 편하지 못하고 가족을 생각하며 택한 죽음이었다. 자신을 감춰가며 속여가며 그렇게 지내다가 그 녀석은 청록색의 밤으로 가버렸다. 어쩌면 다행인 것이다. 이제 그 녀석에게 줄 도시락을 챙기지 않아도 된다. 장례식장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는데 그 녀석의 동생이라며 나에게 무엇인가를 건넸다. 동생은 남동생으로 그 녀석과는 다르게 생겼다. 많이 울어서 얼굴이 울퉁불퉁했다.


“형이, 형이 이걸 전해 드리랍니다.” 그 녀석의 동생은 나에게 서류봉투 하나를 건넸다. 그 녀석은 내 앞으로 봉투를 하나 남겼다. 그 봉투에는 자신의 휴대전화와 17만 원이 들어 있었고 휴대폰은 알아서 처분해 달라고 되어 있었다. 17만 원은 얻어먹은 도시락 값이라고 했다. 그 녀석은, 죽으면 새로 지은 장례식장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는데 그거 하나만은 소원대로 이루어졌다. 그 녀석의 휴대전화 바탕화면에 @kimsgirl라는 아이디로 인스타그램 디렉트 메시지가 계속 들어왔다. 그 녀석이 사랑하는 여자임에 틀림없다. 여자는 그 녀석의 소식을 아직 모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비밀번호를 몰라 여자에게 연락을 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만들어서 여자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갔다. 여자는 한국에 있지 않고 중국에 있었다. 중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 여자였다. 그 녀석과 여자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여자의 팔로워는 300명 정도였다. 그중에 그 녀석의 아이디로 보이는 계정을 찾았다. 300명 중에 @lifeisggool라는 아이디를 사용하고 있는 그 녀석의 인스타그램에는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 수 없는 사진과 글뿐이었다. 전부 좋은 식당에서 찍은 고급스러워 보이는 음식 사진과 헬스클럽에서 기구를 드는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그 녀석은 지금보다 젊고 활력에 넘치는 모습이었다. 정장을 입은 멋진 사진도 가득했다. 그 녀석이 회사에 다닐 때 찍어 놓은 사진으로 인스타그램을 하면서 중국에 있는 한국 여자와 연락을 하며 지낸 모양이었다. 그 녀석의 피드는 찬란했지만 그 녀석은 외로웠다. 외로운 자유를 누리지 못했다. 현실을 견디지 못해 이상한 말을 쏟아내고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렌 선 안으로 들어가 필사적으로 외롭지 않게 지내려 했다. 그 녀석이 이 도시에서 외로움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오직 나 정도가 그 녀석과 만나 밥을 먹을 뿐이었다.


“사랑을 본다고 알 수 있나? 상처받을까 봐 만나는 건 실은 두렵지.”


그 녀석이 한 번은 이렇게 말을 했었다. 이 도시에서 사람들은 두려움을 가득 짊어지고 누군가를 만나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또 다른 사람의 품에서 그 상처가 아물기를 바라고 있다.


매달 청구서 보는 게 지긋지긋하다. 청구서, 고지서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 같은 엉망진창인 인간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종이다. 종이가 이렇게 두렵다는 걸 예전에는 몰랐다. 편의점에서 거스턴으로 가기 전 15분, 청록색의 젖은 어둠이 껴 있는 밤하늘을 바라볼 수 있어서 다행이려나. 그 녀석이 부러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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