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14

379

by 교관
A.jpg


379.


“그럼요, 당연한 거 아닌가요. 당신이 남으려고 하지 않아서 저도 결정을 해야 했어요. 물론 고민이 심했어요. 그건 사실이죠. 전 이곳 생활도 나름대로 만족하며 살고 있는 축에 속하는 인간이니까요. 이거 당신 말투죠?(웃음) 하지만 당신을 택했어요. 왜 그런 선택을 했냐고 묻지 말아 주세요. 인간은 수많은 선택 속에서 하나를 택해야 하고 선택을 당하면서 마무리하는 거니까요. 전 당신과 함께, 당신 옆에 있을 거라구요. 이제 당신 뒤에서 당신의 뒷모습만 바라보는 짓은 하지 않겠어요. 회사에서도 이미 사표를 냈어요. 사장님은 골머리를 앓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


는개의 말에 방파제에 침묵이 흘렀다. 침묵은 저 먼 하늘처럼 찐득하고 거무스름했다. 진흙처럼 물기 없는 침묵은 두 사람의 주위를 에워쌌다. 끈적끈적하고 무거운 침묵을 깨트려 보려고 했지만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마동은 잠시 회사의 상황을 떠올려보았다.


자신을 포함한다면 회사내부는 가장 믿을만한 세 사람을 잃었다. 시간이 지나면 빈자리가 메꿔지겠지만 그전까지는 골치가 아픈 일들이 매복하고 있다가 튀어나올 것이다. 마동이 맡아서 하던 일과 는개가 하던 일을 인수인계받아서 실무과정에 들어가는 시간만 해도 몇 개월이나 걸린다. 교육을 받고 실전업무에 바로 투입이 되었다고 해도 일을 척척 해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무를 능숙하게 처리하는 건 오로지 경험과 시간을 들여서 재능을 끌어올리는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클라이언트에게 꿈의 리모델링을 전달해야만 한다. 꿈의 리모델링은 꿈을 맡긴 사람과 그 꿈을 맡을 사람과의 신뢰가 형성이 되어야만 비로소 꿈의 채취가 가능했고 리모델링의 작업이 순조로운 것이다.


신뢰라는 건 단시간에 만들어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신뢰를 통해서 작업자와 클라이언트 사이의 결여된 부분들의 이음새를 맞춰갈 수 있는 것이다. 오선지와 음표는 신뢰를 통해 이루어져 있다. 오선지의 음표가 규칙적으로 나열되어 있다가도 우연히 하나가 이탈해버리고 나면 촉이 엉클어지고 음은 엉망이 되어 버리는 음계처럼 회사는 단조로운 반복이 진행되어야 하지만 시스템 하나가 틀어지고 나면 꼬이게 되고 만다. 그렇게 한 번 무너진 신뢰는 다시 회복하기가 힘들었다.


빗방울이 다시 굵어지더니 거세게 내렸다. 굵어진 빗방울은 바다에 떨어져 수천 개의 음표를 만들어냈다. 굵어진 빗방울은 누린내를 동반했다. 코를 막아야 할 만큼 누린내는 심하게 방파제에 퍼졌다. 는개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마동은 움직임 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그녀에게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옆으로 보이는 는개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 속은 완연히 다른 세계가 도래해 있었다.


“이것 봐, 는개는 이곳에 오는 게 아니었어.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게 좋아.” 잠시 틈을 두었다. 그 틈을 이용해 그녀는 마동의 손을 꼭 잡았다.


“난 이제 곧 어떤 문을 통과할 거야. 문을 통과할 거라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는 아주 많은 문이 존재해 있어. 나는 매일 몇 개의 문을 통과하며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지. 저 문을 통과하면 오늘은 어떤 변화된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하며 작은 설렘과 조바심이 내 마음의 옅은 부분에 자리 잡고 있었어.”


마동은 쏟아지는 졸음을 참아가며 말했다. 그녀는 마동의 마음을 아는지 손을 더욱 꼭 쥐었다. 는개의 부드러움이 전해졌다.


“거실과 복도사이에 있는 둔탁한, 유리가 없는 아파트 복도 문을 지나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유리로 되어있는 아파트현관문을 거쳐 썩 내키지 않는 색의 자동차문을 열고 닫으며 건물의 두꺼운(1센티미터가 넘는) 2중 유리문을 두 개나 지나 통과하여 일하는 사무실의 철제플라스틱 문을 열고 들어와 책상에서 일을 하기까지 매일매일 온도와 환경이 다른 두 공간을 지나친다는 알 수 없는 작은 기대가 내 삶의 조그마한 부분을 차지했어.” 마동은 말을 하면서도 졸음에 힘겨워했다.


좋음이 이렇게나 쏟아지다니.


“문은 정말 특수성을 띠고 있다고 생각을 해. 내가 뇌생리학을 전공한 건 아니지만 뇌생리학적으로 문이 없다고 가정을 하면 분명 인간은 불안함에 몸이 떨리겠지. 심장이 뛰고 잘 걷지도 못할 거야. 문은 그런 특수성을 지니는 거야. 우리는 보통 문이라는 특수성을 지닌 물체에 대해서 조금은 성의 있게 다가갈 필요가 있어.” 마동의 말이 끊어지자 그녀가 마동의 팔에 팔짱을 끼고 팔에 힘을 주었다. 놓치지 않겠다는 듯.


“좀 더 가까이서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는개가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어둠의 도트가 어떠한 방향으로 움직이려는지 몰라도 꿈틀거림이 많아 느껴졌다. 마동은 쏟아지는 졸음을 떨쳐 내가며 이야기를 했다.


“어쩌면 인간은 좀 더 튼튼하고 안전한 문이라는 관념 속에 갇혀서 상주하기를 늘 원하고 있어. 만약 자동차의 문이 없다고 가정을 한다면 정말 끔찍하지.” 마동의 말이 공감이 간다는 듯 는개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이 없는 자동차 안에서 그렇게 마음 놓고 담배를 피워 대며 운전을 할 수 있을까. 안전벨트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는 않을 테니까. 우리가 은행에서 밖으로 나올 때 이 문으로 나갈까 저 문으로 나갈까 하며 고민하는 부분은 한가한 일요일에 마트에서 녹차가루를 고르는데 이 물품을 고를까, 저 물품을 고를까 하는 식의 고민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띠는 거라구. 어떤 문으로 통과할까, 하는 고민은 마트에서의 고민처럼 혼란스럽지가 않다는 거야, 지극히 자연스러운 거라구.”


[계속]

이전 21화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