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철
12.
하지만 호철이는 버스에서 생활하지 않고 밖에 있는 컨테이너에서 생활했다. 훨씬 크고 좋은 방이었지만 뭔가 아쉬웠다. 호철이의 방에는 재미있는, 처음 보는 것들이 많았다. 전자기기와 각종 부품 그리고 영화에서나 보던 철제로 된 무기 같은 것들이 가득 있었다. 호철이는 냄비에 있는 짜장을 데워서 밥 위에 올려 주었다. 우리는 그걸 맛있게 먹으면서 놀았다. 천국이었다. 호철이는 친구를 부르는 건 처음이니 나에게 이것저것 먹을 것들을 내주었다. 하지만 호철이가 대부분 먹어 치웠다.
호철이는 사실 그렇게 많이 먹지도 않았다. 물론 나보다는 많이 먹었지만, 라면도 두 개 정도 먹으면 배불러했다. 라면 두 개 정도는 나도 가끔 끓여 먹었다. 라면은 졸이듯이 끓여서 먹는 걸 좋아해서 호철이와 나는 토요일에는 같이 라면을 끓여서 먹곤 했다. 호철이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마시멜로라고 부르는 선생님 중 가장 미운 사람은 영어 선생님이었다. 영어 선생님은 완벽하게 학벌주의, 성적 위주로 학생들을 대우했다.
그러니까 호철이와 나는 영어 선생님이 대우해 주는 학생에 속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영어 성적이 제일 낮았기 때문이다. 영어 선생님은 억양을 몹시 중요하게 생각했다. 억양을 왜 그렇게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한국말이라면 억양 때문에 소통이 안 된다거나 하는 일이 없다. 영어는 억양이 이상하면 대화가 안 되는 것일까? 분명 그런 것도 아닐 텐데 선생님은 억양에 모든 수업을 할애했다.
억양이 잘못되었다고 생각되면 영어 선생님은 매를 들었다. 수업 시간 내내 억양만 가르쳤다. 그는 늘 드럼 채를 들고 다녔다. 그걸로 칠판을 탕탕 두드려가며 억양을 강조했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때도 드럼 채를 사용했다. 영어 시간에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호철이가 해 오지 않았다. 숙제는 아침에 반장이 전부 거둬간다. 호철이만 숙제를 내지 않고 있다가 재빠르게 날치기로 작성해서 제출했다.
억양을 표시해서 제출하는 게 숙제다. 호철이는 바빠서 억양을 아무렇게나 마음대로 표시해서 냈는데 영어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들어오자마자 호철이를 불러냈다. 바로 옷소매를 걷고 나서 드럼 채로 머리를, 정수리부터 뒤통수까지 드럼을 치듯 때렸다. 호철이가 아파서 아야 아야 하는 소리를 냈을 때는 영어 선생님은 때리다가 더 화가 났는지 드럼 채를 마구 휘둘렀다.
숙제를 지 마음대로 해와! 라며 소리를 지르더니 드럼 채로 등을 때리고 허벅지를 난도질했다. 호철이는 손으로 허벅지를 막다가 손가락도 맞았다. 호철이는 아파서 고통스러워했다. 영어 선생님은 그런 호철이의 모습에 더 화가 났다. 그따위로 숙제하니 영어 성적이 바닥을 기는 거야! 집에서 그렇게 가리키디! 라며 부모님까지 들먹이며 드럼 채를 마구 휘둘렀다. 영어 선생님은 자기가 때리다가 자기 분에 못 이겨 드럼 채를 격렬하게 휘둘렀다. 그때 복도를 지나가던 미술 선생님이 들어와서 말렸다.
진정 좀 하시라고, 하지만 이미 폭주 기관차가 된 영어 선생님은 멈추질 못했다. 미술 선생님은 뛰쳐나가고 반 아이들은 가만히 얼음처럼 있었다. 호철이는 맞다가 쓰러지고 말았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책상이 끼이이익 앞으로 밀려갔다. 그 소리에 영어 선생님이 나를 획 쳐다보았다. 드럼 채로 나를 가리키며 무서운 얼굴을 했다. 다시 쓰러진 호철이를 때리려는데 미술 선생님이 담임을 데리고 왔다.
호철이는 양호실에 누워 있었다. 우리는 늘 맞았지만 호철이는 이번에 충격이 컸다. 그렇게 말을 많이 하던 친구였는데 내가 양호실에 있어도 그저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누워 있는 것도 고통스러워 보였다. 도대체 선생님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호철이를 심하게 때린 걸까. 억양표시를 잘못했다고 해서 그렇게 학생을 구타할 수 있는 일일까. 애들 말을 들어보니 호철이는 영어 선생님에게 일 학년 때에도 많이 맞았다고 했다.
호철이는 몸에 멍이 들어도 집에 이야기하지 않았다. 고물상 하시는 부모님에게 걱정 끼치기 싫었고 또 학교에 부모님이 오는 것도 싫었다. 학교에 부모님들이 오면 대부분 촌지나 선물을 선생님에게 줬기 때문이다. 그걸 영어 선생님이 알고 있는 것 같다고 아이들이 그랬다. 호철이는 부모님에게 맞아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선생이면 학생을 마음대로 폭행해도 괜찮다는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이렇게 호철이를 개 패듯이 때릴 수 있을까. 그날 호철이가 양호실에서 나올 때까지 늦게까지 기다렸다. 호철이는 애써 웃음을 보였지만 매우 힘들어 보였다. 나는 호철이에게 택시를 타고 갈래?라고 물었다. 하지만 호철이는 걸어가기를 원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