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리운 날도 사라질 날도 67

소설

by 교관
다운로드 (1).png


67.


작업조의 몇 명 중에 몇은 집으로 갔고 나와 조장과 다른 직원이 남아서 포장마차에서 생명력이라는 전혀 없는 붕장어구이에 소주를 마셨다. 회사의 비리와 작업시간 배분의 불만에 대해서 그들은 술자리에서 담판을 지을 것처럼 필사적으로 이야기를 했다. 어차피 결론이 날 문제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러나저러나 결론이 나지 않을 문제면 고민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을 했다. 포장마차에 앉아서 조장의 알아들을 수 없는 생채기에 방뇨의 기운이 밀려왔다. 액체를 마시면 소변이 마렵다. 당연한 진리이며 세상은 이런 당연함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 사이에 금이 가고 틈이 벌어지면 삐거덕거리게 된다. 그것이 사회이든, 인간이든 다르지 않다. 나는 포장마차를 나와서 골목길을 꺾어 모퉁이에서 오줌을 갈겼다. 누군지 모르는 두 사람이 먼저 와서 소변을 보면서 올라가지도 않는 소변을 벽면에 대고 포물선을 만들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포물선에는 하얀 김이 올라와서 묘한 풍경을 만들었다. 그들 역시 그들이 속해 있는 회사에 대해서 욕을 하고 있었다. 사장과 함께 약자를 괴롭히는 직장 선배에 대한 신랄한 욕을 퍼붓고 있었다. 술을 마시는 노동자들에게는 모두 공통점이 있었다. 직원들에게 욕을 듣지 않으려면 회사의 사장이 되지 않아야 했다. 모두가 욕을 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욕을 하며 뾰족한 자신의 삶을 조금씩 마모시켜 가는 것이다.


나는 한 손으로 벽을 짚고 소변을 본 다음 포장마차로 들어와서 소주를 한잔 입에 털어 넣었다. 주인아줌마에게 검은 맥주는 없냐고 물었다가 황당한 답변만 들었다. 술을 많이 마실수록 공복이 위장을 잠식했다. 나는 주인아주머니에게 라면 한 그릇을 주문했다. 조장과 직원에게도 한 그릇씩 하겠냐고 물었지만 그들의 대화에 내 말이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라면은 촌스러운 연두색의 멜라민 그릇에 담겨 내 앞에 놓였다. 라면 특유의 냄새는 그만의 세계를 만들었다. 스프의 냄새는 허기를 더욱 북돋웠으며 국물 안에 들어있는 면발은 오래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오랫동안 없어졌던 그 기억.


라면 그릇을 쳐다보고 있으니 방향성을 몽땅 잃어버리고 기억 속에 있었던 임계점으로 들어갔다. 지나간 옛 시대의 흥분이 보였다. 라면이 자아내는 스프의 향에서 그녀의 오드 콜로뉴가 퍼져 나왔다. 나는 라면 한 젓가락을 떠서 입으로 넣었다. 라면을 씹어 삼키고 국물을 한 모금 마시는 순간 구토의 기운이 올라왔다. 내 좁은 마음속에 그녀의 소멸이 남긴 부재의 구멍은 과장되게 큰 구멍이었다. 구멍에는 내가 살아오면서 어떤 것도 그곳에 닿지 못했지만, 라면을 한 젓가락 먹는 순간 라면의 면 가닥이 부재의 구멍을 긁었다.


나는 라면을 먹다 말고 포장마차를 뛰쳐나와 조금 전 소변을 본 곳으로 가서 토악질했다. 토해내는 음식 찌꺼기에는 회식 자리에서 먹은 음식은 나오지 않았다. 허리를 구부리고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나의 눈은 피하지 않고 입에서 쏟아지는 구토물을 보았다. 내가 쏟아내는 내용물은 전부 칼국수의 잔재뿐이었다. 칼국수는 몇 년 동안 몸의 과장된 구멍에 굳은 채로 들러붙어 있다가 오늘에서야 부재의 구멍으로 빠져나왔다.


[계속]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리운 날도 사라질 날도 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