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버리다
이 에세이는 하루키가 언급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2019년 6월 일본 문예춘추에 특집으로 실린 하루키의 글이다. 이 문예지는 코로나가 덮치기 전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일본으로 달려가서 이 책 한 권 달랑 사들고 왔다. 비록 읽을 수는 없지만 손에 가지고 싶은 마음이 컸었다.
제목은 ‘고양이를 버리다- 부재: 아버지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며 아직 한국어로는 나와 있지 않지만 인터넷에는 많은 번역본이 있다. 여러 번역본을 읽어 본 결과 개인적으로 심야 북카페에서 번역해서 낭독하는 것이 가장 좋아서 입을 다물고 그걸 그대로 받아 적었다. 그간 하루키는 2008년 아버지가 죽기 전부터, 또 죽어서도 아버지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2009년 예루살렘 문학상 시상식에서 아버지에 대해서 길게 언급을 했다)고 아버지 역시 살아생전 자신의 아들 하루키의 소설을 거의 읽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루키는 어느 날 문득(이라고 해야 할지)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 하루키가 고양이를 좋아하게 된 환경부터, 그리고 해변의 카프카에서 다무라 녀석과 아버지와의 관계, 토니 타키타니의 아버지가 오버랩되며 태엽 감는 새에서 러시아 군인을 처형하는 장면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하나레이 베이에서 사치의 모습도 나타난다. 그리고 하루키가 자신이 가장 무섭게 쓰려고 했다는 ‘헛간을 태우다’가 어째서 그렇게 쓰였는지에 대해서도 간파가 된다. 일본 우파에 비난을 받을 걸 알면서도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난징사건에 대해서 쓴 계기를 떠올리게 되며, 그것을 생각하면 살아있는 현존 작가에 대한 무한 경의를 표하게 된다. 앞으로 몇 편 볼 수 없는 장편소설에 대해서 안타까운 마음도 깊게 든다. 하루키를 좋아한다면 읽어보고 머리를 끄덕거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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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어느 날 나에게 시나가와 원숭이가 다가와서 이봐 무라카미 내가 작가 우대 차원에서 네 이름이랑 성 둘 중 하난 남겨둘 수 있는 선택권을 주겠어. 무라카미 그리고 하루키 둘 중 무얼 선택하겠나.라고 한다면 나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잠시 망설여 본다. 하지만 그리 오래 걸리진 않는다. 무라카미, 나는 무라카미를 택하겠어. 하곤 그 녀석에게 하루키를 넘겨주겠지. 시나가와 원숭이 손에 들어간 하루키란 이름은 내 소설 속에서처럼 흔적이 없이 사라지곤 잊힐 것이다. 무라카미라는 성은 흔하니까 이름을 남겨놔야 되는 거 아닌가요?라고 되묻겠지만 글쎄, 내게 있어서 무라카미는 하루키보다 더 내밀한 무엇이다. 무라카미라는 성에는 그간 내가 침묵해왔던 나의 가족사와 그에 대한 나만의 문장부호들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다. 대게는 물음표였지만 언젠가부턴 길고 긴 말줄임표가 되어버린 나의 무라카미. 이제 나는 작가 생활 40년간 점 3개로 일관해왔던 무라카미 얘기를 시작하려 한다. 모두가 잊었고 나조차 잊을 뻔한 나의 아버지 무라카미 이야기를.
초등학교 시절 어느 여름날이었다. 그날 오후 아버지와 나는 집에서 키우던 암고양이를 버리려 해안가에 갔다. 당시 우리 집엔 출신 불명의 고양이 몇 마리가 자유롭게 오갔는데 그중 한 녀석 배가 불러오기 시작한 건지 어쩐 건지 지금은 생각조차 나지 않는 모호한 이유로 그 암고양이는 퇴출 대상이 되었다. 반려동물에 대한 동질의식이 지금과 같지 않던 때라 당시 그런 식의 상식선에서 용인될 법한 흔한 일이었다. 아버지가 자전거를 몰고 나는 뒤에 올라타 고양이가 든 상자를 안았다. 슈크가와를 따라 고로엔의 해변까지 가서 고양이가 들어있는 상자를 방풍림 안에 두고는 ‘사요나라‘ 이 한 마디만 남긴 채 뒤도 보지 않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자전거에 삐걱되는 소리가 우리 부자의 긴 침묵을 채우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 불쌍하지만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하는 기분으로 드르륵 현관문을 여는데 아 세상에 아까 버리고 온 고양이가 야옹, 애교를 부리며 우릴 맞아주는 게 아닌가. 어떻게 우릴 앞질러서 집으로 돌아왔는지 그때도 지금도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 고양이보다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건 그 순간 아버지의 표정이었다. 얼이 나간 듯 멍한 표정이 이내 흥미롭다는 얼굴로 변했고 마침내는 안도감마저 돌고 있다는 것을 나는 눈치챌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그 고양이를 계속 기르게 되었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집에 돌아왔으니 뭐 기르는 수밖에. 단념하는 심정으로.
나의 할아버지, 무라카미 벤시키는 교토에 있는 제법 큰 절에 지주였다. 그 시절에는 아이가 많은 경우 입을 줄이기 위해 장남 이외의 아이들을 양자로 보내거나 어느 절에 견습생으로 맡기는 일이 흔했다. 그런 무언의 관습에 따라 둘 째였던 나의 아버지는 나라 현 어느 절에 맡겨졌다. 언젠가 여름 아버지와 내가 해변가로 고양이를 데려갔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의 절로 돌아오게 되었다. 물론 우리 집 고양이처럼 할아버지보다 앞질러 도착해 있었던 건 아니다. 추위 때문에 건강을 해쳤다는 것이 귀가 조치의 표면적 이유였지만 새로운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게 컸던 듯하다.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다시 평범한 일상생활을 했다곤 하지만 아니 분명 아니다. 자신의 손을 놓아버렸던 부모에 대한 기억은 유년시절 아버지에 대한 상처로 어느 정도 깊게 자리 잡았던 걸로 보인다. 출가에 실패한 무라카미 가의 일원은 다양한 선택지를 가질 수 없었다. 절 집 아들이 진학한다면 그건 당연히 불교 관련의 학교 일터, 아버지는 교토 산중의 어느 학교에서 승려가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어두운 새벽 참선을 마치고 마당을 쓸며 공양을 바친 후 경종 공부를 했으리라. 끝도 없는 불교 경전 속에서 생과 사 희로애락과 카르마를 아버지는 무척 모범적인 태도로 탐구했을 것이다. 당시 그가 운명에 대한 공부까지 마쳤는진 알 수 없지만 1938년 시월의 사건은 불교 경전보다 더 혹독하게 운명론을 가르쳐 주었다. 그해 스무 살이 된 아버지는 예기치 못한 사무적 실수로 중일전쟁에 징병되었다.
처참한 난징 대학살 이후 10개월이 지난 상황이었음에도 엄격한 신병 교육이 있었고 38식 보병 총이 쥐어졌으며 수송선에 실려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는 중국 전선으로 투입됐다. 아버지가 속한 부대는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중국군과 게릴라를 상대로 쉴 새 없는 전투를 반복하고 있었다. 평화로운 교토 산속의 절과는 모든 것이 정 반대인 세계. 거긴 틀림없이 커다란 정신적 혼란과 동요가 있었을 것이고 영혼에는 격렬한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혹시 아버지가 이 부대의 일원으로 난징 공략전에 참가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오랫동안 품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종군 기록을 구체적으로 조사해보려는 용기가 좀처럼 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직접 전쟁 얘기를 물어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것도 묻지도 듣지도 못한 채 2008년 8월 아버지는 온몸 구석구석 전이된 암과 심각한 당뇨병으로 교토 니시진 병원에서 90세 일기를 마감했다.
딱 한 번 아버지의 소속 부대에서 중국인 포로 병사가 처형됐었다. 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어떤 심정으로 그렇게 갑작스러운 고백을 하게 됐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나는 여전히 초등학교 저학년이었고 고양이 사건 때처럼 모든 상황의 전후관계는 불완전하게 남아있다. 고립된 그 기억 속의 아버지는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하지만 담담하게 처형 광경을 설명하고 있었다. 중국인 병사는 자신이 어떻게 죽게 될지 알면서도 소란을 피우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은 채 침착하게 참수를 맞이했다고 한다. 그는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어,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목이 잘려 죽은 그 중국인 병사에 대한 경의를 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깊이 간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같은 부대의 동료 병사가 처형을 집행하는 것을 옆에서 보기만 했던 건지 아니면 좀 더 깊이 관여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내 기억이 혼탁한 것인지 아니면 아버지가 처음부터 애매하게 말 한 건지 이제는 확인할 수조차 없다. 그러나 어느 쪽이더라도 그 사건이 용사이기 전에 승려였던 무라카미의 영혼에 커다란 응어리로 남았다는 사실은 명백해 보인다.
그 후로 아버지는 전장에서의 체험에 대해 끝까지 침묵을 지켰다. 스스로 한 일이든 목격한 장면이든 그 어떤 정황도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건만은 피를 나눈 아들인 내게 어떤 형태로든 남겨두지 않으면 안 됐다(고) 느꼈던 게 아닐까. 그것이 설령 서로의 마음에 상처로 남게 될 지라도 말이다. 아버지의 회상 즉 사람의 목이 군도로 잘려나가는 잔인한 광경은 말할 것도 없이 어린 나의 마음에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하나의 정경으로 다시 말해 하나의 유사체험으로 말이다. 바꿔 말하면 아버지 마음속을 오랫동안 짓누르고 있던 트라우마를 아들인 내가 부분적으로 물려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 연결된다는 게 그런 것이기도 하고 역사라는 것 또한 그런 류이다. 그 본질은 이어받는다는 행위 내지는 이어져 내려오는 의식 속에 존재한다. 너무나 불쾌해서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은 내용이더라도 인간은 스스로 그것의 일부로써 이어받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역사라고 하는 것의 의미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그 숭고한 의미의 역사는 한 개인 또는 한 가족이 감당하기에 너무나도 버거운 존재였다.
아무런 준비 없이 전이된 아버지의 트라우마는 알게 모르게 아버지와 나 사이 긴 침묵을 불러왔고 해가 갈수록 그 골은 깊어져 내가 도쿄로 대학 진학을 하고 역 재즈 카페를 운영하다 작가가 될 무렵에는 무라카미라는 성 말고는 부자지간 그 어떤 연결고리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나와 아버지는 자란 시대도 환경도 달랐고 사고방식과 세계관도 달랐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랬다. 인생에 어떤 시점에서 그런 점을 새삼 관계의 재편성 같은 걸로 인식했다면 여기는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로서는 그런 새로운 접점을 시간과 공을 들여 추구하기보다 일단 내가 하고 싶은 일에 힘과 의식을 집중하고 싶었다. 그때 나는 아직 젊었고 눈앞에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이 많았으며 스스로 추구해야 할 목표를 너무나도 명확히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복잡하게 얽힌 혈연과 사용보단 그 편이 내겐 훨씬 중요한 안건이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그 무렵 나에게도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나만의 작은 가정이 생겼다는 사실이다. 전쟁 중 약혼자를 잃은, 훗날 나의 어머니가 된 한 여인을 만나 평범한 남편으로서 그 작은 울타리를 지키려 했었던 그 시절 나의 아버지 무라카미처럼.
집으로 돌아온 고양이 사건 이후 우리 집엔 더 많은 고양이가 터를 잡았다. 새끼를 밴 고양이나 태어난 새끼 고양이에게도 너그러워졌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문득 그때의 일 하나가 더 생각난다. 그날도 나는 할 일 없이 마루에 누워 새끼 고양이들을 보고 있었는데 그중 한 놈이 마당에 있던 큰 소나무를 슬금슬금 올라가기 시작했다. 새끼 고양이는 나무 밑동을 기어 올라가다 말고 한 번씩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마치 내 앞에서 자기의 용맹과 기민함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이 말이다. 나는 그 녀석의 도도한 눈빛이 꽤나 흥미로워 그래, 어디까지 올라가나 두고 보자 하는 심상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고양이는 줄기와 잎들이 무성해 눈길이 닿지 않는 곳까지 올라가 버리고 말았다. 그리곤 이내 소나무 위쪽에서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올라갈 수도 내려올 수도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아버지께 구조요청을 했지만 사실 아버지 당신께도 별다른 수가 없었다.
아카사카 시나몬(‘하루키의 언어'에도 나오죠)처럼 상공으로 올라가 버린 새끼 고양이는 구출되지 못한 채 하룻밤을 꼬박 울어대더니 어느 순간 종적을 감춰버리고 말았다. 어쩌면 밤사이 어찌어찌 아래로 내려와 깊은 배신감에 치를 떨며 집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끝내 지상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소나무 가지 어딘가에서 탈진한 채 서서히 죽어갔을지도 모른다. 울음소리가 멈추고 한참이 지나도록 나는 그 소나무를 올려볼 때마다 녀석의 모습을 떠올렸다. 작은 발톱을 세워 필사적으로 가지를 움켜쥔 채 바짝 말라죽은 작고 하얀 새끼 고양이의 모습을. 처음 그 나무 기둥을 올라설 때 그런 기구한 운명이 닥쳐오리라는 걸 고양이는 짐작이나 했을까. 우연히 몰고 온 운명의 소용돌이는 그렇게 새끼 고양이에게도 나의 아버지에게도 도무지 피할 수 없는 가혹한 결말을 안겨주고 말았다.
이런 나만의 개인사가 과연 독자들에게 공감대를 안겨줄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나는 손을 움직여 실제로 문장을 쓰는 행위를 하지 않으면 사물을 생각할 수 없는 유형의 인간인지라 이렇게 기억을 더듬어 과거를 조망하고 그걸 눈에 보이는 언어로, 소리 낼 수 있는 문장으로 치환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문장을 쓰면 쓸수록 그것을 다시 읽으면 읽을수록 나 자신이 점점 투명해지는 것 같은 불가사의한 감각에 휩싸이게 된다. 허공에 손을 들어 올려 가만히 바라보면 손바닥 반대편이 희미하게 보이는 것 같은 기묘한 착각이 들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