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에세이
우리가 보통 인간승리라고 하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들은 스포츠 스타들이다. 그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할 만큼 고된 훈련과 노력으로 인간의 한계를 넘고 스포츠로 사람들에게 환희와 감동을 준다. 그에 못지않게 데프 레퍼드라는, 30여 년 전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해비 메틀 밴드의 이야기 역시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팬들의 눈물을 쏙 뽑아냈다. 그 속에는 분명한 인. 간. 승. 리. 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재즈 그룹 맨해튼 트랜스퍼는 멤버들이 뉴욕의 캡(택시)에서 손님으로 합승하여 만나 우리 음악 한 번 해볼래? 그렇게 시작해서 세계가 깜짝 놀란 재즈그룹이 되었다. 한국사람들이 많이 좋아하고 카페에 틀어놓은 우선순위에는 오래되었지만 맨해튼 트렌스퍼의 음악은 늘 있다.
맨해튼 트랜스퍼처럼 우연히 밴드가 형성된 건 아니지만 데프 레퍼트 보컬인 조 엘리엇은 막내인 드러머 릭 알렌이 15살 때부터 같이 다니며 음악을 했다. 조 엘리엇은 레드 제플린의 존 보냄보다 릭 알렌이 더 낫다고 할 정도로 릭의 드럼 연주를 칭찬했다.
릭은 밴드에 들어온 뒤 학교도 자퇴하고 그야말로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데프 레퍼드에 바친다. 데프 레퍼드는 거친 음악을 하는 미국적인 해비 메틀 밴드인데 이들은 영국 출신이다. 그러니까 이전에 아메리칸 인베이젼을 성공시킨 영국 음악에 비해 본격적인 거친 음악으로 미국을 초토화시켰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들의 파이로니아 앨범이 성공가도에 우뚝 섰을 때 릭 알렌의 나이는 고작 스무 살이었다. 아주 어린, 거친 음악을 하기에는 너무 터무니없는, 어쩌면 귀여운 외모의 릭 알렌은 기쁘고 또 기뻤다. 그것을 숨길 수 없는 나이였다. 데프 레퍼드는 질주한다. 그들의 음악을 막는 것은 지구에서 어떤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거침없을 것 같았던 대로는 불운한 사고로 끊어지게 된다. 릭 엘런은 1984년 12월 31일 휴가를 마치고 도로를 달리는데 앞질러 나가는 차와 옥신각신하다가 차가 뒤집어지고 만다. 안전벨트도 매지 않아서 커브길에서 그대로 차는 뒤집어졌고 릭은 큰 사고를 당한다. 멤버들은 그야말로 공황상태였다.
병원에서 4일 동안 치료를 했지만 결국 왼팔을 잘라내기로 했다. 감염의 위험이 있었다. 릭은 당시 자신은 더 이상 드럼을 칠 수 없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멤버들은 릭 없이 녹음을 진행했다. 당시 멤버들은 릭은 우리들이 같이 앉아서 울어주기를 바랄까? 아니다, 릭은 그걸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라며 녹음을 진행하다가 결국 릭의 왼팔 절단 소식을 듣고 멤버들은 울어버리게 된다.
릭의 왼팔 절단 소식은 당시 밴드를 구해야 하는 드러머들에게는 희소식이었다. 전 세계 드러머들에게 전화가 쇄도했다. 외팔이는 드럼을 칠 수 없으니 드러머를 구하지? 내가 할게. 그때 전화기에 대고 보컬인 조 엘리엇은 거칠게 꺼지라며 전화를 끊었다. 데프 레퍼드는 해체는 가능하지만 교체는 불가능하다는 마인드였다. 릭이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도 포기하지 않는다. 멤버들은 릭에게 그렇게 말했다.
회사의 프로듀서 머트 랭은 병원에서 릭에게 재활이 가능하다, 네가 두 팔로 쳤던 드럼을 한 팔과 왼발로 하면 된다, 생각해보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쉬운 일은 결코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이 너에게 달렸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들은 그 누구도 해보지 않았던 방법으로 고민 없이 그 길을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앨범이 나오지 않으면 밴드의 생명도 끝이거니와 회사도 망하게 된다. 음악은 예술이지만 음반은 산업이니까. 멤버 형들과 프로듀서를 본 릭은, 내가 드럼을 칠 수 있게, 우리가 이걸 해낼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하기에 이른다.
1년 반 정도에 한 장씩 나오던 앨범이 3집 이후 2년 동안 미뤄지고 있었다. 재활 시간 동안 멤버들은 릭이 드럼을 칠 수 있을 동안 아무런 조건 없이 기다렸다. 릭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마음으로 노력을 하여 6달 만의 퇴원을 6주 만에 하게 된다. 그리고 회사에서 특수 제작해준 드러머로 하루 종일 연습을 한다.
화장실을 가는 시간만 빼고는 드럼과 싸우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엇박이 수도 없이 났어도 누구한테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렇게 매일 꼬박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연습에 연습을 하던 어느 날 릭은 멤버들을 부른다. 그리고 레드 제플린의 노래를 드럼으로 연주했다.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 때문에 릭과 형들은 모두 끌어안고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2년 반이 지난 1986년 여름, 데프 레퍼드는 공연을 하게 된다.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사태에 대비해서 예비 드러머를 준비하고 연주를 했다. 공연장은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꽉 들어차고 릭은 모든 곡을 무리 없이 소화해내기에 이른다. 릭은 이날 엄청난 눈물을 쏟아냈고 그들을 기다려준 팬들 역시 눈물을 쏟아냈다. 릭은 그날을 절대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유튜브로 릭의 연주를 보면 두 팔로 치는 드러머만큼 모든 소리를 신기할 정도로 다 낸다. 그리고 발이 엄청 바쁘게 움직이는 것도 볼 수 있다. 데프 레퍼드의 팬들이라면 이런 모습이 감동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1987년, 3년 반 만에 세계를 강타한 ‘히스테리아’ 앨범이 나오게 된다.
그들은 공연장에서 미친 듯이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른다. 그야말로 폭발해버린다. 그들의 모습은 엠티비를 타고 전 세계로 뻗어 나갔고 한 팔로 드럼을 신나게 치는 릭의 모습에 사람들은 또 감동을 하고 열광했다. 외팔이 드러머라는 칭호가 붙었지만 릭의 연주는 이제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릭의 모습도 감동적이지만 그를 끝까지 믿어준 멤버와 그들을 잊지 않고 기다려준 팬들의 모습도 감동이다.
잊지 않는 것, 누군가를 잊지 않고 기다리는 건, 그건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데프 레퍼드의 히스테리아 공연에서 한쪽 팔로 연주를 하는 릭의 모습을 보는 팬들을 보면서, 그 팬들의 모습을 보는 릭을 보면서 인간은 서로 기억해내고 있다면, 잊지 않고 있다면 꽤 멋진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근래에도 꾸준하게 공연을 하고 있는 데프 레퍼드는 그 어떤 그룹보다 신나고 강렬하다. 모두 나이는 들었지만 중요하지 않다. 릭은 신나게 외팔이로 드럼을 두드린다. 그리고 수많은 팬들이 그들의 맞은편에서 같이 노래를 부르고 환호를 한다. 그거면 된 것이다.
히스테리아 앨범 중에서 빌보드 싱글 차트 2위에 오른 곡 ‘푸어 섬 슈거 온 미’
초반부터 들려오는 릭의 강렬한 드럼 소리에 미쳐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