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날의 멸망 26

소설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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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개도 봤을까. 이런 광경이 보이는 현상을 그녀도 느꼈을까.


마동은 는개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그녀의 의식은 다른 사람들처럼 읽히지 않았다. 마동이 집중을 해도 그녀의 의식에 닿지 않으며 어떤 은유의 희미한 형태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동은 자신이 느낀 이 감정과 본 광경에 대해서 는개에게 질문하고 싶었다. 더불어 자신의 변이에 대해서도 는개에게 말하고픈 욕망이 올라왔다. 마동은 자신도 모르게 쥐어짜는 목소리로 는개에게 저녁식사를 하자고 했고 는개의 미소는 조금 더 깊어졌다. 마동은 푸석해진 손으로 는개의 손등을 두드리며 풍선에서 바람이 빠져나가는 목소리로 고맙다고 했다.


는개는 마동의 자리에서 벗어나 그녀의 자리로 돌아갔고 마동은 리모델링 작업 분을 확인하고 오너를 만나기 위해 의자에서 일어났다. 휘청거렸다. 아찔했다. 일어나서 한참 동안 숨을 가다듬었지만 어지럼증이 심했다. 마동은 다시 의자에 앉았다. 책상에는 는개가 따 주었던 자양강장제가 숨바꼭질을 하는 어린아이처럼 가만히 서있었다. 마동은 그것을 집어 들고 마셨다. 검사가 있어서 아무것도 먹지 말라고 했지만 그래도 마셨다. 자양강장제는 맥주처럼 잘 넘어갔다. 목 넘김이 좋았다. 그동안 맛본 자양강장제의 맛이 아니었다. 자양강장제를 사람들이 마시고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는 그 한 병 속에 혈당을 올리는 과당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였다.


마동은 그동안 자양강장제 같은 음료는 마시지 않았고 는개도 이런 음료를 마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제오늘 그녀가 자양강장제를 건넸다. 어제 마신 자양강장제는 일반적인 그런 맛이었다. 아니 아무런 맛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마신 음료는 달랐다. 마동은 손에 들고 있는 병을 바라보았다. 어디에나 파는 그런 자양강장제와 다를 바 없는 음료였다. 5분 정도 앉아 있다가 일어났다.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이명도 멀어졌고 어지럼증도 사라졌다. 마동은 고개를 돌려 는개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몸살이 사라진 것 같았다. 마치 밤처럼. 그녀는 무엇인가 알고 있다.



사장실에서 오너가 컴퓨터 화면을 나에게 잘 볼 수 있도록 돌려놓은 후 서류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장실에 들어오니 사장실 안의 모든 사물이 제자리를 잃고 방황하는 떠돌이 개처럼 느껴졌다. 있어야 할 것과 사라져야 할 것들이 마구 뒤섞여 있었다.


“이봐, 고마동 큰일이야.” 비교적 굳건하고 냉정한 오너임에도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마동은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지는 못하고 턱을 살짝 들어서 의사를 표시했다. 오너의 눈에도 마동은 형편없이 보였지만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음을 미안해했고 마동도 오너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대체로 조직과 개인의 관계가 조금 특별한 회사에 마동은 몸을 담고 있는 것이다.


“클라이언트에게 심경의 변화가 왔네.” 오너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오너가 이렇게 불안해하고 크게 숨을 쉬는 모습은 근래에 들어서 처음인 듯했다. 클라이언트의 단순한 심경의 변화 때문에 이렇게 오너가 불안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마동의 생각이다. 드물었지만 고객들은 리모델링의 수정을 요구해 온 적이 있었다.


“클라이엔트가 핵변이의 플루토늄을 생활화하고 싶다는 게 그의 생각이네.” 오너는 물 컵을 입에 갖다 댔다. 마동은 사장실에 들어오니 다시 조금 어지러웠고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장실의 사물 때문에 눈앞이 약간 흐릿했다. 하지만 오너의 말을 듣고 마동은 큰 걱정할 거리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클라이언트가 그것을 원하면 해주면 되는 것이다. 초안 레이어 작업을 다시 하는 것이 힘들고 까다롭지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문제가 있으면 해답은 반드시 있으니까.


지금 세계는 핵연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생활을 하고 있다.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통해서 전기를 돌려쓰며 난방을 하고 시원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핵에너지를 개발하기 시작한 건 꽤 오래전부터 시행되어 왔다. 국내에는 현재 25개가량의 원자력발전소가 돌아가고 있고 이 나라의 총전력량의 35%나 원자력으로 공급되고 있으니 에너지 차원으로 꽤 효율적인 방법이다. 이렇게 원자력이 에너지원으로 많이 사용되는 이유는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라고 오너가 블랙아웃을 설명하던 술자리에서 했던 말이다.


“석탄, 수력, 풍력, 천연가스, 유류, 태양열과 비교하면 단연코 가격이 가장 저렴하게 사람들에게 공급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건 위험요소를 잔뜩 가지고 가야 합니다. 체르노빌이나 후쿠오카 원자력 사고를 보면 위험에 노출이 된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이 불안을 짊어지고 편리하고 값이 저렴하니까 사용을 합니다. 원자력이라는 에너지원이 인간사에 필요악이라는 것을 알지만 정부에 대한 불신을 뒷전으로 하고서도 감당을 하려고 합니다. 오너가 늘 말했지 않았습니까. 정부의 허가만 있으면 어려울 것은 없습니다." 마동은 장황하게(몸 상태가 좋지 못해 힘들게) 오너에게 말했다. 오너의 방 사물은 두 사람의 대화에 자세를 바로잡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 후.


“클라이언트가 정부 모르게 리모델링 작업을 해결해 달라는 것이네.”


마동은 오너의 말을 듣고 의자의 등받이에 등을 푹 기댔다. 의자가 아프다는 듯 삐거덕 소리를 내며 뒤로 휘어졌다. 이것은 분명 문제가 된다. 문제가 있는 것은 반드시 그 결과를 가져온다. 문제는 정부사람들과 갈등을 조장하고 정부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방편을 마련할 것이다. 그 방편에 ‘우호적’은 누락되어 있을 것이다. 특히나 현재는 감시를 당하고 있는 입장이다. 지금의 대화도 감시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고 마동은 생각했다.


“이미 거액의 현금을 클라이언트에게 받아 버렸네. 거부할 수 없었어. 지금 회사의 자금사정을 그 고객이 주는 수수료로 모든 것이 풀리네. 여기저기 졸졸 새는 물은 모두 막을 수 있지.”


오너는 불안하고 초조해 보였다. 겉은 나보다 멀쩡했지만 속은 쓰레기더미를 몇 날 며칠 치우지 않는 소각장 같을 것이다. 혼자서 고민을 하고 결정을 하기까지 무엇보다 태도를 정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마동도 의자에 무거운 몸을 파묻은 채 생각에 잠겼다. 마동과 오너 사이에는 서로 다른 여러 개의 공기가 결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정부 사람들의 감시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요.” 마동은 쇠붙이가 갈리는 목소리를 냈다.


“자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래서 자네를 불렀네.” 오너의 목소리는 평소 같지 않았다.


“전 지금 정부의 감시를 받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모든 것을 알아낼 수 있고 우리를 파멸로 이끌 수 있어요”라고 마동은 겨우 말을 했다. 1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1분의 시간이 이렇게 길게 느껴진 적이 드물 정도로 오래 흘렀다.


“내가 그동안 개인적으로 들고 다니며 작업하는 노트북이 있네. 기존의 인터넷회선과 전화망의 방식이 아니야. 추적이 불가능한 방식의 회선으로 파일을 공유하고 작업을 할 수 있네. 물론 파고들면 안전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네. 추적이 시작됐다 싶으면 기존의 회선에서 고든스티머 회선으로 전환해서 추적을 피하고, 파일을 담고 있는 카테고리는 다른 회선을 통해 이동을 하고 기존자리에 있는 파일은 오토딜리트가 된다네. 그대로 다 타버리는 거지. 재도 남지 않아. 그을음도 없이. 내가 그 방면의 전문가들을 알고 있어서 그동안 정부의 눈을 피해 가며 몇 건의 작업을 했네.”


오너는 아직 정부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정부의 감시가 이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면 피해 가는 방법은 어느 정도 모색을 해놨다네. 후에 문제가 발생하면 직원들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할 거야. 모든 것은 내가 전부 처리할 테니 말이네. 문제는 그 작업을 당장 오늘부터 시작을 해야 한다는 것이네. 그리고 디자이너들의 도움 없이 자네가 독단적으로 작업을 해줬으면 해서 이렇게 전화상으로 말하지 못하고 불렀네. 미안하게 생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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