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전우는 결국 총기사고로 죽음을 맞이했다. 전우는 한 신발공장의 디자인부서에 이미 취직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마동에게 맞춤형 조깅화를 선물하리라 약속까지 했었는데 전우는 머리의 반이 너덜하게 떨어져 나간채로 눈을 부릅뜨고 죽어 버렸다. 그것은 분명한 자살이었지만 부대는 그 사실을 덮었고 사고사로 발표하고 전우의 부모에게도 ‘사고’라는 말로 함구했다. 거대한 권력은 모순을 병풍화했고 시간은 모순을 기정사실로 간주하게 만들어버렸다.
마동은 그날도 밤새도록 연병장을 달렸다. 잊어야 할 것은 빨리 잊어야 했다. 세상은 의미라고는 눈뜨고 찾아볼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 배위의 집합체다. 전우의 기억은 달리고 또 달려도 잊히지 않았다. 길거리의 수많은 사람들이 신고 다니는 신발에 전우의 세포와 머리카락이, 눈동자와 손톱과 췌장이 흩어져서 묻어 있었다. 전우는 그렇게 마동을 뒤쫓아 오고 있었고 마동은 전우를 떼어내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렸다.
회사의 직원들은 마동이 매일매일 달리는 이유를 건강에서 찾으려고 했지만 마동에게는 하나의 목적이 있었다. 달리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목적을 향한 몸부림이었다. 이유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난! 모든 걸 버리기 위해서 달리는 겁니다! 난 당신과 달리는 의미가 달라요!라고 할 필요가 없었다. 말은 필요 이상으로 하지 않았고 타인의 생활에 간섭도 없었고 관심도 두지 않았다.
침묵은 말보다 힘이 크다는 것을 마동은 안다. 자신이 하는 일이나 행동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는 있다고 프랑스와즈 사강도 말을 하지 않았던가. 타인의 따가운 시선 같은 것은 애당초 신경 쓰지 않았다. 타자를 인정하되 침범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무엇을 선택하고자 할 때 그것에 대한 타인의 시선이나 선택이 몰고 오는 결론이 옳은 것인지 때로는 그렇지 않은 것인지에 대해서도 신경을 두지 않게 되었다.
먼저 유용성에 있었다. 가치라고 불리는 유용성은 마동이 보는 모든 것에 부여하기 시작했다. 논리로 이해가 되고 시각적으로 들어오는 모든 부분, 사물, 유기체, 때로는 물 같은 물질이나 용기에도 담아 둘 수 없는 연기에도 마동은 유용성을 부여했다. 보지 못하는 부분, 오컴의 면도날이 적용되지 않는 술수나 권모나 술책에 대해서는 공허하고 쓸모없는 것들이라고 여겼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부분에 단계별 유용성이 있고 마동은 거기에서 철저하고 편협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택하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이에게서(도) 피해나 방해를 받지 않는다. 자신만의 리추얼을 생활반경에 구축해 놓는 것이다.
그러나 꿈의 리모델링 회사에서 훈련을 받고 일을 하면서 제3의 세계와 인간의 무의식에 괄목하게 되었다. 그것에 입김을 불어 놓듯 유용성을 부여했다. 마동은 조금씩 알게 되었다. 사람들을 애써 회피하며 지내왔지만 마동에게 놀라움을 전해주고 일을 가져다주고 통장에 돈을 차곡차곡 쌓이게 하고 감동을 전해주는 모든 부분이 마동이 알지 못하는, 자신과는 상관없는 불특정다수라는 사실이었다. 그들이 있기에 마동이 일상을 보내는 것이다. 마음속에는 돈을 받기에 움직인다는 꺼림칙함이 조금 있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작업은 하지 않았지만 오너는 마동에게 그렇게 차단을 하며 차별을 두어 일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기도 했다. 싫으면 싫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 상대방을 위하는 길이라고 마동은 느껴왔기에 두 마음의 충돌을 늘 떠안고 있었다. 회사의 사람들은 마동이 달리는 이유를 알지 못했고 일일이 설명은 불가능했지만 매일 달리는 행위를 멈출 수는 없었다.
마동은 버려야 할 것이 많았다. 버려야 한다는 것이 있을 때 바로 버리지 못한 것이 자신은 실수라는 것도 안다. 버려야 하는 것과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이 동일한 것이라 마동은 쉽게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마른번개가 먼 하늘에서 번쩍 거렸다. 달려서 장군이가 있는 카페 앞으로 갔다. 장군이의 주인이 말한 산책할 시간이 조금 남아있었으므로 해변을 한 바퀴 돌았다.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토하고 소리를 질렀다. 쓰레기통은 넘어져서 그 냄새가 해변으로 퍼졌다. 쓰레기 같은 어떤 인간이, 넘치는 쓰레기통을 발로 찼다. 쓰레기가 해변으로 쏟아졌다. 해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욕을 했다. 사람들은 쓰레기통을 그저 빙 둘러 돌아갔고 어디선가 해변의 경찰들이 와서 쓰레기 같은 인간과 언쟁을 벌였다. 쓰레기 같은 인간은 술은 취했지만 이 정도로 남들에게 교묘한 피해를 주며 권력에게는 큰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쓰레기 같은 인간은 무사유의 인간으로 머릿속에 ‘나 이외의 사람’라는 개념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 쓰레기통은 곳곳에서 넘쳐났다. 공중화장실이 근처에 있었지만 그곳까지 걸어가는 것이 귀찮은 남자들은 넘쳐나는 쓰레기통에다 소변을 보았다. 심지어는 행인 쪽으로 페니스를 드러내 놓고 비틀거리며 오줌을 갈겼다.
마동은 장군이가 있는 카페 앞으로 걸어갔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해안에 산책을 나온 사람들과 그들의 손에 이끌려 나온 큰 개들이 마동을 보며 심하게 짖거나 꼬리를 내리거나 했다. 마동이 크게 짖어대는 개들의 눈을 공허하게 만들었고 개들은 마동의 시선을 피하며 꼬리를 바짝 잡아당겼다. 큰 개들은 그에게서 무엇을 감지했다.
개들은 분명 인간들과는 다른 불가사의한 형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신진대사가 인간들보다 빨라서 인간만큼 오래 살지 못한다. 새는 더 빠르다. 새들을 보라, 음식물을 섭취하자마자 활공하며 배설을 한다. 개들은 그럼에도 그들의 삶에 비관적이지 않다. 오직 처음 본 주인에게 순종의 형식을 취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는 오직 그들이 바라봐야 하는, 내가 꼬리를 흔들어줄 수 있고 혀를 내밀어 핥을 수 있는 주인이 있으면 그만이다. 대통령이 온다 한들 유명한 배우가 온다고 한들 그들에게는 중요치 않다. 개는 인간과 다르다. 인간처럼 사랑을 주고 빼앗고, 그 사이에서 상처를 받지 않는다. 믿어버린 가장 친한 사람에게 휘둘리는 인간과는 달리 개는 한 번 주인에게 맹목적이다.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가치척도를 가늠하지 않는다. 어딘가에 웅크리고 앉아 요놈 어디 한 번, 하면서 자객의 눈초리로 지켜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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