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날의 멸망 37

소설

by 교관

해무 속으로 팔을 뻗었다. 손에 잡히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만 같다. 무엇인가는 마동의 기억일지도 모르고 부조화스러운 에고의 모습일지도 모르고 치누크를 타고 온 무의식일지도 모른다. 앞이 온통 회색뿐인 도로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해무 속에 손을 집어넣어 저어봤지만 손으로 느낄 수 있는 건 축축한 해무의 잔해뿐이었다. 엄청난 해무 덕에 마동의 얼굴과 목덜미에도 땀이 흐르는 것처럼 이내 젖었다. 팔과 팔뚝과 얼굴에 해무가 묻지 않는 곳은 없었다. 마동은 마른세수를 하듯 손바닥으로 얼굴을 한 번 훔쳤다. 등대는 라이트를 한 단계 더 밝히고 하울링을 더 크게 울렸다.


부우웅. 부우웅.


이 소리는 근해에 정박해 있는 대형 유조선에서도 울려 퍼졌고 유조선 사이를 피해서 들어와야 하는 고깃배에도 똑같이 전해졌다. 해무는 세계를 집어삼킬 만큼 바다에서 육지로 밀려 들어왔다. 해안가에서도 바다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막는 안전요원들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송림 곳곳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들은 공원관리인들의 훈령에 의해서 끝내 마시던 술병을 들고 투덜거리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취객들은 해무를 탓했고 관리인들에게 욕을 했고 국가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세금 내고 자신들이 있겠다는데 왜 못 있게 하는 것이냐! 그들은 관리인들과 들리지도 않을 해무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가래를 한 번 뱉었다. 그들이 내려가고 뱉은 가래에 개미들이 몰려들었다.


공원관리인들은 같은 봉급에 여름밤이면 몇 배는 힘들게 일을 했다. 그들의 삶은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흘렀다. 여름과 겨울의 차이가 컸다. 고된 일거리가 많은 여름밤이 그들 입장에서 좋은 것인지 편안하게 참호 속에서 쉬며 가끔 순찰을 돌면 되는 겨울밤이 좋은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왜인지는 모르나 북적되고 시끄럽고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여름이 겨울보다 사건사고가 덜했다. 겨울은 그저 고요하고 가라앉아있고 칼바람 때문에 찾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하지만 생활고나 처지의 비관 때문에 자살을 시도하는 이들은 모두 겨울의 이곳을 찾았다. 새벽동안 살을 찌르는 추위를 견디고 있으면 어느새 바다에 누군가 몸을 던지는 일을 관리인들은 일일이 신경 쓸 수 없었다. 순찰을 돌고 와서 추위와 싸워가며 깜빡 잠이 든 사이에 누군가가 크레바스 같은 테트라포드 사이에 몸을 던져 바다에 빠지고 만다. 사고가 일어나면 경위서를 작성하고 관리인은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고요한 겨울밤이 더욱 애타는 계절이었다. 그들은 겨울이 도래하면 마음이 날카로워졌으며 눈빛도 달라졌다. 공원에서 무더위를 피해 여름밤을 즐기던 사람들이 대부분 내려갔다. 산책을 하는 사람들도 드물었다. 몇몇만이 해무가 만들어 놓은 습기를 머금고 달리고 있었다.


장군이주인과 장군이와 마동은 등대 밑까지 왔다. 등대는 오랜 세월의 모습을 죽 지켜오다가 몇 해 전에 새 단장을 했다. 더 크고 화려해졌고 세련되었다. 등대의 소리와 불빛도 새롭게 탈바꿈했다. 등대 안은 첨단 기술력으로 무장을 했고 이곳의 특성상 공원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지하에는 세미나실을 마련해서 언제나 사용할 수 있도록 일반인들에게도 열어 두었다. 세미나실에는 빔으로 빛을 쏘아 회의가 가능한 프로젝트를 구비해 두었고 간단하게 준비해 온 식사를 조리할 수 있는 작은 주방도 있었다.


새 단장한 등대는 빛을 360도 돌아가며 그린라이트를 발사할 수 있지만 송림 쪽으로는 육지이기 때문에 등대의 빛이 360도 돌아가는 모습을 본 사람은 아직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등대는 공원개발에 힘입어 감성 어린 등대에서 벗어나 로봇의 얼굴형상을 하고 있어서 마동은 시큰둥했다. 등대 근처도 공원처럼 조성이 되어 버렸고 등대의 입구에는 큰 마당이 있었지만 등대의 관계자들 것으로 보이는 자동차들이 마당에 주차되어 있었다.


차들은 대부분 3000CC 이상 고급 승용차였고 등대 주위의 바닥은 이전의 흙바닥에서 붉은 벽돌이 깔려 길바닥을 만들었고 인공 잔디가 곳곳에 조성되어 있어서 송림이 가지는 자연주의에서 벗어난 풍경이었다. 등대의 바로 밑은 바다로 이어졌으며 그 밑에서는 바다에서 그날 잡은 해산물을 관광객들에게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지역 해녀들이 있었다. 오늘 해무는 그런 모든 풍경을 잠식해 버렸다.


해무는 큰 바다와 송림을 침묵 속으로 몰아넣었고 인간들을 송림에서 몰아내고 있었다. 송림으로 오기 전 거쳐 온 이곳 해수욕장은 해운대처럼 북적이지 않았다. 메트로폴리탄의 외곽지역의 한적한 해수욕장의 해안은 타지에서 알음알음 찾아오는 사람들과 타지로 나가지 못하는 이곳 사람들이 찾는 해수욕장이라 북적인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명동의 낮처럼 인파로 터져 나가거나 청계천의 새벽처럼 한산해지는 법도 없었다. 밤낮으로 늘 비슷한 사람들이 꾸준하게 몰려 들어와 있었다. 그것이 여기 해수욕장이 가지는 특성이었다. 이 모든 풍경마저도 해무가 온통 삼켜 버렸다.


마동은 장군이의 도자기색 눈빛을 쳐다보았다. 장군이의 눈빛은 등대로 올라오기 전보다 긴장을 하고 있었다. 마동은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장군이는 분명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장군이의 주인은 마동에게 장군이의 목줄을 건네주고는 등대에 볼일이 있으니 들어갔다가 나오겠다며 등대 안으로 사라졌다.


해무는 너무 짙어서 이질적 무채색으로 짙음이 눈에 확연했다. 밤을 덮을 만큼의 짙은 무채색. 저 멀리에서 미지의 힘을 가진 존재가 습한 해무를 대동해서 인간들을 거부하고 자신의 공간에서 쫓아 버리려 했다. 마동은 등대 밑의 바위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를 바라본다고 하지만 바다가 보일 리가 없었다. 고요했다. 풍덩하고 들어가서 헤엄을 쳐도 괜찮을 만큼 고요하고 조용했다. 그렇지만 바다에 들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바다는 강과 호수와 다르다. 언제 파도가 몰아칠지 바닷속의 해류가 어떠한 모습으로 바뀔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바다는 지구를 변이 시키는 하나의 생명체였다.


목줄이 마동의 손에 쥐어져 있고 목줄의 끝은 장군이의 목에 걸려 있었다. 장군이는 사원지붕에 힘 있게 서 있는 오래된 가고일처럼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 장군이도 마동이 쳐다봤던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마동은 장군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보았다. 습기 때문에 축축했지만 장군이는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


“당신은 누구인가요?”마동은 장군이에게 머물렀던 시선을 다시 바다로 돌렸다.


-누구라고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는 업다 나는 너다-


어제 마동에게 전달되어 온 의식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와 같았다. 말투가 어딘지 인간의 말투 같지 않았고 기계음처럼 들렸지만 또렷한 의식으로 전해져 왔다. 인간의 언어였지만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어린아이 말투 같았다. 분홍 간호사가 말하는 텔레파시나 무의식을 텔레포트 방식으로 장군이는 마동에게 의사를 전달하고 있었다. 장군이는 바닥에 배를 깔았다.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는 존재다 해무와 마른번개처럼 그러다-


장군이는 좀 더 편한 자세로 앉았다. 마동은 손에 쥐고 있던 목줄을 장군이 가까이에 놓아두었다. 장군이는 한참 생각했다. 마동의 눈에 장군이는 긴장을 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마른번개와 축축하고 짙은 해무 때문에 더 그래 보였다. 그것이 아니라면 마동 때문일지도 모른다.


-유적지에서 발견한 토기의 시대보다 더 오래다 ‘마에나드’라는 그리스에는 광적인 여성 추종자다 제우스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신적인 바커스의 여성추종자들이라 불려다-


-그들은 오래전에‘디오니스 제전’이라는 축제에서 포도주 마시고 선정적인 파티 즐겨다 그들은 사람들의 눈을 검게 만들어 같이 파티를 즐겨다-


장군이는 길게 말하지는 못했다. 조금 의식을 전달하고 전파가 끊어진 무전기처럼 틈이 있었다.


-나는‘shapeshiter’라고 불리는 형성 변이자-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동물의 모습으로 변할 수 이다 우리들이 개의 형상으로 변이 한 이유는 개로 변하는 것이 다른 동물에 비해서 변이가 편하기도 하다-


-개는 사람과 어울리기 좋다 우리는 유전적이다 세대를 거쳐 외형이 사라지거나 소멸해도 우리들은 다른 외형 속으로 들어가서 인간들과 함께 죽 생활하다-


-스라소니나 표범처럼 고양이 과로 변하는 것도 어렵지 않으나 그런 동물로는 인간들로 친숙하게 지낼 수 업다-


장군이는 바다를 가만히 바라보며 잠시 틈을 두었다. 힘든 모양이었다. 마치 늘 하던 방법을 잊어버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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