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을 다시 생각한다

정말 우리가 지금 발전하고 있는거야?

브런치표지.PNG

‘발전을 다시 생각한다’를 시작하면서


이제 우리는 새로운 세계에 접어들었으며, 모두들 과거는 잊고 미래를 준비하라고 한다. 그러나 어떻게 미래가 다가올지 아무도 모른다. 애초부터 하루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적어도 과거에는 평균적인 삶에 있어서 자신의 앞날은 속한 신분에 따라서 변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지속되었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기업들은 어느 나라든 종신고용을 기본적인 사용자와 노동자간의 기본적인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다운사이징, 리엔지니어링, 리스트럭처링, 기업 합리화 등의 말은 노동자에게 있어서는 ‘해고’라는 말과 다름이 없다. ‘물질적 안정’이란 매우 드문 상황이 되었다. 기업과 인간은 점차 두 분류로 나누어지고 있다. 새로운 경제시스템에 적응한 쪽과 그렇지 못한 쪽. 둘 사이의 간격은 점점 넓어져 갈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적응하였다 하여도 결코 안심할 수 있지는 못하다. 왜냐하면 디지털 경제에서 안정이란 없기 때문이다. 기업은 종래의 생산위주 시스템에서 시장위주의 시스템, 지극히 짧아진 제품 수명주기와 신제품 개발 주기, 저비용 고품질의 강조, 세계적인 경쟁과 다양해진 시장 환경등에 잠시라도 뒤처진다면 가차 없이 퇴출된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수익성은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기업의 수익에서 임금을 받는 노동자 또한 육체노동자나 지식노동자 구별 없이 빨라진 속도경쟁에 빨려들어 가게 된다. 사람의 속도 경쟁 상대는 지난 300만년동안 겨우 서고 생각하게 된 인간이 아니라, 지난 수 십 년 동안 수 조배 빨라지고 커지는 인공지능, 기계공학의 산물이다. 한마디로 인간은 지극히 느린 산술급수적 발전을 하고 있는 데 반하여, 이미 특이점에 가까워진 기하급수적 과학발전과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우리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많은 일들이 가능하게 되었고, 고도의 소비생활을 영위하게 되었지만, 아쉽게도 우리가 삶의 가치를 두고 있는 많은 것을 없애기도 하였다. 그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도덕’의 개념조차 바뀌고 있지만, 새로운 기준은 아직 나타나고 있지 않다. 우리는 혼돈의 기원에 서있지만, 앞으로의 세상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다만, 과거에는 ‘배고픔’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였다면, 이제는 ‘두려움’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있다. 점점 더 자욱해지는 안개 속으로 미래를 더듬어 가는 그 두려움. 상당수의 사람들이 현재보다 생활이 악화되어 가고 있고, 그 나머지도 자기에게도 그런 어려움이 닥칠 수 있다는 분명한 두려움이 현대인을 움직이게 하고 있다. 과거의 실패는 성공의 열쇠였지만, 앞으로의 실패는 돌이키기 어려운 깊고 어두운 함정이다. 이제 세상은 남의 실패를 옹호하면서 감싸주기에는 내 자신도 감당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리고 여러 번의 실패와 재기를 시도하기에는 드는 돈이 너무 많이 든다. 흔히들 앞으로의 시대는 80/20의 시대라고 한다. 어쩌면 99/1의 시대가 될 수도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잠시 멈추어 서서 고민을 해야 한다. ‘현재 우리가 가는 길이 행복해져 가고 있는 길인지, 아니면 불행해져 가고 있는 길인지.’ 세계사회, 위험사회, 시민사회, 지식사회, 포스트모던사회 등등....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일컫는 수많은 정의들. ‘인간의 행복을 어디에 두는 가’하는 관점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근저에 있는 가정은 스스로의 존재를 소중히 할 수 있을 정도의 물질적 기반은 갖추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과학이 이루어 놓은 찬란한 발전들. 덕분에 우리는 분명 우리의 조상들이 누리지 못했던 많은 특권을 모두가 향유하면서 살고 있다. 생산자로서 우리는 더 적은 비용으로 훨씬 더 많은 산출물을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소비자로서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고, 좋은 물건을 소비할 수있게 되었다. 밝음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발전은 기존의 사회적 질서와 자연 환경 파괴 및 부존자원의 급속한 소진을 불렀고, 현대인들은 의식주등 모든 면에서 자연의 역습에 괴로워하면서, 발전의 부정적인 면에 주시하기 시작하였다. 더글러스 러미스처럼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라고 질문하면서, 마이너스 또는 제로성장을 주장할 수도 있지만,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 의미가 없는 허구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적당히 조절되어 모든 이들이 최선의 상태에서 살아 가는 ‘이상적 사회’를 꿈꾸고 있다. ‘자원의 최적 분배’야말로 경제학자들의 오랜 꿈이었지만, 그 실현은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오히려 물질적 만족이야말로 행복의 최소 조건이지만, 이제 그 본말이 전도되어 물질적인 모든 것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그 것은 좀 더 많이 갖기 위한 노력일 수도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현재 향유하고 있는 물질적. 정서적 조건들을 놓치지 않기 위한 두려움, 또는 최악의 상태로 떨어지지 않기 위한 두려움, 그 최악의 상태에서 100년이 아닌 1000년을 살아야 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몸서리를 쳐야만 하는 사회가 되었다.


미국의 경우 민간경제 및 제조업 부문의 실질임금이 1965년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한국도 97년 IMF이전 수준의 실질 소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노동 절감형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일자리 감소가 이제는 전 세계적인 추세로 자리를 잡고 있다. ‘배고픔’ 때문에 움직여야만 하던 인간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움직여야 한다면 우리는 그 것을 발전이라고 할 수 있을 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