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지 않는 성과주의 사회와 중독의 구조

by 술 마시던 나무


책임지지 않는 성과주의 사회와 중독의 구조


대한민국의 성과주의적 사회 구조는

이미 국민 전반의 정신 건강을 곪게 만들었다.


속도는 미덕이 되었고,

비교는 일상이 되었으며,

성과는 존재의 증명이 되었다.

쉬는 것은 뒤처짐으로,

멈추는 것은 낙오로 해석되는 사회에서

인간은 버티는 법보다 버텨 보이는 법을 먼저 배운다.


이 구조 안에서 인간은 자연스럽게

즉각적인 해방을 원하도록 조건화된다.



문제는 이 사회가

그 즉각적인 해방을 억제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공급한다.


술, 니코틴, 자극적인 콘텐츠,

도파민 중심의 플랫폼,

즉시 기분을 바꿔주는 모든 것들.


이것들은

불법도 아니고,

비도덕적 선택으로 취급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정도는 다 한다”는 말로 정당화된다.


대한민국은

즉각적인 해방 도구를

언제든,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

삶과 중독 물질이

강하게 결합된 구조다.



여기서 중독의 문제가 시작된다.


중독은 의지의 실패가 아니다.

노출의 문제다.


지속적인 압박 속에서,

회복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고,

대신 즉각적인 해방 수단만 넘쳐나는 환경에서는

누구라도 중독에 취약해진다.


처음엔 선택이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한 잔,

하루를 끝내기 위한 자극.


하지만 반복되면

선택은 반응으로 바뀌고,

반응은 구조가 된다.



이 구조의 가장 잔인한 점은

빠져나올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과주의 사회는

속도를 늦추는 순간

불안과 공포를 준다.

중독 물질은

그 불안을 즉시 제거해준다.


그래서 중독은

문제를 만들면서도

동시에 문제를 가려준다.


이 상태에서 회복을 시도하면

사람은 두 가지를 동시에 잃게 된다.

• 즉각적인 해방 수단

• 성과를 유지하던 리듬


이중 손실 앞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다시 돌아간다.

중독은 이렇게 유지된다.



그렇다면 이 구조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대통령인가?

정책인가?

과거의 누군가인가?


아니다.

이 구조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설계한 시스템이 아니다.


이 나라는 성장했고,

효율은 최고의 가치가 되었고,

성과는 생존의 언어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중독에 취약한 환경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그래서 이 사회는

책임자가 없는 중독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모두가 이 구조 안에 있고,

모두가 이 구조를 사용하며,

모두가 동시에

사용자이자 피해자다.


그렇기에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누구도 고치지 않는다.


중독은 개인의 문제로 남고,

회복은 개인의 몫이 되며,

무너짐은 개인의 실패로 해석된다.


시스템은 멀쩡히 작동한다.

성과는 나오고,

속도는 유지된다.


대신

사람만 소모된다.



그래서 이 사회에서

알코올이나 중독 물질에 빠진 개인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건

정확하지 않다.


그 선택은

이 구조 안에서

가장 빠르게 숨을 쉴 수 있는 방법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중독을 합리적인 선택처럼 만들고,

회복을 비합리적인 선택으로 만드는 환경이다.


이 환경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러나 분명히

누군가를 계속 망가뜨리고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 성과주의 사회의 또 다른 얼굴이다.


가장 많은 성과를 요구하면서,

가장 적은 회복을 허용하고,

가장 많은 중독 도구를 제공하면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


이 체계는 조용히 작동한다.

그리고 조용히 사람을 소진시킨다.


대부분은

그 사실을 깨닫기도 전에

이미 깊이 들어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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