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는 지독한 알코올 중독자였다

by 술 마시던 나무

우리 아버지는 지독한 알코올 중독자였다


어릴 때 나는 그 사실이 창피하지 않았다.

부끄럽다기보다, 그저 당연한 풍경처럼 느껴졌다.


집 안에는 늘 술 냄새가 배어 있었고,

밤이 길어지는 날들이 있었으며,

다음 날 아침이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하루가 시작되곤 했다.


나는 그것이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우리 집의 방식이라고 여겼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풍경이 다른 집에서는 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고,

당연하다고 믿었던 장면들을

조금씩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다짐했다.

나는 저렇게 살지 않겠다고.


하지만 삶은 늘

단순한 다짐만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나는 아버지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고 믿었지만,

어느 순간 비슷한 방식으로 술을 찾고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뇌와 유전, 그리고 환경이 함께 만든 구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알코올 중독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다.

과학적으로 보면

중독 취약성은 유전될 수 있는 특성이다.


연구에 따르면 알코올 사용장애의 약 40~60%는

유전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이는 행동이 그대로 유전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알코올에 대한 신경학적 반응 방식이

유전될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술을 마시면

적당한 이완감을 느끼지만,

어떤 사람은

강한 안도감과 정서적 해방을 경험한다.


이 차이는 도파민 보상 회로의 반응성 차이와 관련 있다.


보상 반응이 강할수록

뇌는 그 경험을 더 강하게 학습하고

다시 찾게 된다.


그래서 같은 술을 마셔도

누군가는 한 잔으로 끝나고,

누군가는 멈추기 어려워진다.



또 하나 중요한 요인은

스트레스 반응 방식이다.


일부 사람들은

스트레스에 대한 생리적 반응이 더 민감하다.

긴장 상태에 쉽게 들어가고

불안을 오래 유지한다.


이때 알코올은

가바 작용을 강화하여

신경 흥분을 억제하고 긴장을 낮춘다.


뇌는 이 경험을 기억한다.


“이 방법은 긴장을 낮춰준다.”


이 연결이 반복되면

스트레스 음주라는 회로가 강화된다.


이 과정은 의식보다 빠르게 자동화된다.



여기에 환경이 더해진다.


어린 시절

스트레스 상황에서 술로 긴장을 풀던 모습을 보며 자라면 뇌는 문제 해결 방식으로 그것을 학습한다.


이것을 행동 모델링이라고 한다.


즉, 유전은 취약성을 만들고

환경은 그 취약성을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나는 오랫동안

내가 왜 술을 찾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즐기기 위해서도 아니었고,

취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머릿속 소음을 멈추고 싶었고,

몸의 긴장을 내려놓고 싶었으며,

잠시 조용해지고 싶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건 선택이라기보다

뇌가 학습한 생존 전략에 가까웠다.



중독은 쾌락을 추구하는 행동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불편함을 줄이기 위한 행동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중독은

즐거움의 문제가 아니라

안도의 문제에 가깝다.


이 안도감이 강할수록

반복 가능성은 높아진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유전은 방향을 제시할 뿐,

결정을 내리지는 않는다.


취약성은 전달될 수 있지만

행동은 선택될 수 있다.


뇌는 학습되지만

다시 학습될 수도 있다.



나는 이제

아버지를 다르게 이해한다.


그는 약했던 사람이 아니라

그가 가진 방식으로

버티고 있었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취약성을 물려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구조를 이해하고 있다.


이해하는 순간

반복은 운명이 아니라

선택이 된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은

아버지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다.


나는 한때

지독한 알코올 중독자가 될 수 있는 구조 속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구조를 이해한 채

다른 방향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다.



유전은 시작점일 뿐이다.

방향은 이해가 만들고,

삶은 선택이 만든다.



도파민 보상 회로 — 즐거움과 보상을 인식하고 반복 행동을 강화하는 뇌 시스템.


스트레스 반응 시스템 — 위협 상황에서 긴장 상태를 만들고 신체를 각성시키는 생리 반응.


가바(GABA) — 신경 흥분을 억제해 불안과 긴장을 낮추는 신경전달물질.


행동 모델링 — 주변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며 문제 해결 방식이나 습관을 학습하는 과정.


알코올 사용장애 — 음주 조절이 어려워 일상 기능에 영향을 주는 상태를 의미하는 의학적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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