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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르멘 Sep 24. 2024

하루 3부제 근무

빽없는 워킹맘 에세이

하루 3부제 근무


복직 4개월 차에 나는 새로운 스케줄을 짜야 했다. 

3개월을 일해주신 도우미 선생님이 더 이상 도우미 일을 하지 않는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지구가 흔들린다는 표현이 맞을까, 겨우 일상을 유지하던 토대가 흔들렸다. 

하지만 충격과 공포의 순간도 잠시, 대안을 찾는 게 급선무다. 

결국 나는‘육아기 단축근무’라는 새로운 판을 짰고, 근무시간을 단축하여 아이의 등하원도 모두 내가 맡게 됐다. 그렇게 첫 육아기 단축근무 3개월이 시작됐다. 


부랴부랴 1


나는 보통 오전 6시전후로 일어난다.

이전글에서도 말했듯, 새벽형 아기와 함께 하므로.

아이가 6시쯤 일어나면, 기저귀를 갈고 유산균을 먹이고 아침을 부랴부랴 준비한다.

그리고 아기가 감기일 때는 아침 감기약을 먹이고, 점심 감기약을 미리 준비해서 키즈노트 투약의뢰서를 쓴다.(어린이집 어플을 통해 선생님께 약을 먹여달라는 전자의뢰서다)


아이가 일반식을 먹기 시작한 후로 단골메뉴가 있다. 

데친 브로콜리와 토마토, 치즈, 김, 백김치, 달걀 등이다. 

아무튼 이 메뉴들로 돌려가며 먹인다. 부랴부랴. 


밥을 먹인 후 아이는 아침 놀이를 한다. 그사이 나는 설거지를 하고,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한다. 내 옷을 갈아입고 아이의 어린이집 가방과 준비물, 외출복을 준비한다. 아이를 불러 양치를 하고, 옷을 갈아입으면 등원준비 완료.


“오늘은 킥보드 탈거야? 빠방이 탈거야? 걸어갈 거야?”


아이가 2~3살 때까진 유모차로 등하원을 했는데 점차 킥보드를 타고 가는 날이 늘어났다. 

그럼 나는 내 회사가방, 아이의 어린이집 가방, 킥보드를 들고 나간다. 아이가 씽씽 킥보드를 타고 어린이집에 들어가면, 나는 바로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시동을 켠다. 30분 정도 운전을 해 회사 주차장에 주차를 하면 아침 1부 미션 완료. 


범사에 감사, 2


출근한 순간부터 사회인으로서의 내 하루가 시작된다.

내가 출근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있는데, 그건 바로 모닝커피다. 

다시 시작되는 2부의 연착륙을 위해 카페인의 도움이 절실하다. 겨울엔 따뜻한, 여름엔 시원한 카페라떼의 맛은 정말 1등 바리스타가 갓 내려준 커피 못지않을 거다. 텀블러에 라테 한잔을 담아 모니터 앞에서 한 모금 마시면, 온몸에 카페인이 도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하루를 무사히 시작했다는 안도감이 퍼진다. 

단축한 근무시간 내 남에게 민폐 주지 않고, 일을 마치기 위해 씨름하다보면 어느새  점심시간이 된다. 이 시간을 나는 나의‘숨통시간’이라고 부른다. 내가 나로서 숨 쉬는 숨통이 트이는 시간. 나는 이 시간을 최대한 가치 있게 숨 쉬게 하기 위해 주2회 운동을 한다. 

아기를 안고 업느라 굽은 체형과 떨어진 체력을 개선하기 위해 주2회 점심시간 필라테스 수업을 등록했다. 운 좋게도 회사 근처에 필라테스 학원이 있었고, 눈이오나 비가 오나 가급적 가려고 한다. 50분 동안 굽고 비뚤어진 몸을 조금이나마 움직이고 나면 그게 또 참 뿌듯하다.(복직 초반엔 어린이집에서 걸려온 전화로 필라테스 학원에서 그대로 집으로 간 적도 몇 번 있다.  그때 트라우마로 나는 수업시간 동안 휴대폰을 진동모드로 바꿔 매번 갖고 들어간다)


운동을 가지 않는 점심엔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누군가 차려준 밥과 반찬. 그리고 자유롭고 평화롭게 먹을 수 있는 식사여건.

더욱이 우리 회사 구내식당은 오래된 나무들이 많아 창밖으로 보이는 전망이 좋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아 호텔 조식 부럽지 않네.'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같이 밥을 먹는 동료들 입장에선 이해 못할 오버일 것이다. 


내가 어쩌다 이정도로 범사에 감사하는 인간이 되었을까.

아무 일도 없이 무사히 회사에 정시 출퇴근 하는 시간을 지키고, 신체발부의 자유에 감사하며

2부가 종료된다.

 

오늘도 무사히 3


퇴근 후부터 3부 시작.


4시 30분쯤 퇴근을 해서 집에 도착하면 5시 10분. 

아파트 단지 내 아이 어린이집이 위치한 동에 주차를 한다. 그리고 킥보드와 약간의 간식을 꺼내 어린이집에 도착하면 5시 15분쯤. 


아이가 달려와 안기면 비로소 나도 긴장이 풀린다. 

그렇게 하원과 동시에 놀이터 타임 1시간이 이어진다.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놀고, 킥보드도 타고, 가끔 간식을 사러 가는 등 퇴근한 나에게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나면 집에 6시~6시30분쯤 도착. 그때부터 얼른 아이를 욕조에 담가 씻기고 저녁준비를 시작한다. 그리고 또 아이와 놀고, 책을 읽고, 잠잘 준비를 한다. 


사실 3부에는 내 체력이 이미 바닥이기 때문에 많은 걸 포기한다.

새벽배송으로 도착한 반찬을 데우고, 오 늘은 아기 머리는 감지 않음 안 될까 고민한다. 

아이가 밥을 한자리에서 안 먹으면 그냥 책을 식탁에서 읽어주기도 하고, 왔다 갔다 하면서 먹기도 한다.  


저녁 9시쯤 아이가 잠들고 하루가 마감되면 이제 잔업무가 남는다.

설거지와 빨래.  그리고 선생님이 올려주신 아기의 알림장의 사진보기. 이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오늘하루도 무사히, 아 감사합니다. 하루 3부제 근무의 공식적 일정 종료.

하루3부제가 내게 준 선물은.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사소함에 행복을 느끼는 감수성의 무한상승. 비록 그 시작은 좌절이었어도, 그 끝은 감사하리라. 


아무튼 그렇게 내 첫 단축근무 3개월이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각보다 괜찮게 종료, 맘시터 등을 통해 두 번째 도우미 선생님을 구했다. 두 번째 도우미선생님은 어린이집 10년 경력의 베테랑으로 아이와 잘 놀아주고 훈육방침도 확실해서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5개월 동안 다시 도우미 선생님과의 동행이 시작됐다. 


TIPS_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내가‘육아기 단축근무’를 쓰면서 독자들에게 줄 수 있는 팁은 간단하다. 

회사의 출퇴근 거리를 포함하여 너무 촉박하지 않게 출퇴근 시간을 설정 할 것! 

하루 2시간 단축이냐, 3시간 단축이냐로 고민할 때 이 부분이 나도 가장 고민이었는데 2시간을 단축하면 매일 도로위의 카레이서가 돼야 했고 실제로 조급한 마음 땜에 사고의 확률도 높아졌다. 육아하는 직장맘들은 기본적으로 여유가 없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을 촉박하게 설정해두면 일상의 스케줄 전체가 촉박해진다. 그러니 아깝거나 눈치가 보이더라도 조금 여유 있게 설정하자. 그게 내 마음에 평화, 내 가정에 평화를 지키는 일이다. 또한, 육아기 단축근무에 따른 정부보전금을 받으려면 회사 담당자가 고용보험에 나의 육아기 단축근무신고를 먼저 해야 한다. 그러니 이점을 담당자에게도 공유해두자. 그래야 내가 단축근무를 시작한 다음 달 고용보험사이트에서 단축근무급여를 신청할 수 있다. 육아기 단축근무의 최소 사용단위는 3개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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