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없는 워킹맘 에세이
육아는 왕게임
도우미선생님의 코로나 감염으로 매일 2시간의 휴가를 쓰게 된 일주일.
첫날은 비빌 언덕 없는 내상황이 원망스러웠고, 둘째 날은 그래도 비오는 월요일 보단 낫구나 싶었고, 셋째 날엔 그 상황에 빨리 적응한 나와 아이를 보며 죽으란 법은 없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마음에 보란 듯이 비보가 날라들었다.
8월 31일, 수요일.
8월 도우미선생님 급여를 정산하기 위해 연락을 드렸다. 그런데 돌아온 선생님의 답변.
"너무 몸이 계속 아파서, 못할 거 같아요. 너무 미안해서 어쩌죠?"
순간이다.
모든 게 결정되는 건, 정말 한마디의 순간.
선생님께 재고의 여지가 없는지 확인 후, 나는 정말 빛의 속도로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절망했고, 원망했고, 서글펐다.
차오르는 눈물을 누르고 대안을 급히 구해야했다. 왜냐하면, 내일은 9월 1일. 나의 근무 형태를 바꾸려면 오늘 퇴근하기 전까지 모든 걸 결정하고 회사에 알려야했다.(우리 회사는 월 단위로 근무형태를 변경할 수 있다)
사실 나에겐 대안이 하나뿐이었다. 당장 할 수 있는 건 '육아기 단축근무'.
새로운 도우미 선생님을 구하는 동안 단축근무를 해야만 아이의 등하원이 가능했다. 첫 번째 도우미선생님도 석 달 만에 그만두셔서 나는 이미 석 달의 단축근무를 썼다. 다섯 달 만에 또 단축근무를 신청해야 하는 상황이 난감했지만, 절차는 빠삭했다.
다만, 몇 시간 몇 개월을 쓸 것인가?
9월부터 3개월을 썼다가, 좋은 도우미선생님을 못 구하면 어떡하지?
단축근무는 법령상 최소 신청단위가 3개월이다. 때문에 그사이 도우미선생님을 못 구하면, 또다시 3개월을 써야한다. 그래서 나는 일단 12월까지 4개월을 쓰기로 했다.
그렇다면, 시간은?
2시간을 단축할까, 3시간을 단축할까 퇴근 30분 전까지도 고민했다. 본래 단축근무는 시작일 기준 최소 2주전까진 회사에 신청하는 게 원칙인데 나는 지금 당장 반나절을 앞두고 신청해야 하니 압박감이 상당했다. 머리가 지끈지끈. 이럴까 저럴까 남편과도 상의해봤지만, 결국 선택은 나의 몫. 이번 주 도우미선생님의 공백으로 내가 아이를 8시에 등원시켜보니, 다른 친구 한명만 결석을 해도 우리 아이 혼자만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아이를 9시에 등원시키고 내가 10시에 출근하기 위해 3시간 단축근무로 최종 신청서를 제출했다.
아이를 찾으러 또 부랴부랴 가며, 아침 통합반(8~9시)과 오후 통합반(4~7시)에 아이들이 몇 명이나 있나 어린이집에 문의를 했다. 8시 등원은 1~3명, 8시 반 이후엔 5~10명. 오후에는 평균 10명(후에 내가 확인해보니 이건 모든 연령을 합한 숫자이고, 우리아이 나이에선 2명 정도가 남는다)
새벽녘 잠도 자는둥마는둥. 새벽 6시쯤 눈을 뜨며 불현듯 떠올랐다.
‘아! 우리 회사 30분 단위 출퇴근제도가 지난달엔가 생겼는데?’ 미처 이 생각을 못했다.
그 말인즉슨, 아이를 8시 30분에 등원시키고 9시30분까지 출근해도 된다는 말.
퇴근을 4시 30분에 하고 아이를 5시쯤 하원 시키면 되니 하루 3시간이 아닌 2시간만 단축해도 된다! (단축시간만큼 급여가 삭감되고, 아무래도 사회적 눈치는 늘어나니 여건이 된다면 3시간보단 2시간이 나았다)
여러모로 가장 최선의 방법!
3시간이 아닌 2시간만 단축해도 된다니!!
유레카! (사람이 상황에 몰리면, 이런 게 유레카가 된다)
다만, 어제 3시간 단축근무를 신청했으므로 사장님 결재가 나버렸다면 되돌릴 수 없는 일.
오늘은 이미 9월 1일. 나는 혹시나 모를 운에 기대하며, 아이를 8시 등원시키고 9시전에 출근을 했다. 오자마자 인사팀 문서함을 확인해본 결과. 없다. 아직 결재문서가 없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다행히 인사팀장님은 이해해주셨고 인사팀장님께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신청서를 다시 제출했다. 그렇게 나의 4개월간의 단축근무생활은 또 시작이 되었다.
나는 매순간 나의 최선을 선택을 했고, 그 선택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해왔다.
하지만 육아가 힘든 이유는 나의 최선의 노력이 최선의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선택한 길을 유지하려고 돈도 썼고, 마음도 썼고, 시간도 썼는데 다시 제자리인 느낌.
12월 복직하여 1년도 안 돼 두 번의 도우미선생님을 구했고, 두 번의 단축근무를 신청했다.
우리 회사에 조부모 도움 없이 워킹맘인 사람은 나밖에 없다. 단축근무의 도입도 내가 첫 번째, 절차와 내용을 빠삭하게 아는 것도 나뿐. 특히나 조부모 도움 없는 워킹맘이 힘든 이유는 이렇게 회사에서 '처음'의 길도 개척해야 하기 때문이다.
육아는 왕게임 같다. 이번 판에 왕을 다 무찌른 줄 알았는데, 다음판 왕이 또 나오는.
내 잘못은 아닌데,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에 처음엔 화가 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나만 그런건 아니라는 것, 이 땅위에 나처럼 고군분투 중인 엄마아빠들이 많음을 지금은 안다.
그리고 이 세계에 영원한 건 다는 것. 최종판은 없다는 것.
그때그때 최악을 피해나가는게 최선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게 내가 복직 1년간 제대로 배운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