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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르멘 Sep 24. 2024

워킹맘 죄책감 프레임 깨기

빽없는 워킹맘 에세이

워킹맘 죄책감 프레임 깨기 

 

<선생님 안녕하세요. 조이 엄마입니다.

내일 얼굴 뵙고 인사드려야 하는데..

조이가 감기가 심하게 걸려서 아무래도 3.2.~3.3일 가정 보육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첫 신학기 적응기간일 텐데 너무 아쉬워요... 곧 더 건강한 모습으로 선생님과 새 친구들 만나면 좋겠어요!">


2023.3월 1일 키즈노트에 내가 적은 알림장이다.


<"조이가 좀 괜찮아졌을까요?

올해 초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아 걱정이네요. 어머님도 건강 유의하셔요.

조이가 건강이 좋아져서 내일 건강하게 잘 등원하면 좋겠네요.

걱정 많으시겠지만 좋은 저녁시간 보내시고, 내일 뵙겠습니다.">


2023.3월 27일 키즈노트에 선생님이 적어주신 알림장의 내용이다.

3월의 첫 출근일 나는 휴가를 쓰고 출근을 하지 못했고, 그 후에도 한 달에 한 번씩은 가정보육에 당첨됐다.

내가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한 게 2022년 12월 2일이니, 이때는 내가 복직하고 약 3개월 차 됐을 때의 상황. 복직 후 근심과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어린이집에 등하원을 할 때 어린이집 원장선생님이 나를 보고 말했다.


"어머니, 복직하셨죠? 아이들이 기가 막히게 엄마 복직할 때를 알아서 그때부터 아파요.

그래도 너무 걱정 마셔요~ 적응하느라 그런 거니까 크면서 조금씩 나아질 거예요! "


정말 그렇다.

엄마가 복직하자마자 아이는 아프다.

엄마는 회사에 다시 적응하느라고 바쁘고, 아이도 어린이집에 적응하느라고 바쁘다.

엄마는 바빠도 어른이기에 면역력과 맷집(?)으로 이겨내지만, 아이는 면역력도 없고 맷집도 없어 아프다. 그때부터 일하는 엄마의 뇌 속에선 아이와 일이라는 두 개의 폴더가 끊임없이 열림과 닫힘을 반복한다.


내가 다음(Daum)의 브런치(brunch) 플랫폼에 써둔 작가 소개를 보면 이렇다.


<제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게 소원인 워킹맘, 고된 육아 속에 필라테스하는 게 낙인 운동녀.

그리고 죽을 때까지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글 쓰는 작가지망생>


당시 나는 제시간에 출퇴근하는 게 소원인 워킹맘이라서 작가소개에 이렇게 적은 것 같다.

물론 그건 여전하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복직 2년 차) 중도 퇴근하거나 갑작스러운 휴가를 쓰는 일은 굉장히 낮은 빈도의 일이 됐다.


하지만 복직하고 3개월에서 6개월 길게는 1년은 비상근무태세를 갖춰야 한다.

누군가 나에게 원래 그런 거라고, 힘들지만 지나갈 거라고 말해줬다면 그때 그렇게 안달복달하진 않았을지 모른다.


이때는 나 같은 워킹맘들의 이야기들이 참 위로가 됐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는 위안.


우리 아이 어린이집에 다니는 한 워킹맘은 회사가 차로 1시간 이상 거리라 정부지원 도우미선생님이 등하원을 맡아줬다.

그녀에겐 연년생 남매가 있었고 큰애는 유독 자주 아팠다. 그리고 두 아이 중 누구 하나라도 병에 걸리면, 다른 아이도 연달아 아프기 시작하니 그녀에겐 남아나는 연차가 없었다.

한해 가을엔, 아마도 추석즈음이었던 것 같다. 당시 수족구가 유행하여 그녀는 거의 2주 휴가를 쓰게 됐는데, 그녀가 하는 말인즉슨


"9월에 추석에, 휴가에 다 빼고 나니까 겨우 일주일쯤 출근했더라고요. 하하하........"


그녀의 웃픈 말에 나는 공감하고, 위로받고, 또한 그 말이 남일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아이들은 밝고, 건강했다. 그리고 엄마도 본인의 웃픈 상황을 툭 털어놓을 수 있는 건강한 인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엄마들은 내가 일을 해서 아이가 아픈가, 내가 아이를 기관에 너무 오래 놔둬서 빨리 안 낫나 등 별의별 생각을 다 한다.

한번 지구를 떠난 엄마의 근심걱정 로켓은 우주 블랙홀에 빠져 돌아올 생각을 못한다.

그만큼 엄마들은 걱정이 많다. 일하는 엄마들은 걱정이 더 많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출석도장 찍던 소아과 의사 선생님에게도 애꿎은 하소연을 한 적이 있다.


"애가 왜 이렇게 자주 아픈지 모르겠어요.

영양제 같은 거라도 먹으면 좋을까요?"


선생님은 무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자주 아픈 거 아니에요. 원래 이 정도 아파요.

각자 약한 부위가 있어요.

코감기 자주 걸리는 애, 목감기 자주 걸리는 애.

영양제 먹이는 건 엄마 선택이지만, 그냥 잘 먹고 잘 자는 게 기본이에요. "


그때는 무심한 의사 선생님 말이 얄미웠지만, 나도 그게 정답임을 알고는 있었다.

다만 나는 당시 상황이 너무 우울했고,  어떤 동아줄이라도 붙잡고 싶었던 것 같다.


실제로  2022년 한규만 고려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과 가정에서의 갈등으로 인한 우울증> 위험이 20~30대 워킹맘 근로자의 경우 3.78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그녀들이 일과 가정에서의 갈등을 겪는 경험치가 높다는 말이다. 이는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고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다. 마음가짐의 노력.


신의진 교수는 <대한민국에서 워킹맘으로 산다는 것>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회사에 나가든 안나가든, 애는 아픕니다.

 애가 아픈 건 바이러스 때문이지, 일하는 엄마 때문이 아닙니다. 엄마는 바이러스가 아니니까.

 엄마가 열심히 사는 모습, 그 자체가 아이에게는 살아있는 교육입니다"


엄마는 바이러스가 아니다.

아이가 아픈 건 바이러스 탓이다.

그러므로 아이가 아픈 건 엄마 탓이 아니다.

나는 워킹맘이자,  아이에게 살아있는 교육자로 매일 출퇴근한다... 고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


나는 이 책의 문장을 매일 되새겼다.

아이가 아플 때 눈물 젖은 출퇴근 바람 속에서 내게 동아줄이 됐던 문장이다.  

그리고 동시에 쓸 수 있는 모든 제도를 면밀히 살펴보고 사용해야 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미성년 자녀를 둔 여성관리자를 대상으로 한 <가사 및 돌봄 노동시간과 일·가족 양립 간 상관관계> 연구결과를 살펴보니, 근로시간 유연성이 높아 돌봄 노동시간이 증가하면 일과 가족의 갈등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가족 갈등은 직장에서의 역할과 가족에게 기대받는 역할에 대한 요구가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때 발생하는 갈등이다. 그런데 근로시간이 유연할수록 상대적으로 돌봄 노동시간이 증가하면서 갈등 감소효과가 커진 것이다.


워킹맘의 안녕은 결국 개인의 마음가짐과 사회적 제도의 사용감 양쪽 모두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다.


1995년 심리학자 주디스 리치 해리스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는  ‘양육가설’이라는 이론을 만들었다. 과거에는 어린 나이의 자녀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부모가 직접 아이를 양육하지 못하면 부모가 양육한 아이들에 비해 문제아가 될 확률이 높다는 게 보편적 믿음이었다.  하지만 해리스는 자식의 잘못은 부모 탓이 아님을 주장했다. 해리스의 연구결과는 “우리가 아이들을 원하는 대로 길러낼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며  “아이들을 완벽한 존재로 기르는 것도, 아이를 망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어떤 연구결과도 절대적이진 않다. 어떤 연구결과를 믿고 적용할지는 개인의 선택의 문제다.

하지만  아이를 바라보는 건 부모의 눈이고, 아이와 자신을 믿는 건 부모의 마음이다.

아이를 불안과 우울의 색안경으로 볼지, 긍정과 희망의 돋보기로 볼지를 선택해야 한다.


워킹맘의 죄책감 프레임은 어쩌면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걸어둔 색안경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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