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내 삼일장 치뤄줄래?
결혼은 어떻게 하게 되는가?
오래 만난 좋은 사람과 스며들듯 결혼하기도 하고,
우연히 만난 상대와 불같은 사랑을 하다 후다닥 결혼하는 경우도 왕왕 보인다.
어쨌든 자연스러운 방향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그 사람과 함께하는 미래가 기대되어 결혼하게 되는 경우라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나는 반대 방향으로 결혼하게 되었다.
그렇다. 바로 결혼부터 결심하고 그 이후에 상대를 찾아 나선 것이다.
전공의 시절, 나는 꽤 해맑은 20대였다.
무서운 교수님께 호되게 혼난 이후에도
잠깐 우울해했다가 뒤돌면 금방 헤헤거려,
당시 나보다 더 속깊었던 동기들의 신기함을 사곤 했다.
마음도 밝고 뇌도 맑았던 당시
결혼은 고민의 대상도 아니었다.
그런 중차대하며 먼 일보다는
당장 오늘, 자정 전에 집에 가기 위해
어떤 완벽한 동선을 짜볼까만을 고민하던 시기였다.
그랬던 내가 삶의 끝,
그러니까 어떤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한 건
말기 부인암 환자분들의 주치의를 할 때 부터였다.
산부인과 하면 왠지 모르게
아기가 태어나는 산과를 떠올리게 되지만,
대학병원의 전공의가
산과에서보다 2배 이상의 시간을 보내게 되는 건
부인과 암병동일 것이다. (적어도 내가 있었던 곳에서는)
특히나 말기 암환자가 많은 대학 병원이었기에,
많게는 한 달에 두세 번씩 사망 선고를 하곤 했었다.
처음 사망 선고를 한 전공의 1년 차 겨울,
허망함, 참담함,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 죽음을 목도한 것에 대한 공포감이 섞여
일렁이는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하지만 한 마리의 적응의 동물로서,
몇 번씩 반복하다 보니 결국에는 차분해졌고,
익숙해지니 환자의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가친척들 다 모여 북적이던 집중관찰실,
사랑하는 딸을 먼저 보내며 부서지는 부모,
오랜 병마에 지친 아내에게 담담히 '수고했다' 말하며 보내주는 남편.
피치 못할 사정으로 조용히 혼자 떠나는 분.
사람 사는 모습이 각기 다른 만큼,
마지막의 모습도 각양각색이었다.
각자가 편하게 느끼는 죽음의 모습은 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배우자와 한두 명의 자녀와 함께
서로에게 '사랑한다, 고마웠다' 하며
마지막 순간을 보내는 분을 보며
아, 나도 저렇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라며 나의 마지막을 그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다음 스텝은!
그렇다. 나보다 더 오래 살 배우자를 찾아서
토끼 같은 자식을 낳는 것이었다.
(평균적으로 여성의 기대 수명이 더 길다지만, 어쨌든 시도는 해봐야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몇 년 동안 오는 소개팅 안 막고
가는 소개팅도 잡아 가두며,
기어코 결혼을 했다.
나의 결혼의 목적이 가족으로 둘러싸여 죽는 것이라니
세상 이기적인 의도이지만,
어쨌든 그러기 위해선 끝까지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 일생 동안 배려하기 위해 노력할 테니
결론적으론 '좋은 게 좋은 거다.'라고 생각한다.
보통은 20~30대의 젊은 나이에는 죽음을 목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경우에 따라서는 평생 못 보기도 하겠지만)
그래서, 그 희귀한 경험을 했던 자로서 소감을 나누자면,
죽음의 순간, 혹은 그 직전까지의 긴 시간 동안
어떤 형태이던 가족의 존재가 참 중요해 보였다.
아픈 등을 문질러주고,
진물이 나오는 상처를 관리해주고.
마지막 순간 손을 잡아주는 가족.
결국 나는, 삼일장 잘 치러줄 사람을 찾기 위해 결혼했다.
이 얼마나 실용적이고, 목적지향적인 결정인가!
하지만 살아보니, 그 사람과 매일 잘 지내야 장례도 품위 있게 치러질 것 같다는 깨달음이 따라왔다.
그래서 오늘도 마음 다잡는다. '꼴 보기 싫어도, 장례식 상주는 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