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에서 살아남기
코로나 이전의 전염병: 흑사병,
코로나 이전의 전염병 중에서 인류의 역사를 획기적으로 바꾼 질병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흑사병일 것이다. 영어로 페스트라고 하는 이 질병은 그 당시 유럽 인구의 30%를 단 몇 년 (1347-1351년: 4년)만에 감소 (75 mil-200 mil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그 당시 전 세계 인구가 5억 명이 되지 않았는데 이 질병 후로 3억 5천만 명 수준으로 감소했다. 이 병은 '바이러스'가 아닌 '박테리아'에 의한 전염병이므로 코로나 바이러스와는 비교된다.
흑사병의 시작은 중앙아시아/동 아시아라고 보는 것이 지배적인데 이 중에서도 검은 쥐들에 붙어사는 벼룩에 의해 실크로드(와 해상)를 거쳐 옮겨졌다고 본다. 아시아의 기후 변동에 따라서 설치류들(과 벼룩이) 함께 유럽으로 이동했고 이후 이들 설치류의 벼룩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촉 (일반 벼룩)에 의해 그 질병이 심각하게 번지게 된다.
흑사병은 black death disease라는 표현인데, 결과적으로 죽음을 검은색으로 표현한 서양식 사고방식의 중첩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한마디로, 죽음 죽음 병, 죽음에 이르는 병 정도로 해석된다. 이 병의 증상으로 손톱과 살이 검은색으로 변하는 증상이 있었다. 반면 18세기까지 이 병의 실질적 명칭은 plague, epidemic, great pestilence 또는 great death 정도로 명명되었다.
세계적인 대유행이라고 보기에는 애매하지만, 적어도 지구 절반 (서방 세계)의 기록적인 대유행이라 봐도 무방하다.
흑사병 이전/이후의 교회: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을 열망한 개인,
이 전염병 이전의 교회는 개인의 신앙이 아닌 교회의 권한이 강조된 형태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교회가 매개체가 되어야 한다는 통념이 강했다. 그러나 전염병이 창궐하던 그 시대에 신념 있는 사제들은 현장에서 환자들을 돌보다 전염병에 감염되어 사망한 경우가 많았고, 결과적으로 병을 피해 몸을 사리던 사제들이 살아남아 교회의 주축이 되었다. 사제의 수준은 떨어졌으나, 사람들의 인식은 바뀐다. 교회가 그들을 구원할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과 개인의 직접적 구원을 연결하고 헌금의 양이 늘어나게 된다. 이 헌금은 14-15세기의 교회 건축물에 쓰인다. 역사적인 교회 건물들이 들어섰다. (화려함을 자랑하는 이태리의 밀라노 대성당도 완공까지는 600년 가까이 걸렸지만, 그 시작은 1386년, 흑사 별 발병 후 39년 이후다.)
이 흑사병으로 인해 유럽의 봉건 제도가 흔들린다. 많은 이들이 죽어 노동력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땅을 소유한 유지들은 부족한 노동력에 봉착한다. 결과적으로 이 제도가 가진 근본적인 원동력 driving force가 사라진다. 원동력이 사라진 사회에 부실은 늘어만 간다. 흑사병 이후의 교회에서는 개인의 믿음이 헌금의 양의 증가로 나타났다. 그리하여 화려한 교회 건축물과 함께 교회는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1500년대에 이르러 교황의 이름으로 면죄부를 팔기 시작한다. 그때의 교회는 지금의 기독교 (개신교)가 생기기 이전의 천주교를 의미한다. 그리고 면죄부라는 인간의 탐욕이 교회 역사상 정점을 찍은 그 시점에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이 이루어진다. 정확히 503년 전의 일이다. 인간이 100%선이라 규정하던 교회 사회에서 큰 획을 그은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인간은 누군가의 죄를 사할 수 없다. 다만, 용서할 수는 있다.
코로나 이전의 교회: 종교 개혁 그 이후,
코로나 이전의 교회는 코로나 이전의 사회와 다를 바 없었다. 종교로써, 모이기를 힘쓰고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기에 애써왔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교회에 대한 인식은 내가 어렸을 때와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그때만 해도 교회에 나간다고 하면 '오, 교회에 나가? 네가? 이야-'라는 이른바, 교회에 대한 사회의 선입견이 괜찮았다. 적어도 나같이 부족한 사람도 교회라는 '선'으로 커버가 되는 프레임이었으며, 나의 선보다 교회의 선이 훨씬 앞서 있었다.
그렇지만, 20년 30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 코로나 이전의 교회를 보면 그렇지는 않다. '교회에 나가세요? 아, 그러시구나.' 개인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오히려 교회로 인해서 폄하되는 상황을 접한다. 기독교인임을 밝히고 나서 오히려 나를 멀리하는 사람들도 겪는다. 왜 지난 수십 년간 교회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은 변화된 것인가?
아무래도 교회의 대형 (자본주의)화를 통해 이른바 큰 교회의 담임목사들의 도덕적인 행태 (세습 등)이 사회적으로 비단 문제가 된 경우가 많을 것이다. 언론이 발달한 21세기에서 선보다는 악한 행위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쉽다.
하나 우리가 여전히 간과하는 것은 흑사병 이전/이후의 교회에서도 나타났듯이 사제 (목사)들도 인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교회라는 단체가 그런 인간들이 모여 있는 장소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가르침인 하나님 사랑, 그리고 이웃 사랑이라는 것을 실천하는 사제가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제, 목사들도 분명 있을 수밖에 없다. 사람은 신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이 100% 선을 행할 수 없고, 사람이 모인 집단이 100% 선을 행하는 집단이 될 수가 없다. 그것이 사람의 본질이자, 교회의 본질이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100% 선은 '교주'라는 형태를 낳는다. 인간이 신이 되는 모임을 우리는 사이비 집단이라 부른다. 코로나 이전의 교회는 100%선을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로 나뉘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의 교회를 바라보면, 또 다른 두 부류로 나뉜다. 정부의 방침에 적극적으로 합치하는 교회, 그렇지 못한 교회: 어떤 교회가 사회적으로 옳은 시선을 받는지는 모두가 알 것이지만, 이른바 최근의 집단 집회를 비롯한 '오프라인 예배 강행'으로 인해 기독교 (교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다시 한번 바닥을 뚫고, 지하실로 내려가고 있다.
코로나 시대의 교회: 나의 예배,
이 시점에서 지난 6개월간, 영국 정부의 방침을 따른 내가 다니는 교회 (런던에 위치한 한인 교회)를 바라본다. 정부의 방침은 물론이거니와, 매주 일요일 남의 교회 (영국 성공회 예배당)을 빌려서 예배를 드리는 우리 교회의 입장에서 영국 정부와 더불어 집주인인 영국 성공회의 교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는 3월의 어느 날, 오프라인 예배를 전면 중지하고, 온라인 예배로의 이동을 진행한다. 온라인 예배로 전향한 이후로 처음 한두 달은 힘들었다.
성가대와 찬양팀 리더로 섬기는 내가 회중들과 함께 호흡하지 못하고 가족들과 나란히 앉게 되었다. 어색했다. 그러나 이내 무엇이 중요한지 깨달았다.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지난 35년간 깨닫지 못했던 진리를 코로나 덕분에 깨닫게 되었다. 지난 나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의 예배에 대한 자세는 다르다. 비 기독교인은 예배를 '본다'라고 표현하는 반면 기독교인들은 예배를 '드린다'라는 표현을 한다. 드린다는 것은 목적어가 필요하다. 이 예배의 주어는 '나'이며, 이 예배를 받는 대상은 하나님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몇 달 전에 깨달았다. 8월 30일 온라인 예배를 드리던 중에 설교 말씀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온라인 예배를 통해 믿음에 변함이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온라인 예배를 통해 흔들리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함께 예배를 드리던 나의 큰 아들이 쑥스럽게, 그러나 누구보다 담대하게 대답했다: '나는 조금 믿음이라는 게 더 커진 것 같아.'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는 내가 낮아질수록, 그리고 예배를 받는 대상이 높아지는 예배다.
코로나 이후의 교회: 언택트, 그러나
신약 성경은 27권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중에서 '서신서'가 21권이다. 즉, 구약 성경과는 다르게, 신약 성경의 21/27=77.77%가 언택트의 오리진, 편지로 이루어진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21권이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바로 복음 그리고 예수님의사랑이다. 4권으로 이루어진 복음서를 21권의 서신서가 구체적으로 적용하며 설파한다.
500년도 지난 그 시점에 마르틴 루터는 오직 성경 solo scriptura를 강조했다. 성경은 모이기를 힘쓰라 외치지만 또한 이렇게 말씀하기도 한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태복음 18:20): 언택트의 시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그곳은 사람의 숫자나 규모에 관계없이 '드리는' 예배가 성립될 수 있다.
언택트의 시대에 정부의 지침에 반하는 억지 오프라인 예배는 그분이 아닌, '나' 혹은 '교회'를 위한 예배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 표지 출처: Wittenberg: Melchior Lotter d.J., 1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