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거짓말쟁이야!

안 괜찮아도 괜찮아

by 빛방울

금요일 저녁, 한 주의 한숨을 내쉬는 날.

황태에 양념을 바르고 오븐에 넣고 기다리는데 맛은 보장할 수 없지만 고추장 마늘이 익어가는 향이 좋다.


'띠리링'

오랜만에 걸려온 작은 오빠의 반가운 전화벨.

"오빠, 잘 지냈어?"

"어, 그래. 방울아! 오늘 엄마 전화받았니?"

"아니? 왜?"

"엄마 소식 못 들었구나."

"......"

순간 시간은 멈추고 철렁 내려앉았다.

"왜, 뭔데? 엉?"
"엄마가 너 걱정한다고 아직 말씀 안 하셨구나. 오늘 아침에 넘어지셔서 손목을 많이 다치셨대."




유난히 추운 아침이었다. 출근길에도 밤에 서리가 살짝 내린 탓인지 엑셀을 밟을 때 헛바퀴가 돌았다. 가는 길에는 사고가 났는지 몇 대의 차들이 길가에 서 있었다. 그 탓에 늦은 출근이 되었다. 그렇게도 춥고 미끄러운 날 아침이었다.


엄마는 항상 새벽에 일어나신다. 짧은 토막 잠을 주무시고는 새벽에 일어나 기도를 하고 아빠 식사를 만들어 놓고 집안을 치운다. 그날도 여전히 엄마는 부지런히 아침의 일과를 마치셨다. 여전히 어스름한 그늘진 아침에 엄마는 따뜻한 햇살을 기다리지 못하시고 밖을 나가셨다. 찬 바람 부는 아침, 쓰레기 봉지를 들고 밖을 나가셨다. 밤새 얼어붙은 얼음 위에서 그만 넘어지셨고 넘어지시면서 짚은 팔목에 문제가 생겨버린 것이다.


힘없이 돌아간 팔목을 잡고 집으로 올라오셨다. 얼마나 아프셨을까? 다행히 그날 아빠가 쉬는 날이셨고 오빠도 있었기에 병원으로 급히 갈 수 있었다. 토요일에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단순 골절이 아니라 철심을 박는 수술이라고 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엄마!"

"아유, 괜찮아. 살다 보면 다칠 수도 있는 거지."

"세상에 얼마나 아팠어. 놀랐겠다, 진짜. 수술도 해야 하고 고생해서 어떡해."

"안 아파. 괜찮아. 그동안 엄마가 너네 먹이고 아빠 해주느라 평생 이 손을 많이 써먹었잖아. 그래서 쉬라고 하는 뜻인가 봐. 엄마는 괜찮아. 걱정 안 해도 돼."

"괜찮긴 뭐가 괜찮아. 엄만 맨날 괜찮대! 내일 갈게."

"오지 마, 아빠도 계시고 오빠도 오고 괜찮아. 퇴원하고 엄마 이쁠 때 와."


다친 사람이 뭐가 괜찮다고 하는 건지. 손목이 부러지고 그 통증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을 엄마는 여전히 괜찮다고 한다. 하나도 안 괜찮으면서 맨날 거짓말이야. 엄마는 거짓말쟁이다. 엄마가 괜찮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엄마가 괜찮다는 말은 '안 괜찮아도 괜찮아.'라는 뜻이라는 것을. 내가 어릴 때 엄마는 다 괜찮은 줄 알았다. 그래서 엄마가 되면 다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런데 엄마가 되어도 안 괜찮은 건 안 괜찮다. 밥을 안 먹으면 배고프고 다치면 아프고 속상하면 울고 싶다. '네가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라는 말도 순 뻥이다. 아이들이 먹는 모습이 기쁠 뿐이고 맛있는 것도 아이들에게 한 점 더 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할 뿐. 안 먹으면 배고프다. 힘든 일을 겪으면 힘에 부치고 힘들고 울고 싶고 어른도 다 똑같다. 그렇지 않은 척할 뿐이다.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지' 노래처럼. 안다.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그러는 건지 다 안다. 나도 엄마니까. 자식이 걱정할까 봐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신경 쓰지 말라고 하는 그 말이 더 아프고 속상하다.


그래도 다행이다. 엄마가 다치셔서 너무 안타깝고 속상하지만 그만하길 다행이다. 어르신들이 넘어지셔서 고관절이 골절되거나 머리를 크게 다치셔서 일어나지 못하신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는데 다른 곳을 크게 다치시거나 위험한 상황이 아니어서 그래도 다행이고 감사한 마음이다. 가족들 모두 놀란 마음을 쓸어내리며 울먹이다가도 그래도 다행이야. 천만다행이야 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엄마 말을 듣지 않고 아버지 드실 반찬을 해서 엄마에게 달려갔다. 이럴 때는 엄마 말을 듣지 않는 게 맞다. 온 가족이 다 가려고 준비했다가 면회하는 시간도 정해져 있고 하루에 한 시간, 한 사람밖에 안 된다고 하니 나만 다녀오기로 했다.


"엄마!"

우리는 멀리서 눈만 마주쳤는데 눈물이 그렁그렁.

"추운데 뭐 하러 왔어."

"엄마, 세상에 너무 아프겠다. 많이 아팠지?"

그제야 엄마는 마취가 풀리니 송곳으로 찌르듯이 너무 아파서 정신을 못 차리겠다고 하셨다. 붕대가 감긴 손은 바람 잔뜩 넣은 고무장갑처럼 퉁퉁 붓고 손가락이 온통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내게 주어진 1시간의 시간을 통증이 느껴지지 않도록 수다를 떨고 오는 것 밖에는. 병실에 같이 있는 분들도 종종 말씀을 건네주셨다.

"딸이 있어야 혀."

"저봐 엄마 옆에서 챙겨주고 하는 건 딸 밖에 없어."

"딸이 있으시니 부러워요. 보기 좋아."

나는 엄마에게 해주는 것도 없이 딸이라서 칭찬을 잔뜩 듣고 왔다. 엄마에게 오길 잘했다. 엄마를 못 봤으면 내내 마음이 엄마에게로 가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 같다. 전화로만 엄마는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게 뻔한데 직접 보고 엄마 옆에 잠시라도 있어주고 너무 아프다는 말도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엄마가 나랑 있는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순간순간의 통증이 옅어지셨길 바라본다. 한 시간은 왜 이리 짧은지 내가 가고 나면 긴 밤을 통증으로 지새야 할 엄마를 생각하니 가슴이 저리고 아프다.



엄마가 다치고 온 날, 내내 아버지는 우셨다고 했다. 아버지도 얼마나 놀라고 가슴이 아프셨을까?

"내가 자꾸 눈물이 나." 하시면서 아버지도 어떻게 해주지 못해 마음이 아프셨으리라.

"이런 시간도 있어야 소중한 줄 알고 하는 거지, 뭐. 그치?"

"아냐, 엄마. 이런 일 없어도 엄마는 너무 소중해. 우린 다 알아. 너무 잘 알아. 그니까 아프지 마."

수술 후 한 동안 고생하실 생각을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지만 그저 최대한 아프시지 말고 잘 나으시길 기도한다.


친정으로 돌아와 침대를 정리하다가 엄마 머리 맡에 놓여진 엄마의 일기장을 훔쳐 보게 되었다. (죄송해요, 엄마!) 매일 쓰는 당신의 일기장에 다친 날 일기가 있을 줄 몰랐다. 왼손으로 삐뚤빼뚤 써내려간 엄마의 일기에 그만 눈물이 났다.


팔목이 다쳐 병원에 다녀왔는데 불편해서 화가 난다고 하셨다. 수술을 앞두고 아버지가 목욕을 시켜주셨는데 아들과 남편을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엄마는 안 괜찮아도 괜찮다고 하셨지만 엄마가 안 괜찮으니 우리는 모두 안 괜찮다. 쉰이 다 되어가는 나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여전히 내게 너무나 크다. 아부지가 계시지만 엄마가 안 계신 친정은 텅 빈 듯 너무 허전하다. 매일 아버지를 살뜰히 챙기시던 엄마가 옆에 안 계시니 아버지는 그 허전함이 더하리라. 내일 아버지 출근하는 길에 신발 밑창에 미끄럼방지 스프레이를 뿌려드려야겠다. 엄마가 해 주셨듯 반숙 계란에 들기름을 두르고 콩을 갈아 만든 따뜻한 두유를 드려야지. 늦잠 자면 큰일인데!


엄마 손 대신 나의 손을 많이 써야겠다. 엄마 솜씨에 비할 수 없어 입맛에 맞지 않더라도 반찬도 해드리고 더 자주 와서 엄마 손 대신 청소도 해드리고 엄마 손 대신 머리도 감겨드려야겠다.


"엄마의 오른팔이 되어드리겠습니다, 충성!"

"사랑해요, 우리 엄마. 얼른 나으시길 기도합니다. 오늘 밤엔 통증 없이 푹 주무시게 해 주세요!"



덧붙여,

겨울철 빙판길 조심하세요! 미끄러운 길을 가지 않아야겠지만 나가실 때에는 미끄럽지 않은 신발을 신으세요. 장갑도 꼭 끼시고 주머니에 손을 넣지 않고 걸으시길요. 눈길이나 빙판길에 늦었다고 뛰지 마시고 좀 더 여유롭게 천천히 걸으시면 좋겠어요.


정말이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조심하지 않으면 '아차' 하는 순간에 사고나 나더라고요.

부디, 건강하게 무탈하게 올 겨울을 지나가시길 바라겠습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따뜻한 겨울이 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엄마의 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