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핵추진 LNG선, 바다 위의 원자로

탈탄소 시대, 해운산업의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을까

by 드라이트리

해운산업은 오늘날 전 세계 무역의 90퍼센트 이상을 담당하는 거대한 물류 네트워크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3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며,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거대한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국제해사기구가 2050년까지 해운산업의 탄소 순배출을 제로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이후, 해운 기업들은 새로운 대안을 찾아 나서고 있습니다. 수소나 암모니아 추진, 전기 추진 기술이 논의되고 있지만 대형 선박의 장거리 운항에 적용하기에는 여전히 기술적, 경제적 한계가 존재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는 것이 바로 핵추진 LNG선입니다.


핵추진 LNG선은 기존의 LNG 연료 엔진을 넘어, 소형 모듈 원자로를 선박에 탑재해 추진력을 얻는 방식입니다. 군사용 잠수함이나 항공모함에서 오랜 시간 사용되어온 원자력 추진을 민간 상업용으로 확장하려는 개념입니다. 원자로에서 발생하는 열은 증기를 만들어 터빈을 돌리고, 그 힘으로 전기를 생산해 추진력을 만들어냅니다. 가장 큰 장점은 연료의 제약이 사실상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한 번 연료를 장전하면 수년간 연속 운항이 가능하며, 카타르에서 아시아, 미국에서 동아시아로 이어지는 초장거리 LNG 항로에서 막대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화석연료를 태우지 않기 때문에 이산화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고, 국제해사기구가 설정한 넷제로 목표 달성에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핵추진 LNG선이 실제로 운항하기 위해서는 안전성, 규제, 국제적 수용성이라는 삼중의 장벽을 넘어야 합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우려는 안전 문제입니다. 원자로 사고가 선박에서 발생할 경우, 그것이 항만 근처라면 피해는 단순한 해상사고를 넘어 국제적 재난으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술적으로는 소형 모듈 원자로의 안전성이 이미 입증되었다 하더라도, 대중과 항만국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신뢰를 확보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국제 규제 역시 난관입니다. 국제해사기구는 1970년대부터 원자력 선박의 안전 규정을 마련했지만, 실제 상업용으로 운영된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군사적 용도로 제한된 핵추진 잠수함이나 항공모함이 전부입니다. 따라서 민간 LNG선에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은 사실상 공백 상태입니다. 항만국의 태도도 변수입니다. 일본이나 유럽 주요 항만은 원자력 선박의 입항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상업적 확산에 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회는 존재합니다. 러시아는 이미 원자력 쇄빙선을 운영하며 북극 항로에서 상업적 운송 실험을 진행 중이고, 중국과 일본 역시 자체 원자로 기술을 바탕으로 개념 설계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 조선업 세계 1위 국가이자 원자력 발전 경험을 가진 국가로서 독보적인 기회를 가진 셈입니다. 한국의 대형 조선 3사는 이미 세계 LNG선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으며, 정부 차원의 소형 모듈 원자로 개발도 활발하게 진행 중입니다. 조선과 원전이라는 두 가지 강점을 결합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많지 않습니다. 만약 한국이 핵추진 LNG선의 안전성을 입증하고 국제 규범을 선도할 수 있다면, 단순히 선박 한 척의 건조를 넘어 해운산업의 새로운 표준을 만드는 주역이 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시나리오는 몇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보수적 규제 강화가 이어질 경우 핵추진 LNG선은 사실상 상업 운항이 불가능해지고, 기존의 LNG 이중연료 추진이나 암모니아, 수소 추진 기술이 대안으로 자리잡을 것입니다. 둘째, 점진적 수용 시나리오에서는 국제해사기구가 소형 모듈 원자로 안전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극지방이나 특수 항로에서 제한적으로 운항을 허용하면서 서서히 상업적 실증을 쌓아가는 방식입니다. 마지막으로 적극적 수용과 표준화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기후위기 대응을 이유로 국제해사기구가 원자력 추진 LNG선을 적극 장려하고, 이를 탄소 제로 선박으로 인정하는 방향입니다. 이 경우 2050년 무렵에는 전 세계 주요 항로에서 핵추진 LNG선이 흔한 광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핵추진 LNG선의 미래는 기술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국제 규제와 안전성에 대한 신뢰, 항만국의 수용성이라는 변수가 얽혀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제한적 실증이 가능할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국제 표준화와 제도적 합의가 이뤄질 때 비로소 본격적인 상업 운항이 가능할 것입니다. 지금은 다소 공상처럼 보일 수 있는 바다 위의 원자로가, 2050년에는 새로운 해운 질서를 바꾸는 게임체인저가 될지도 모릅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