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그리고 한국의 선택
산업혁명이 증기기관을, 20세기 국제질서가 원자폭탄을 패권의 언어로 삼았다면, 21세기 세계 질서를 규정하는 언어는 인공지능(AI)입니다. AI는 단순히 산업의 효율을 높이는 도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군사력, 경제력, 사회 통제 능력까지 규정하는 종합 패권 기술입니다. 빅데이터·반도체·알고리즘이 결합된 AI는 국가 경쟁의 본질을 바꾸고 있습니다.
이제 경쟁은 더 이상 GDP 총량이나 군사 병력의 숫자가 아니라, 누가 더 많은 데이터를 통제하고, 누가 더 정교한 알고리즘을 만들며, 누가 더 강력한 반도체를 보유하는가의 문제입니다.
미국은 여전히 AI의 종주국입니다.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한 오픈AI, 구글 딥마인드,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들은 AI 모델 경쟁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습니다. GPT-4, GPT-5, Claude, Gemini, Grok 등은 모두 미국 기업에서 탄생했습니다.
미국의 강점은 단순히 기업의 기술력에만 있지 않습니다. 벤처 자본, 대학 연구, 국방부 DARPA 프로젝트, 인재 풀, 개방적 생태계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미국 AI 경쟁력의 원천입니다. 또한 미국은 AI 반도체 시장의 절대 강자인 엔비디아, AMD, 인텔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GPU와 AI 전용 칩에서 미국이 지닌 우위는 사실상 전 세계가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냈습니다.
중국은 미국에 비해 후발주자였지만, 국가적 총동원 체제를 통해 빠르게 추격하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AI를 ‘전략적 기술’로 규정하며, 막대한 자본과 데이터를 집중적으로 투입했습니다.
데이터 자원: 14억 인구와 사회 전반에서 수집되는 데이터는 중국의 ‘AI 원유’입니다.
기업 생태계: 바이두의 언어 모델, 알리바바의 클라우드, 텐센트의 게임·SNS 데이터, 화웨이의 하드웨어 역량이 결합되었습니다.
국가 전략: 중국은 AI를 사회 통제, 감시 체계, 군사 전략에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있습니다. ‘사회 신용 시스템’은 AI의 통제적 측면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중국의 목표는 단순한 추격자가 아니라, 2030년까지 세계 AI 패권국이 되는 것입니다.
AI 패권 경쟁은 단순한 산업 경쟁을 넘어 신냉전의 핵심 전장입니다. 미국은 반도체 장비와 첨단 칩 수출을 통제하며 중국의 성장을 억제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AI 안전성’ 담론을 국제 규범으로 주도하며, 서방 중심의 기술 질서를 만들고 있습니다.
반면 중국은 자체 칩 개발을 가속화하고, 러시아·중동·글로벌 사우스(전세계 남반구에 위치한 국가들, 아시아/중동/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등) 국가들과의 기술 협력으로 미국 중심 질서에 균열을 내고자 합니다. 이 경쟁은 곧 AI를 둘러싼 양극 질서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AI 패권 경쟁은 군사 영역에서 가장 첨예하게 드러납니다.
미국은 AI를 전투기·함정·위성·사이버전에 적용해 ‘지능형 전쟁’ 전략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미 국방부는 이미 AI 기반 합성 시뮬레이션과 자율 무기 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AI 군집 드론, 자율 잠수정, 극초음속 무기에 AI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미국을 추격하고 있습니다. “스마트 전쟁(智能化戰爭)”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실제 군사 전략으로 발전 중입니다.
이는 한반도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칩니다. 한국전쟁의 정전 체제가 이어지는 한, AI 기반 무기 체계는 남북한 모두에게 전략적 우위를 좌우하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은 미·중 AI 경쟁의 최전선에 놓여 있습니다.
경제적 딜레마: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고, 한국 기업들은 중국 시장에 깊숙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은 한국의 안보를 지켜주는 핵심 동맹입니다.
산업적 딜레마: 한국은 반도체·배터리·5G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미국의 공급망 전략(Chip 4, IRA 등)과 중국 시장의 압박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합니다.
안보적 딜레마: 한국은 미국의 AI 군사동맹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동시에, 중국의 군사·경제적 보복 가능성도 감수해야 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선택은 단순히 외교 기술이 아니라, 국가 생존 전략입니다.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미국 중심 동맹 강화 AI 반도체, 클라우드, 군사기술에서 미국과 협력을 확대 그러나 중국의 경제 보복 위험 존재
중국과의 균형적 협력 경제·산업 협력은 유지하되, 안보 영역은 미국 중심으로 정렬 현실적이지만, ‘양쪽에서 신뢰받지 못하는’ 위험
자주적 AI 전략 구축 한국형 AI, 반도체, 국방 AI를 독자적으로 발전시켜 외부 충격 최소화 그러나 막대한 투자와 장기적 전략 필요
AI 패권 경쟁은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21세기 국제질서의 본질을 규정하는 힘입니다. 미국은 혁신 생태계와 반도체를 무기로, 중국은 국가 총동원 체제와 데이터 자원을 무기로 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한국은 다시 한번 ‘힘의 경계선’에 서 있습니다.
역사는 반복해서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단순한 패권 경쟁의 말(駒)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의 전략을 가진 주체가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