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nological Surge Cycle
칼로타 페레즈(Carlota Perez)의 기술 급증 주기(Technological Surge Cycle) 이론과 Patrick O’Shaughnessy, Jerry Neumann의 대화는 기술 혁신, 자본의 흐름, 그리고 투자에서의 ‘불확실성’의 의미를 하나의 큰 구조 안에서 이해하게 해주는 프레임워크를 제공합니다.
칼로타 페레즈는 기술 혁명이 단순히 새로운 발명이 등장하는 사건이 아니라, 금융 자본과 생산 자본이 교차하며 사회 전체의 구조를 재편하는 장기적 파동이라고 설명합니다. 하나의 기술 시스템이 등장하면 초기에는 ‘설치기(installation period)’가 열립니다. 이 시기에는 새로운 기술이 어떤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할지, 어디에 적용될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은 잠재 수익을 기대한 금융 자본이 대규모로 유입됩니다. 이 단계에서는 자본이 구체적인 사업 모델보다 ‘가능성’에 베팅합니다. 철도, 전기, 인터넷, 최근의 인공지능까지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리고 거의 예외 없이 거품이 형성되고, 결국 붕괴가 발생합니다.
붕괴 이후에는 ‘배포기(deployment period)’가 시작됩니다. 이때부터는 금융 자본이 아니라 생산 자본이 주도권을 잡습니다. 금융 자본은 급진적이고 모험적인 확장을 선호하지만, 생산 자본은 수익의 안정성과 효율을 중시합니다. 따라서 혁신의 속도는 느려지지만, 기술은 사회 전반에 깊숙이 통합됩니다. 규제가 도입되고, 기업은 확장보다는 수익성 개선과 효율화에 집중합니다. S자형 성장 곡선은 점차 완만해지고, 시스템은 안정화됩니다. 그러나 바로 그 안정화가 다음 사이클의 씨앗이 됩니다. 수익률이 점차 낮아지면 금융 자본은 다시 새로운 ‘미지의 영역’을 찾아 이동하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페레즈가 강조하는 개념이 바로 ‘역방향 돌출부(reverse salients)’입니다. 기술 시스템은 여러 요소가 얽힌 복합 구조이며, 특정 부문이 병목으로 작용하면 전체 시스템의 진보가 지연됩니다. 예를 들어 인터넷은 소프트웨어만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막대한 광섬유 인프라, 서버, 통신 표준, 반도체 기술이 함께 발전해야 했습니다. 단일 스타트업이나 벤처캐피털이 시스템 전체를 밀어올릴 수는 없습니다. 사회적 합의, 정책, 대규모 자본이 함께 움직여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이 점은 최근 AI 인프라 투자, 데이터센터 전력 문제, 반도체 공급망과도 구조적으로 유사합니다. 하나의 기술이 독립적으로 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가 동조화되어야 합니다.
투자자의 관점에서 이 주기를 볼 수도 있습니다.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을 ‘위험(risk)’이 아니라 ‘불확실성(uncertainty)’으로 구분합니다. 이는 경제학자 프랭크 나이트의 구분과 일치합니다. 위험은 확률을 알 수 있고 보험을 들 수 있는 영역이지만, 불확실성은 확률 분포 자체를 알 수 없는 영역입니다. 알파 수익은 위험에서 나오지 않고 불확실성에서 나옵니다. 만약 결과가 명확하다면 기존 대기업이 이미 그 기회를 차지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뉴먼은 투자 아이디어를 두 가지로 나누라고 제안합니다. 하나는 명백히 나쁜 아이디어, 다른 하나는 ‘나쁜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아이디어’입니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으므로, 확실히 나쁜 것만 제거하고 나머지는 열린 태도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겸손’에서 출발합니다. 확신에 차서 ICO나 특정 기술에 몰빵하는 태도는 오히려 위험하다고 봅니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논점은 ‘수익은 어디에서 창출되는가’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기술 자체보다 그 기술을 활용하는 하류 산업에서 더 큰 수익이 발생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TV와 라디오의 경우 하드웨어 제조사보다 콘텐츠 산업이 더 큰 가치를 창출했습니다. 랄프 웽거가 말했듯이, 산업혁명 이후에는 기술 기업 자체보다는 새로운 기술의 혜택을 받는 사업에 투자하는 전략이 더 현명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VR 사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VR 기기는 점차 표준화되고 저렴해질 가능성이 높지만, 대중적 성공은 콘텐츠에서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반면 AR은 산업 현장 등 특정 틈새에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기업에 기회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뉴먼의 접근은 본질적으로 ‘퍼즐 풀기’에 가깝습니다. 자본주의에는 정해진 레시피가 없으며, 수십억 달러 기업을 만드는 공식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프레임워크는 유용할 수 있지만, 모든 모델은 불완전합니다. 중요한 것은 특정 기업이 성공할지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세상은 어떻게 반응할까?”라는 시스템적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고객, 경쟁사, 정부, 인프라, 규제 환경까지 고려한 종합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그의 투자 사례인 Bank Simple에서도 이러한 사고가 드러납니다. 전통 은행이 고객을 자금 공급자로 취급하는 구조를 뒤집어, 예금자를 진정한 고객으로 재정의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성공 확률은 낮아 보였지만, 1% 확률로 1000배 성장한다면 기대값은 양(+)이 됩니다. 그는 기대값 관점에서 불확실성을 평가합니다.
기술 혁명 초기에는 불확실성이 극대화되고, 금융 자본이 미지의 영역에 베팅합니다. 붕괴 이후에는 생산 자본이 체계를 정비하며, 기술은 사회에 통합됩니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불확실성이 등장합니다. 투자자는 이 거대한 파동 속에서 ‘확률을 계산할 수 없는 영역’을 의식적으로 찾아야 합니다. 동시에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겸손을 유지해야 합니다.
기술 혁명은 단선적 진보가 아니라 자본 구조와 사회 시스템이 재편되는 순환적 과정이며, 알파 수익은 예측 가능한 위험이 아니라 나이트식 불확실성에서 발생합니다. 그리고 성공적인 투자자는 전략을 복제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고방식을 복제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독자적으로 퍼즐을 풀어가는 사람입니다.
https://medium.com/@ckwitt3/patrick-oshaughnessy-jerry-neumann-conversation-4d3afc3878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