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 결산

by 노마드 파미르


산불진화대가 6.30일을 기점으로 상반기 업무를 종료하였다. 이름하여 무급 여름 휴직(엄밀한 의미에서 휴직은 아니다. 고용보험이 상실되었다는 통보가 온 걸로 미뤄, 관계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돌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후반기 재 고용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자칭 '무급휴직'이라 칭한다) 단, 계약 조항에 산불이 발생한다면 출동할 수 있다는 단서가 있긴 하지만 여름 산불은 거의 무시해도 좋다는 고참들의 경험을 신뢰한다면 짐 싸 들고 멀리 여행이라도 떠나도 좋은 달콤한 백수.



몇 푼의 소주값이라도 남아 있을까.. 하여 칠월의 첫날, 미정리 통장을 챙겨 개설 은행을 방문한다. "여기부터 여기까지 주어악~ 정리 좀 부탁합니다" 드르륵드르륵 이윽고, 장장 24페이지의 거래내역이 정리된 두 개의 통장을 받아들었다. 결산이 무슨 소용과 이득이 있으랴마는, 경험에 비춰 보건대 있는 살림(?)일수록 건사를 요구한다. 즉,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관리의 원칙 말이다. 본시 이 몸이 쪼잔한 태생이라 작은 것은 부풀리고 큰 것은 더 크게 뻥튀기는 재주가 남다르다. 벗들에게 결산을 고백하자면 이렇다. 산불 진화대 총수입 9,933,260원. 총지출 5,353,460원. 가용 잔액 4,579,800원. 나앗 뱃!! 한동안 이 벗 저 벗 가리지 않고 소주 한 잔 받아 줄 형편은 마련했다. 저 멀리 파미르고원에서라도.



아는 이는 알세라 실없는 객소리는 벗들과 웃자고 공개하는 살림살이다. 있어봐야 얼마고, 없다고 징징거려봐야 거기서 거긴 노년의 삶. 따지고 보면 기약할 수 없는 세상살이라지만, 호기롭게 술 한잔 받아주겠다고 객기마저 부릴 수 없다면, 걸어서 파미르를 넘겠다는 호언을 꿈꾸지 못한다면,(실제로 이 몸은 꿈속에서 자주 여행을 하는 편이다) 지겨운 인생살이 살맛이 없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그대들과 이별할 날이 멀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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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듬성듬성 골짜기에, 잔설이 남아 있던 이월 초순경 핸드폰으로 박은 사진이다( 여러 얼굴들의 초상권 사용을 양해 받은 처지가 아니라서 초점을 흐려 이미지만 남기고 선명함은 가차 없이 버렸다). 첫 산불 진화 훈련이 시청 뒷산 봉화산에서 있던 날, 훈련을 마치고, 이름도 얼굴도 낯선 생면 부지의 대원들이 마스크를 내리고 면상을 드러냈다. 코로나가 선사한 얼굴 없음의 세월.. 수개월이 지난 지금에야 면면과 인식표를 매칭할 수 있지만, 당시는 같은 제복을 걸친 복제품 같아 구별이 불가했던 진화 대원들의 모습을 살펴보자니 문득, 아련하다. 보기보다 야무진 인생을 살았을 성싶은 관상하며, 혹자는 생각보다 쓸쓸한 눈매를, 또 혹자는 진즉에 알아보지 못한 온화한 미소를 갖고 있었구나.. 누군가의 남편이고 누군가의 아비들이 인생 고락을 뒤로한 채, 제복 속에서 웃고 있다. 모두 강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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