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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스리랑카 Jul 05. 2021

노가다 결산


산불진화대가 6.30일을 기점으로 상반기 업무를 종료하였다. 이름하여 무급 여름 휴직(엄밀한 의미에서 휴직은 아니다. 고용보험이 상실되었다는 통보가 온 걸로 미뤄, 관계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돌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후반기 재 고용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자칭 '무급휴직'이라 칭한다) 단, 계약 조항에 산불이 발생한다면 출동할 수 있다는 단서가 있긴 하지만 여름 산불은 거의 무시해도 좋다는 고참들의 경험을 신뢰한다면 짐 싸 들고 멀리 여행이라도 떠나도 좋은 달콤한 백수.



몇 푼의 소주값이라도 남아 있을까.. 하여 칠월의 첫날, 미정리 통장을 챙겨 개설 은행을 방문한다. "여기부터 여기까지 주어악~  정리 좀 부탁합니다" 드르륵드르륵 이윽고, 장장 24페이지의 거래내역이 정리된 두 개의 통장을 받아들었다. 결산이 무슨 소용과 이득이 있으랴마는, 경험에 비춰 보건대 있는 살림(?)일수록  건사를 요구한다. 즉,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관리의 원칙 말이다. 본시 이 몸이 쪼잔한 태생이라 작은 것은 부풀리고 큰 것은 더 크게 뻥튀기는 재주가 남다르다. 벗들에게 결산을 고백하자면 이렇다. 산불 진화대 총수입 9,933,260원. 총지출 5,353,460원. 가용 잔액 4,579,800원. 나앗 뱃!! 한동안 이 벗 저 벗 가리지 않고 소주 한 잔 받아 줄 형편은 마련했다. 저 멀리 파미르고원에서라도. 



아는 이는 알세라 실없는 객소리는 벗들과 웃자고 공개하는 살림살이다. 있어봐야 얼마고, 없다고 징징거려봐야 거기서 거긴 노년의 삶. 따지고 보면 기약할 수 없는 세상살이라지만, 호기롭게 술 한잔 받아주겠다고 객기마저 부릴 수 없다면,  걸어서 파미르를 넘겠다는 호언을 꿈꾸지 못한다면,(실제로 이 몸은 꿈속에서 자주 여행을 하는 편이다) 지겨운 인생살이 살맛이 없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그대들과 이별할 날이 멀지 않다.  


아직 듬성듬성 골짜기에, 잔설이 남아 있던 이월 초순경 핸드폰으로 박은 사진이다( 여러 얼굴들의 초상권 사용을 양해 받은 처지가 아니라서 초점을 흐려 이미지만 남기고 선명함은 가차 없이 버렸다).  첫 산불 진화 훈련이 시청 뒷산  봉화산에서 있던 날, 훈련을 마치고, 이름도 얼굴도 낯선 생면 부지의 대원들이 마스크를 내리고 면상을 드러냈다. 코로나가 선사한 얼굴 없음의 세월.. 수개월이 지난 지금에야  면면과 인식표를 매칭할 수 있지만, 당시는 같은 제복을 걸친  복제품 같아 구별이 불가했던 진화 대원들의 모습을 살펴보자니 문득, 아련하다. 보기보다 야무진 인생을 살았을 성싶은 관상하며, 혹자는 생각보다 쓸쓸한 눈매를, 또 혹자는  진즉에 알아보지 못한 온화한 미소를 갖고 있었구나.. 누군가의 남편이고 누군가의 아비들이 인생 고락을 뒤로한 채, 제복 속에서 웃고 있다. 모두 강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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