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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Dec 08. 2024

내란 1주차

2024-12-04

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 20분에 나는 오랜만에 영화제에서 만난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시발 이거 뭐냐"라는 친구의 카톡을 보고서야 술집의 TV를 봤고,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 중이었다. 볼륨이 키워져 있지 않아 정확한 내용은 듣지 못했지만, 방금 전까지 송출되던 심야예능이 갑자기 다른 화면으로 바뀌었다는 것에 충격 받았다. 친구들과 나는 30분 정도 넋나간 것처럼 시간을 보내다 계엄 유경험자인 아빠의 전화를 받고 우선 집으로 돌아왔다. 


새벽 4시에나 잠이 들었다. 4시간을 겨우 자고 학교에서 교수님과 면담을 하고, 압구정으로 와 두 개의 GV 모더레이터를 진행하고, 집에서 나선지 14시간만에 집에 들어왔다. 수면 부족의 날. 이런 시기에 영화제에서 영화를 보고 영화 이야기를 하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다가도, 정해진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는 게 어쨌거나 중요한 게 아닐까 싶다가도... 수면부족과 불안 속에서 만난 사람들은 지난 밤의 충격을 나누면서도 지금의 우리 자리를 지키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만 같다. 혹은 어제의 충격을 오늘의 만남으로 해소하려고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연구실에 홀로 남아 있는 게 집중이 되질 않아 GV 시간보다 몇 시간 일찍 영화제를 찾았으니까.


다들 지난 밤 사이 벌어진 일들을 목격했다. 누군가는 여의도에서, 누군가는 TV나 스마트폰으로. 모든 게 영상으로 매개되는 시대에 반헌법적 비상계엄이 가당키나 한가. 우리는 생중계로 사건을 지켜보는 데 충분히 익숙해졌다. 10년 전에도, 2년 전에도, 그 사이 있었던 무수한 집회와 재난과 사건들에서도. '보기'는 우리가 거기에 존재하게 한다. '보기'는 우리가 그것을 기억하게 한다. '보기'는 우리가 증거할 수 있게 한다. '보기'는 우리가 모이고 말하는 기반이 된다. '보기'는 우리가 그것을 직접 볼 용기를 준다. 영화들을 보면서 알게 된 가장 자명한 사실은, 결국 그것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당분간 이어질 피로한 '보기'의 시간을 모두가 잘 버텨내길, 벌어져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지지 않길.


2024-12-07

지난 탄핵 집회로부터 채 10년이 되지 않은 시점에서 다시 탄핵을 외치며 거리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오늘 여의도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 쏟아져 나온 모든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하며 나왔을 것이다. 어제 짧게나마 들렀던 국회 앞 집회를 찾았을 때는 2016년 10월 말 처음 박근혜 퇴진 집회를 나갔을 때의 압축된 경험 같았다. 그때 봤던 페미니스트, 성소수자, 각종 노동조합, 대학 조직, 각자의 취향이 담긴 깃발들... 세계 여성의 날 행진이나 퀴어퍼레이드에서나 재차 마주하던 그 깃발들을 탄핵 요구 아래 다시 마주한다니. 당시 함께 광화문으로 나갔던 친구들과 국회 앞 도로에 앉아 있던 시간을 뭐라고 말해야될지 모르겠다. 3일 밤 비상계엄 선포와 계엄 해제 이래로 무너진 일상 속에서 어떤 생각을 해야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할까.


어제 집회에 다녀오고 2016년 집회 때의 사진들을 다시 꺼내보고 있다. 몇 주에 걸친 탄핵 집회, 매주 터져 나온 대통령의 범죄들. 몇 주에 걸친 집회는 조금씩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았고 더 다양한 집회의 방법들이 등장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그때 쌓인 경험치가 압축되어 터져 나온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탄핵 정국인만큼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간다. 수 주에 걸쳐 진행됐던 것들이 지난 3일 동안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탄핵소추안 가결이라는 쉼표를 찍지 못했다. 장기전을 준비해야 한다. 10월 말 시작됐던 이전 탄핵 정국과 달리 올해는 12월에 출발했다. 여의도의 빌딩풍은 매섭고 일몰과 함께 급격하게 떨어진 기온은 겹겹이 껴입은 옷 사이를 파고든다. 국회 앞 도로와 공원은 광화문 광장보다 좁다. 우리가 모여야 할 물리적 조건은 과거보다 더 험난할지도 모른다.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일이다. 위헌적 비상계엄 이후에도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내세우며 표결조차 불참한 국민의힘이 위헌정당 판결을 받을 때까지, 명백한 내란행위를 저지르고서도 여전히 자유로이 활보하는 이들이 체포되어 재판받을 때까지, 이 모든 것의 원흉인 대통령이 끌어내려질 때까지, 아래 명단의 이름들이 다시는 선출직에 이름을 올리지 못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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