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정쩡한 '하드 바디'의 재림

<분노의 질주: 홉스&쇼> 데이빗 레이치 2019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I6 요원인 해티(바네사 커비)는 여러 테러조직이 노리고 있는 바이러스를 안전하게 확보하는 작전에 투입된다. 작전 끝에 바이러스를 확보한 해티는 정체불명의 강력한 슈트를 입은 의문의 조직 요원 브릭스턴(이드리스 엘바)에게 습격을 받고, 바이러스를 넘겨주는 대신 자신에게 주입한 뒤 도망친다. CIA는 이 사건의 진상조사를 위해 루크 홉스(드웨인 존슨)와 데커드 쇼(제이슨 스타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앙숙인 둘은 만나자마자 서로를 디스 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나타난 브릭스턴에게 습격을 당한 루크, 데커드, 해티는 브릭스턴의 조직 에테온에 의해 누명을 쓰고 도망치기 시작한다. 해티의 몸속에 주입된 바이러스의 잠복기는 72시간, 루크와 데커드는 함께 도망치고 싸우며 앙숙에서 동료로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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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소소한 뒷골목 레이서들의 이야기로 시작한 <분노의 질주> 시리즈가 18년 만에 첫 스핀오프 작품을 내놓았다. <분노의 질주: 홉스&쇼>는 5편부터 등장한 캐릭터인 루크 홉스와 7편의 빌런이자 8편의 동료였던 데커드 쇼를 내세운 작품이다. 시리즈의 9번째 영화이기도 하다. 연출은 <존 윅> 시리즈 첫 영화의 공동연출자이자 <아토믹 블론드>와 <데드풀 2>를 연출했던 데이빗 레이치가 맡았다. 그 말은 데이빗 레이치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홉스&쇼> 또한 기존 액션 영화들에 대한 패러디와 오마주로 가득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순간부터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이게 실제로 가능한가?”라는 의문을 품게 만드는 스턴트로 가득한 블록버스터 액션 시리즈가 되었다. <미션 임파서블>이나 ‘본 시리즈’ 등과 함께 슈퍼히어로와 SF 액션이 지배하는 블록버스터 시장에서 아날로그 액션의 명맥을 이어온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한 시리즈에 실버스타 스탤론이나 아놀드 슈워제네거 등의 하드 바디 액션 스타를 연상시키는 드웨인 ‘더 락’ 존슨과, 할리우드에서 격권영화의 명맥을 이어오던 대표적인 배우인 제이슨 스테덤의 합류는 시리즈의 방향성을 바꿔 놓았다. 데이빗 레이치는 이 지점을 <홉스&쇼>의 기둥으로 삼는다. 카체이싱의 분량을 줄이는 대신 맨몸이나 주변 사물을 이용하는 근접 격투를 액션 시퀀스의 중심으로 잡고, 폭파와 타격감을 중시하는 액션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여기에 두 캐릭터의 앙숙관계를 이용한 여러 농담들은 80~90년대를 주름잡던 액션 영화들의 시시껄렁한 농담의 재현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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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홉스&쇼>는 제목을 <드웨인&제이슨>으로 바꿔도 무방할 정도이다. 데이빗 레이치가 구상한 하드 바디 액션 영화들에 대한 패러디와 오마주를 수행하는 두 액션 스타는 이미 각각의 커리어를 다양한 액션 영화들로 채워온 이들이다. 때문에 영화는 기존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물론, <램페이지>, <스카이스크래퍼> 등의 드웨인 존슨 주연작들과, <이탈리안 잡>, <트랜스포터>, <뱅크잡>, <스파이> 등 제이슨 스테덤 주연작들의 요소들을 가져온다. 후반부의 헬기 장면이나 루크가 빌딩에서 뛰어내리는 장면, 데커드의 차고에 <이탈리안 잡> 속 미니 쿠퍼가 등장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다시 말해 데이빗 레이치는 <존 윅>이 액션 영화의 계보를 키아누 리브스의 몸을 통해 재현하려는 것처럼, 80~90년대 하드 바디 액션 영화의 명맥을 유지해온 드웨인 존슨과 제이슨 스테덤의 커리어를 긁어모아 당시의 액션 영화를 재현하려 한다. 이것은 액션이 강조된 에스피오나치 영화들을 끌어온 <아토믹 블론드>나 슈퍼히어로 액션 영화들을 끌어온 <데드풀 2>와도 연관되는 시도인 셈이다. <존 윅>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는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이 ‘존 윅’을 통해 액션 영화의 계보를 정리하려 한다면, 데이빗 레이치는 단독 연출한 각각의 영화들을 통해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국지적인 역사를 정리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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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홉스&쇼>가 지향하는 하드 바디 액션 영화는 너무나도 오래된 장르라는 점이다. 액션 영화의 역사 전체를 대상으로 한 <존 윅> 시리즈가 액션 영화의 다양한 라이브러리 안에서 원하는 요소들을 새롭게 재구성함으로써 동력을 얻는다면, <홉스&쇼>가 지정한 대상은 너무나도 협소하기에 2019년의 영화가 되기엔 동력이 충분치 않다. 예고편에서는 충분한 웃음을 선사했던 루크와 데커드의 입담이 영화 속 늘어지는 편집 때문에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그 증거 중 하나이다. 예고편 속 빠른 편집은 두 캐릭터-배우의 티키타카를 깔끔하게 보여주지만, 하드 바디 액션 영화의 리듬을 지향하는 본편의 편집에서는 군더더기처럼 느껴질 뿐이다. 특히 데이빗 레이치와 드웨인 존슨과의 인연으로 출연한 것으로 추정되는 두 카메오의 출연 장면들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 이는 액션 장면들에도 해당된다. 루크, 데커드, 해티가 브릭스턴의 습격을 받은 뒤 이어지는 카체이싱 장면이 대표적이다. 드웨인 존슨의 육중한 몸을 활용한 묵직한 쇼트들이 인상적이지만, 시퀀스 전체의 움직임은 늘어지기만 한다. ‘하드 바디’에 걸맞게 신체를 강화한 브릭스톤의 능력도 보여줘야 하고, 남매인 해티와 데커드의 관계도 보여줘야 하며, 오토바이와 스포츠카가 펼치는 추격전의 긴박함도 담아야 하다 보니 장면 자체에 담기는 요소들이 과하게 많아진다. 이러한 요소들은 후반부 사모아 섬에서의 액션에서도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모아나>를 분명하게 연상시키는) 드웨인 존슨의 폴리네시안 정체성을 드러내는 요소, 루크의 형제들과 에테온이 맞붙어야 하는 상황, 바이러스와 연관된 해티의 상황 등이 한 장면 안에 휘몰아치다 보니 하나의 시퀀스에서 너무 많은 요소들이 뒤엉킨다. 이 요소들을 미리 세팅했어야 될 액션 시퀀스 앞의 장면들은 시시껄렁한 농담들에 소비되고 만다. 때문에 <홉스&쇼>의 액션들은 기존 <분노의 질주> 시리즈처럼 묵직한 쾌감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한다. 배우의 영화 밖 모습에 기반한 두 주인공 캐릭터의 매력은 여전하지만, 이들의 매력을 강조하는 능력은 액션 영화에 대한 감독의 욕심에 비해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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