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쿠엔틴 타란티노 2019
*스포일러 포함
한때 인기를 끌었지만 지금은 퇴물에 가까운 할리우드 배우 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은 이런저런 TV쇼와 영화들에 악역으로 출연하며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고, 그의 스턴트 더블 클리프(브래드 피트)는 스턴트맨으로써의 일을 잃어버린 채 릭의 매니저처럼 일하고 있다. 릭의 옆집에는 샤론 테이트(마고 로비)와 로만 폴란스키 커플이 살고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9번째 영화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베트남전이 한창이고 히피 문화가 퍼져나가고 있는 1969년의 할리우드를 스케치한다. 카메라는 릭, 클리프, 샤론 세 인물만을 쫓아가고, 이는 그 해에 실제로 벌어졌던 맨슨 패밀리의 살인사건으로 한데 모이게 된다. 때문에 영화는 상당히 길고(러닝타임 161분), 산만하고, 중심이 되는 사건이 없다. 전쟁, 히피, 폭력, 영화, 산업, 자본 등 수많은 것들이 맥락 없이 뒤섞인 1969년의 할리우드를, 타란티노는 이러한 방식으로 재현하려 한다.
여기서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가 벌어진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재미없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가 재미없다니, 그것이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인가 싶지만, 이 영화는 정말로 재미없다. 퇴물로 전락한 서부영화배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이미 예견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타란티노가 맨슨 패밀리의 살인사건을 다룬다고 했을 때부터 의심했던 묘사들이 (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등장할 때의 실망감 때문일 수도 있다. 영화의 초반부, 한 때 퀄리티 있는 서부극과 각종 액션 영화에 출연했던 릭은 영화계의 큰손인 슈워즈(알 파치노)를 만난다. 둘은 테이블에 앉아 술을 홀짝이고 담배를 태우며 대화를 나눈다. 슈워즈는 릭이 출연한 재밌고 성공적인 영화들을 이야기하며 릭의 커리어를 칭찬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카메라는 2인 대화 장면의 기본 규칙과도 같은 180도 가상선을 깬다. 그때부터 슈워즈는 퇴물이 된 릭이 TV 드라마에서 변변치 못한 악역만 연기하다 커리어가 몰락할 것이라 이야기한다. 슈워즈의 ‘뼈 때리기’에 된통 당한 릭은 주차장으로 나와 눈물을 흘린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이 시점부터 릭의 커리어의 운명과 함께한다. 재기와 몰락의 갈림길에 서 있는 퇴물 배우는 어떻게 다시 할리우드의 스타가 될 수 있는가? 무맥락에 시대에서 사람들에게 폭력을 교육하는 TV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는, 잘해봐야 남이 써준 가짜를 연기할 뿐이라고 이야기되는 배우는 어떤 존재인가?
릭 달튼이 주연을 맡았던 극 중 극 <바운티 로>의 몇 장면과 촬영장 인터뷰가 등장하는 오프닝 시퀀스가 지나가고, 클로즈업된 어떤 그림의 입 부분이 등장한다. 카메라가 줌 아웃하면서 그 입은 릭의 집 주차장에 놓인 릭의 그림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그 장면이 릭의 자동차 안에서 보이는 장면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영화에 이러한 자동차 뒷좌석에 놓인 카메라의 시점 쇼트가 상당히 많이 등장한다. 릭, 클리프, 샤론 세 인물은 정말 끊임없이 자동차를 타고 이동한다. 이 영화의 자동차 쇼트들은 릭의 집, 콜롬비아나 폭스 등의 스튜디오, 샤론과 폴란스키의 집, 히피(맨슨 패밀리)가 차지한 오래된 영화 촬영장 등을 연결한다. 이러한 연결들은 제각기 진행되는 세 인물의 이야기를 어떻게든 ‘영화’와 ‘할리우드’라는 두 키워드에 속하게 만든다. 타란티노는 1969년이라는 무맥락의 시대에서 영화라는 맥락만을 건져 올리려 한다. 언제나 B급 영화를 지향하고, B급 영화를 자양분 삼아 온 타란타노는 “영화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던가 “영화가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와 같은 거창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도리어 영화가 이런 사람들에 의해 계속 어디선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이야기하려는 것에 가깝다. 이 영화에서 공간을 연결하는 매체가 자동차라면, 자동차로 갈 수 없는 공간인 이탈리아를 연결하기 위해서는 전화가 등장한다. 이 장면은 161분의 긴 러닝타임을 통틀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화가 등장하는 장면이다. 슈워즈의 전화를 통해 할리우드와 이탈리아 ‘스파게티 웨스턴’이 연결되고, 릭 달튼이 이탈리아로 진출하게 된다. 할리우드의 퇴물은 이탈리아에서 재기하고 다시 돌아온다.
그가 이탈리아에서 돌아오자마자 벌어지는 것이 맨슨 패밀리의 습격이다. 맨슨 패밀리의 목표는 폴란스키의 집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끌고 온 자동차 소음에 짜증이 난 릭이 이들에게 고함을 지르자, 이들은 타깃을 릭의 집으로 변경한다. 그 집에는 마침 이탈리아에서 함께 돌아온 클리프와 릭의 아내 프란체스카가 함께 있었고, 맨슨 패밀리 일당은 클리프와 그의 개, 그리고 릭이 창고에서 들고 나온 영화 소품인 화염방사기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부상을 입은 클리프는 병원으로 실려가고, 릭은 갑작스러운 소동으로 인해 이웃의 안부를 물어보러 나온 샤론의 동거인 제이(에밀 허쉬)에 의해 샤론의 집으로 초대된다. 여기서 영화는 끝난다. 이 장면은 ‘샤론 테이트 살인사건’에 대한 타란티노의 영화적 복수일까? 갑작스레 등장하는, 엄청나게 폭력적이지만 무미건조한 살인이 지나간 이후에야 이웃인 릭과 샤론이 만나게 된다. 이들은 직접 만나 인사를 나누기 전 샤론의 집 대문에 설치된 인터폰으로 먼저 대화를 나눈다. 인터폰이 전화는 아니지만, 이는 슈워즈가 이탈리아에 전화했던 것처럼 릭을 다른 세계와 연결한다. 그곳은 릭이 바라던 세계적인 거장 감독과 연결 가능한 세계이다. 릭과 샤론-폴란스키는 이웃이지만, 릭의 집이 조금 더 낮은 지대에 있기에 이들의 집은 갈림길과 높이를 통해 구분된다. 슈워즈에 의해 퇴물임을 인증받았던 릭은 맨슨 패밀리의 습격을 발판 삼아 인맥을 통한 재기를 꿈꾼다. 그 과정에서 스턴트 더블인 클리프는 병원으로 실려가 사라지고, 릭은 영화 소품이었던 화염방사기를 통해 습격자를 살해한다. 그는 영화 촬영을 통해 배운 대로 사람을 죽였고, 그것을 재기의 발판으로 삼으려 한다.
타란티노의 1969년 할리우드 스케치는 이렇게 끝난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시대적 무맥락과 그것의 폭력 안에서도 영화는 제작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는 샤론 테이트가 극장을 찾아 자신의 출연작을 관람하고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는 장면에서 보이듯, 어쨌든 관객들을 웃게 하고 환호하게 한다. 타란티노의 ‘영화’는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다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타란티노의 ‘관객’ 또한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무엇이든 수용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인다. ‘원스 어폰 어 타임…’이라는 제목은 타란티노가 애정 하는 작품들이 제작된 1969년에도, 50년이 지난 지금에도 영화들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 보인다. 그간 타란티노가 각본을 쓰거나 연출했던 영화들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 이 지점이다. 자신의 영화를 다른 영화들로 가득 채움으로써 ‘영화’라는 형식을 가지고 유희를 즐겼던 타란티노는 이번 영화에서는 단순히 ‘영화는 만들어진다’라는 명제를 보여주고만 있다. 여기에는 유희도 사유도 없다. 단지 타란티노에게나, 그의 영화를 봐온 관객에게나 당연한 이야기를 러닝타임 내내 반복하고 있다. 이번 영화가 재미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타란티노는 딱히 증명할 필요가 없는 명제를 증명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