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クリーピー 偽りの隣人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출연: 니시지마 히데토시, 다케우치 유코, 카가와 테루유키
제작연도: 2016
<크리피: 일가족 연쇄 실종 사건>은 2010년대의 가장 무서운 영화 중 한편이다. 전직 형사 출신의 범죄심리학 교수인 다카쿠라 부부가 미제사건인 6년 전의 일가족 실종 사건을 조사하던 중, 이웃집에 사는 니시노가 범인과 유사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고, 니시노의 딸 미오가 "그 남자 우리 아빠 아니에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의심은 확신으로 기운다.
<크리피>가 품고 있는 함의는 다양하면서도 간결해보인다. 좁게는 옆집에 사는 이웃이 누구인지도 알지 못하는 원자화된 사회에 대한 비판과 공포, 넓게는 그러한 사회 속에서 발생하는 인간소외와 사회적 동물로써 기능하지 못하는 인간의 말로에 대해 다룬다고 할 수 있다. 니시노 심신을 미약하게 만드는 약물을 피해자에게 주입하고, 이들을 가스라이팅하여 자신의 수하처럼 부린다. 동시에 니시노와 미오는 가족으로 불리고, 그처럼 행동한다. 미오가 니시노를 부르는 호칭이 '아저씨'일 뿐, 밖에서 보기엔 이들은 가족이다. 그것은 니시노가 6년 동안 일가족 실종 사건을 감추는 방법이자, 그가 지닌 여러 욕망 중 하나일 것이다. 영화 후반부, 니시노는 집 지하실에 감금된 다카쿠라 부부와 미오, 그리고 강아지 막스를 데리고 타지로 향한다. 다른 거처로 향하는 이들의 자동차는 분명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이는 "16번 도로 타고 쭉 올라가주세요"라는 니시노의 대사를 통해 명확히 드러난다. 하지만 자동차 정면에서 촬영된 이들의 모습은 도로가 아니라 초현실적인 시공을 넘나들고 있는 것처럼 묘사되낟. 자동차의 주변엔 안개로 보이는 증기가 가득하고, 도로라면 응당 보여야 할 표지판이나 가로등, 신호등, 가드레일 등이 보이지 않는다. 가로등이 등장하는 숏은 자동차를 촬영하는 숏과는 분리된, 누구의 시점도 아닌 시점숏들 뿐이다.
이들은 어디로 향하는가? 어느 건물 앞에 멈춰선 자동차에서 나온 니시노는 옥상에 올라가 다음 타겟으로 삼을 집을 찾는다. 초점없는 얼굴의 야스코는 강아지를 쓰다듬고 있고, 미오는 만화책을 보고 있으며, 다카쿠라는 차에 수갑으로 묶여 있다. 탐색을 마치고 내려온 니시노는 모두가 공범인 것인 양 자신이 타겟으로 설정한 집을 어떻게 공략할 지 계획을 늘어 놓는다. 다시 출발하기 전 니시노는 어디엔가 숨겨뒀던 총으로 강아지 막스를 쏘려 하지만, 그 일을 다카쿠라에게 맡긴다. 마치 신뢰를 증명하라는 듯한 제스처처럼 총을 쥐어준 니시노는 고스란히 그 총에 맞아 숨을 거둔다. 미오는 니시노의 시신에 대고 꼴 좋다며 저주를 퍼붓고, 야스코는 어느 순간 정신이 돌아온 듯 다카쿠라를 끌어안고 괴성을 지르기 시작한다.
이들이 도착한 공간은 어디인가? 지옥 혹은 저승으로 가는 길을 뚫고 어딘가에 도착한듯한 이들은 죽고, 죽이고, 저주하고, 절규한다. 어디가 성기게 묘사된 니시노가 피해자들을 '길들이는' 장면들은 이들이 니시노의 공범인 것이 조금이라도 맞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들은 실제로 어느 정도 공범이다. 규격화된 예의범절은 이웃을 차단하고, 규격화된 관계 밖의 것을 배격한다. 일본의 와(和)문화가 만들어낸 일본 공동체 규격 밖의 이들은 공동체 안에 섞일 수 없다. 니시노는 그 규격 밖의 인물임과 동시에 규격의 사용자이다. 다카쿠라 부부는 규격에 융화되어 그것을 공기처럼 여긴다. 니시노와 다카쿠라 사이에 위치한 미오는 니시노의 규격과 다카쿠라의 규격을 수용함과 동시에 내친다. 이들은 공동체의 미로를 통과해 지옥에 당도했다. 니시노가 죽음으로써 남은 이들은 규격 없는 이들이 된다. 저주와 절규는 이제 틀에 갇히지 않고 멀리 멀리 퍼져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영화가 그 공간에서 끝나는 것은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