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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여름 Apr 06. 2022

자꾸 당신의 사정이 궁금해진다

나는 구질구질한 인간이다. 인연이 끊긴 후에도 끊임없이 상대의 소식이 궁금하다. 잘 지내고 있으면 배가 아프고, 못 지내고 있으면 마음이 아프다. 반면에 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절대 알려주고 싶지 않은 못된 심보가 울컥 올라온다. 어떤 소식을 알게 되든 기분이 나쁜 건 매한가지지만 도무지 호기심을 참을 수가 없다. 그래서 주변인에게 에둘러 묻든, 몰래 SNS를 염탐하든 갖가지 방법으로 소식을 알아본다. 그중에서도 특히 궁금한 건 바로 전직장의 사정이다.


 안타깝게도 A 출판사에서는 내게 소식을 전해 줄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대화를 트고 지내던 사람들은 나보다도 먼저 퇴사해 버렸고, 남아서 내가 맡았던 책을 이어받은 사람은 입사한 지 반년도 안 된 분이었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 원고를 그분에게 떠넘기고 도망치듯 회사를 나왔기 때문에 염치없이 다시 연락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또다시 염탐이었다. 아침마다 서점 사이트에 내가 맡았던 책을 검색해 본다. 퇴사한 지 꽤 지났는데도 아직 책이 나오지 않은 것을 보니 예상했던 부분이 계속 문제가 되는 게 아닐까 싶다.

 그 회사에서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책은 재직 내내 굉장히 애정을 쏟았던 원고였다. 저자와도 합이 잘 맞았고, 편집과 디자인도 잘 진행되고 있었다. 원고상 문제가 있었지만 회사에서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없어서 담당자인 내 선에서 적당히 마무리하고 출간을 할 생각이었다. 업무에서 ‘적당히’라는 게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지 안다. 글로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적당히’ 하는 선에서 최선을 다했다. 원래대로라면 그렇게 빨리 퇴사를 할 생각은 없었다. 그 변수만 없었다면, 정말이다.


 입사한 지 일 년이 되기도 전에 기존에 있던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줄줄이 퇴사했다. 이 회사는 안타깝게도 업력에 비해 출간하는 도서가 안정적이지 않았다. 일개 사원이 회사의 경영에 대해 논하는 게 우습긴 하지만 잦은 이직으로 여러 출판사를 돌아다녀 본 바, 정말 안타깝게도 망하는 회사에는 이유가 있다는 걸 금방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출판사를 확실하게 먹여살리는 책이 없다면 편집자는 매달 새로운 책을 출간해야 한다. 기획이 아니라 출간이다. 기획은 매일 해야 하고, 신간은 적어도 2주에 한 권씩 출간해야 한다. 물론 책 한 권이 나오는 데에 ‘집필’부터 시작한다고 했을 때 2주 만에 책을 뚝딱 만들 수는 없으므로 늘상 편집할 원고를 쥐고 있어야 한다.

 문제는 A 출판사가 출간하는 도서의 결이었다. 대표님의 목표는 ‘뭐가 됐든 다른 출판사가 만든 것과 같은 베스트셀러’를 내는 것이었다. 나는 그 ‘뭐’가 중요했다. 기존에 출판사의 색깔을 보여주는 책이 있었을 텐데 나를 뽑으면서 대표님은 ‘새로운 뭐’를 만들고 싶어 했다. 이전 경력상 대표님이 원하는 책을 편집할 수는 있었지만 문제는 회사가 서포트할 수 있는지였다. 금전적으로도 인력상으로도 그런 책을 낼 여력이 되지 않는데 대표와 팀장은 무조건 나를 밀어부쳤다.


 그들은 결국 나를 재우쳐 안 될 일을 되게 만들었다. 다행히 좋은 작가님을 섭외해서 원고의 퀄리티가 나쁘지 않았다. 능력 좋은 외주 디자이너까지 붙어서 어찌저찌 안 될 걸 될 만하게 만들고 있었다. 보통은 원고를 서로 바꿔서 교정을 확인해 줄 사람이 필요한데 회사는 그럴 여건이 되지 않았다. 온전히 나 혼자 책임지고 편집을 해야 하고, 가장 마지막에만 팀장님이 확인해 주기로 했다.

 기존에 있던 다른 편집자가 나가면서 편집팀의 규모가 줄어들자 결국 새로운 편집자를 구하게 됐다. 당연히 나랑 같은 직급 혹은 더 아래의 직급을 뽑을 줄 알았다. 회사에는 나를 제외하고 전부 부장이었고, 실무를 할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뽑힌 사람은, 짜잔. 또다시 부장이었다. 그분의 연봉은 모르지만, 상식선에서 보면 그 한 사람의 월급으로 사원 둘 정도를 더 뽑을 수 있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팀장님과 나 사이에 낀 부장님은 곧바로 실무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내가 편집하는 책에 업무 지시를 하는 사람이 하나에서 둘로 늘었다.

 두 사람은 마치 쌍두사 같았다. 하나의 업무에 대한 지시가 달라서 어느 쪽을 따라야 할지 판단할 수 없었다. 최종 책임자인 팀장님의 지시만 따르자니 실제로 내 업무를 계속 확인해 주는 사람은 부장님이어서 끊임없이 내가 편집한 내용을 바꿔댔다. 팀장님과 협의한 내용이라고 해도 면전에서 이야기할 때만 알겠다고 할 뿐, 다음날이 되면 수정 도돌이표가 시작됐다.

 꼼꼼하고 성격도 좋은 부장님이 인간적으로 싫지는 않았지만 도무지 업무로는 손발이 맞지 않았다. 직접 고쳐도 될 것들을 하나하나 고쳐달라고 코멘트를 달았다. 이럴 바엔 부장님이 먼저 확인을 한 후에 내가 보겠다고 했지만, 담당자의 판단이 우선이라며 한사코 업무 프로세스를 바꾸기를 거절했다. 결국 ‘담당자-부장-담당자’ 순서로 편집을 하며 일정이 점차 늘어졌다. 새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책을 출간하고 싶어했던 저자에게 나 혼자 연신 사과를 해야 했다. 팀장님은 도대체 뭐가 문제길래 출간이 늦어지냐고 물었다.


 결국 부장님에게 털어놓았다. 이 원고에서 계속 지적하신 부분은 현재 수정이 불가능하고, 그럼에도 출간에는 문제 없게 편집을 해 둔 상태라 이대로 진행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부장님은 그건 안다면서도 끝까지 양보할 수 없는 게 있다고 했다. 우리는 같은 것을 보며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정 그대로 하고 싶으면 다시 원고 단계에서 전부 수정해서 고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지만 그마저 거절당했다. 눈앞이 캄캄했다. 같은 언어로 소통하고 있는 게 맞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비겁하지만 나는 현실과 타협하는 쪽을 택했다. 부장님이 원하는 대로 다 하되, 이 책만 출간하면 회사를 뜨기로 결심했다. 시리즈물이라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원고도 편집해야 했기 때문에 이대로라면 영원히 고통받을 게 뻔했다. 부장님이 직접 담당하시면 적어도 이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거라고 믿기로 했다.


 편집 막바지에 이르러서 사직서를 내밀었다. 팀장님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문제가 뭐냐고 했지만 이걸 전부 설명하자니 입이 아팠다. 여태 말해 온 문제이기도 했고, 계속해서 팀장님이 무시하고 진행한 부분이기도 했다. 어차피 바뀌지 않을 것을 알기에 누굴 원망할 기운도 없었다. 그저 나는 침몰할 게 뻔한 배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구명조끼를 입고 빠져나가고 싶을 뿐이었다. 퇴사일이 정해지고 다행히 일에 속도가 붙었다. 이제 정말 인쇄만을 남겨둔 시점이었다. 타이밍만 맞으면 감리까지도 보고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들떠 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인쇄 직전. 마지막 교정을 보고 인쇄를 넘기기로 합의를 했는데, 부장님이 나에게 넘긴 파일에는 주석이 300개쯤 달려 있었다. 파일을 열어보고 눈을 의심했다. 이전에 800개, 700개씩 주석이 달려 있을 때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다. 마지막인 걸 알면서도 이러는 건가? 출간할 생각이 없나? 출간은 할 거지만 실무에서 삽질은 나 혼자 다 하라는 건가?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이건 정말 아니다 싶어서 빠르게 인수인계서를 정리했다. 팀장님은 왜 아직도 이렇게 수정이 많은지 물었지만 할 말이 없었다. 내 선에서는 이미 정리가 끝났는데 계속해서 부장님이 수정을 요청하고 있어서 출간이 밀린다고 이를 수는 없었다.


 끝내 내가 나가는 날까지 인쇄를 넘기지 못했다. 어디든 퇴사를 하면서 편집하던 책을 전부 마무리하고 나왔는데, 처음으로 미완성인 책을 남겨두고 왔다. 담당자는 부장님으로 바뀌었다. 원하던 방향이 있었을 테니 직접 편집을 하면 진행이 빨라지겠지 싶었다. 하지만 내가 퇴사하고도 3주가 지나도록 서점사에는 그 책이 검색되지 않는다. 혹시나 내가 나간 후로 책 제목이 바뀐 건가 싶어서 A  출판사 사이트에 들어가서 신간이 있는지 확인했다.

 놀랍게도 내가 퇴사한 후로 시간이 멈춘 듯 새로 출간한 책이 한 권도 등록되어 있지 않았다. 매달 출간을 해야 먹고살 수 있다던 대표님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침몰하는 배에서 타이밍 좋게 뛰어내린 사람이었을까. 애정을 쏟은 원고가 일정보다 한참 밀린 지금까지도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저자도, 나도 기대가 큰 책이었는데 내가 괜히 그분을 섭외하는 바람에 고생만 하고 결과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자꾸 그들의 사정이 궁금해진다. 어떤 문제가 있어서 아직도 출간을 못 한 걸까. 내가 편집하는 동안 엄청난 문제가 있었던 걸 이제와서 발견하는 바람에 출간이 엎어진 건 아닌지 걱정된다. 남아있는 담당자에게도, 어쩌다 이 늪에 빠진 저자에게도 물어볼 면목이 없어서 오늘도 몰래 전직장의 사정을 염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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