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행복' 해지고 싶은 마음. 어떻게 살아야 행복해지나요
한민족문화 대백과 사전에 따르면 이민 (Migration) 이란, '외국에서 영구적이거나 오랜 기간 살 의도로 국가의 경계를 넘는 인구이동'을 뜻한다.
오래 살 목적으로 해외를 와 벌써 9년 차가 되어가는 지금, '그럼 나는 이민 와서 행복한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한 때, '탈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한 때가 있었듯,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 해외살이는 어떨까? 생각해 본다. 이민 9년 차, 대학졸업과 동시에 아일랜드로 이민을 온 나에게도 종종 지인들이 진지하게 묻곤 한다.
'그래서 아일랜드 생활은 어때? 한국이랑 어떻게 달라? 그럼 지금 행복해?'
20대 초반이었던 9년 전 나는, 비행기를 타고 아일랜드로 떠나며 '유로피안 드림' 까지는 아니지만 막연히 '유럽생활에 대한 환상과 행복에 대할 갈망'이 있었다. 이민의 목표가 있었더라면, 그저 '행복'을 찾아서였달까.
이 이야기는 9년 동안 행복해지기 위해, 혹은 편안하게 살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내가 아일랜드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느낀, '행복'에 대해 이야기이다.
'행복'은 어떤 모습을 한 걸까?
9년 내내 무려 '행복해지기'를 최우선 인생과제로 삼으며 누구보다도 행복해지려 노력했다. 그런데 이 행복이라는 것이 참 어렵더라.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갈망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말 그대로 취향을 매우 탄다. 돈이 많고, 시간이 많고, 여행을 다니며 가족 누구도 아프지 않은 상태가 최근 다수가 공감하는 행복한 상황일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얼마가 있어야 행복할지에 대한 기준 (돈에 대한 기준) 이 저마다 다르고, 얼마만큼의 시간 (일 4시간 노동? 아니면, 야근 없는 9-5pm 근무?) 이 행복을 담보할 지도 저마다 기준이 다르다. '가족의 건강'이라는 것도, 누군가는 노령의 부모님 모두 병원이나 요양원에 모시지 않고 집에서 생활하시는 것을 가족의 건강으로 여기는가 하면, 또 누군가는 입원할 정도로 건강이 나쁘시지 않더라도, 나이가 들어가는 부모님에게 정기적인 돌봄 노동과 육체적 가사노동, 감정적 노동을 제공해야 할 때 부모님이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생긴 모양이나 살아온 환경이 다 제각각이어서, 행복의 기준 또한 매우 제각각이다. 그래서 행복은 유튜브 알고리즘처럼, 내 취향, 선호, 가치관에 맞춰 그 기준도 계속 변하고, 이상적인 행복의 모습들도 계속 바뀐다.
20대 초반 아일랜드에서 가깟으로 안 되는 영어를 이겨가며, 첫 직장을 얻고, 이후 이직을 여러 번 하며, 연봉을 차곡차곡 올렸다. 그리고 악착같이 돈을 모아 아일랜드 명문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 모든 것을 경험하기 전엔 이런 생각을 했다. 좋은 대학/대학원 나와 커리어를 만들고, 억대 연봉을 벌게 되면 행복하겠지? 난 더 이상 식당에서도 카페에서도, 가격표를 보지 않아도 되고, 여행 다니면서 최저가 숙소검색을 하지 않아도 되니, 정말 행복하겠지? 세월이 흘러, 억대까지는 못 갔지만, 어느 정도 편안한 정도의 월급을 받고, 주변에 명문 대학을 나와 억대 연봉을 버는 전문직 노동자들을 지인으로 두게 되었다. (예컨대, 약사, 치과의사, 개발자 등) 그리고 그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마주했다. 대다수가 IT 직종과 의료 전문직 노동자였던 그들은 나에게 돈을 많이 벌어도 돈 = 행복 은 아니라는 것을 몸소 보여 주었다. 그들은 모두 돈을 많이 벌 수밖에 없는 '이유 (생명을 다루거나, 맡은 업무의 결정권이 가지고 있는 무게, 안 좋은 결정을 내렸을 때의 사업 전반에 미치는 피해)'와 '어마무지한 책임감, 그에 따르는 스트레스'로 고통받는다는 큰 가르침을 주었다. 특히, 코로나가 터지며, 의료인 지인들은 만나는 족족 커리어 전환을 해야 한다고 눈에 불을 켜고 말했다. 그리고, 코로나 이후, IT가 불황을 겪으며 다수는 매일 아침 혹여나 받을지 모르는 해고 메일에 불안과 스트레스가 높아져간다.
업무 스트레스가 크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풀고 행복해지기 위해, 더 비싼 위스키를 마시고, 더 비싼 미슐랭 레스토랑을 갔지만, 그들이 가장 행복해 보이던 때는 그저, 쳐내야 할 업무가 없는 조용한 주말, 회사 안 가도 되는 공휴일이었다. 그때 나는 그들에게 'ㅅㅂ 비용'이라는 한국단어를 알려주었다.
마지막으로, 커리어에 이상한 동경심이 있었던 나는 , 유명 대기업으로 이직하여, 반짝 우쭐했지만, 그 또한 모두 거품이라는 것을 직장생활 내내 몸소 느끼며, 나는 돈보다는 마음의 평화가 우선이라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됐다. 그리고 1년을 채우지 못하고 건강상의 이유로 퇴사를 했다. 결국, 이 또한 내가 행복해지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9년간 행복을 찾아 떠난 나의 이민생활은 결국, 돌고 돌아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라는 고민에 닿았다. 그리고 얻은 깨달음은. '행복은 결국 나를 얼마나 잘 아는가'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회사라는 울타리와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이 없기에 오는 불안감과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프리랜서로 살아가며 매일 아침 강아지와 보내는 산책시간, 취미로 시작한 이민자 관련 인권활동, 햇살 좋은 날의 등산,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나누는 이야기가 나에겐 행복이고, 돈 한 푼 들지 않아도 일상이 그렇게 행복으로 채워져간다. 비싼 위스키와 저녁식사, 여행을 다니던 그때보다 지금이 행복한 건, 마음이 편안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9년의 고민 끝에 조금은 더 뚜렷해졌기 때문이고 행복에 대한 나만의 취향이 생겼기 때문이다.
[비교]가 재앙을 부르더라. 내가 가장 행복하지 않았던 시간은 남과 비교하며 내가 뒤쳐져 있다고 생각하던, 자기 비하의 시간이었다. 더 이상 유튜브의 부자들, 인스타그램의 게시글들에 내 행복의 기준을 빼앗기지 말자. 매일매일 내가 좋아하는 것들, 행복했던 순간들을 일기장에 기록하고, 그 순간들을 늘려가는 삶, 나만의 행복 취향을 만들어가는 작업을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