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 1
중요한 순간은 창립 후 5년째 되는 해에 찾아왔다. 5년 전 그해 여름은 유난히 길고 뜨거웠다. 바깥의 더위도 견디기 어려웠지만 회사 내부는 더욱 혹독했다. 그동안 자체 개발해 온 제품인 넵투와 넵포머의 개발비가 당초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이 들어가고 있었다. 결과 없이 제품 개발 기간이 길어질수록 직원들의 얼굴엔 피로가 가득했고, 나 역시 매일 증가하는 막대한 비용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회사 자금은 바닥을 드러냈고 매일 돈을 빌리러 다녀야만 했다. 매일 고민하고 경영지원팀장과 조용한 곳에서 머리를 맞대고 논의했다.
“사장님. 지금처럼 수입 없이 계속 비용이 나가면 이제 버티지 못할 겁니다. 하루빨리 자금을 조달하고 새로운 제품들을 수주하여 매출로 연결시켜야 합니다.”
경영지원팀장 최영진의 목소리는 언제나 차가운 현실로 다가왔다.
“사장님, 드디어 좋은 기회가 온 듯합니다. JS전자에서
저희가 개발 중인 넵투와 넵포머에 관심이 있다고 직접 제안서를 가지고 오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영업팀장 이준혁이 노크도 없이 들어와 소리쳤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치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그야말로 절실했던 순간에 찾아온 희소식이었다. 자그마치 5년이다. 지금까지 오로지 개발 비용만 투입되었고, 구체적인 판매 계획조차 불투명했던 상황에서 마침내 고객 반응이 나왔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우리를 찾아보고, 또 더 알아보기 위해서 우리를 부른 것이다. 나는 곧바로 기술팀장 서민우와 영업팀장 이준혁을 불러 그 소식을 전했다. 서민우는 평소 매우 냉정했지만, 이번만큼은 표정에 강한 흥분이 감돌았다.
“JS전자 같은 대기업에서 저희 제품을 찾는다니 정말 좋은 기회입니다. 그만큼 준비가 완벽해야 하니 미팅 전까지 기술적으로 철저히 대비하겠습니다.”
이준혁 팀장 역시 긴장한 얼굴이었다.
“제가 책임지고 JS전자와 긴밀히 소통하면서 세일즈 프로세스를 확실하게 리드하겠습니다. 잘 성공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나는 기획팀에 긴급히 회의를 소집하고 고객의 요구 사항을 명확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고객이 원하는 핵심요소는 두 가지 큰 맥락의 요건이었다. 제조공장 설비에서 발생하는 모든 데이터의 수집 및 체계적인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것과 설비 상태의 실시간 모니터링과 분석이 가능한 시스템 구축이었다.
“서 팀장. 우리가 지금까지 준비했던 핵심이 이 분야이니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부분이죠?”
내 질문에 서민우 팀장은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넵투와 넵포머가 정확히 그 부분을 타깃으로 설계되고 개발된 제품입니다. 실제 데이터 연결과 분석 성능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자신합니다. 안정적인 시연이 될 수 있도록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드디어 제안 당일이 왔다. 아침 일찍 나는 깔끔한 정장을 챙겨 입었다. 영업팀장 이준혁은 긴장된 듯 팽팽하게 넥타이를 매고, 기술팀장 서민우는 깔끔한 차림에 노트북 가방을 어깨에 걸쳤다. 우리가 타고 간 차 안의 긴장된 분위기는 더운 날씨에 불구하고 공기마저 얼려 버릴 것 같았다.
“오늘은 정말 중요합니다. 이번 제안이 회사의 생사를 좌우할 수 있을 만큼 큰 일이에요. 대기업이라고 너무 긴장하지 말고 평소처럼만 합시다. 사실 저도 많이 긴장됩니다.”
내 말을 듣자 이준혁 팀장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네, 사장님. 걱정 마십시오. 제가 고객님들 앞에선 또 얼마나 잘하는데요.”
서민우 팀장은 아무 말 없이 미소만 지었다. 마침내 JS전자 본사 회의실에 도착했다. 대기업 본사의 압도적인 분위기에 우리 셋은 무의식적으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고객사의 담당자들과 임원들은 이미 자리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내가 먼저 고객들에게 우리의 회사와 제품에 대한 소개를 시작했다.
“저희는 제조현장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가장 잘 이해하는 회사입니다. 직접 개발한 분석 제품인 ‘넵투’와 데이터 수집 제품 ‘넵포머’를 통해 고객사 제조현장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분석하여 제조 공정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가지고 있는 기술이 JS전자의 제조 경쟁력 향상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다음은 기술팀장 서민우의 순서였다. 그가 미리 준비한 기술적인 내용을 하나씩 꼼꼼하게 설명해 나갔다. 그는 자신감 넘치면서도 침착하게 고객들이 원하는 두 가지 큰 틀의 요구 사항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중간중간 질문에 대한 답을 자신 있게 해 나갔다.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할 때는 고객들의 눈빛이 점점 더 진지해졌다. 마지막으로 영업팀장 이준혁이 상기된 얼굴로 고객들에게 제안 조건과 예상 일정을 명확히 설명하고 제안을 마쳤다. 제안 발표가 끝난 후, 고객사의 담당 임원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일단 오늘 준비된 내용은 충분히 이해했고, 기술력도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내부 검토를 충분히 거친 후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정중히 인사를 한 후 회의실을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무더운 여름 바람이 나를 덮쳤다. 그러나 이 순간만큼은 그 바람조차 시원하게 느껴졌다. 회사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준혁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사장님, 이번엔 정말... 될 것 같습니다.”
서민우 역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나는 그런 직원들의 모습을 보며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버틴 5년의 시간이 헛되지 않을 겁니다. 적어도 우리를 이해하는 고객이 생겼고, 어쩌면 우리 제품이 팔릴 수도 있는 거니까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회사는 여전히 위태롭고,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지만, 그때 그 순간만큼은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조금씩 느껴졌다. 넵투와 넵포머는 그렇게 간절함 속에서 첫 고객의 문을 두드렸다. 이 제안이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는 아직 모르지만, 이제 시작이었다. 우리가 꿈꾸던 회사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일이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