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 4
“그런데 이번에 구축하는 제품이 기존 논의 된 설비뿐만 아니라, 새로운 도입되는 설비들도 다 포함해서 관리 가능하신 거죠?”
이준혁 팀장이 잠깐 당황한 듯 나를 쳐다봤다. 나는 급히 개발팀장 서민우를 바라보았다. 서 팀장 역시 심각한 표정이었다.
"그 부분은 저희가 처음에 얘기했던 범위를 조금 벗어나 있는 것 같은데, 일단 확인이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서민우 팀장이 신중하게 말을 꺼냈다. 하지만 고객 측 담당자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아, 그렇습니까? 전 당연히 포함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이미 내부에서는 그렇게 정리가 되어 있었던 것 같아서요."
결국 그 미팅은 확실한 결론 없이 종료되었고, 회사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모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오후,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회의실 공기는 무거웠다. 서민우 팀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 고객이 추가한 요구 사항은 처음 우리가 제안했던 범위에서 상당히 벗어납니다. 이런 규모라면 절대 기존 일정 내에 구현하지 못합니다. 범위에 대해서 JS전자 측과 다시 얘기를 해 봐야 합니다.”
그러자 이준혁 팀장이 억울한 표정으로 즉각 반발했다.
“아니, 서 팀장님. 고객과 사전에 요구 사항 협의를 기술적으로 면밀히 해 주셨어야죠. 전 당연히 서 팀장님이 그 정도까지는 확인했을 거라고 믿고 있었는데요. 그건 개발팀에서 책임지고 확인해야 하는 부분 아닌가요?”
서민우의 표정이 굳었다.
“이 팀장님, 요구 사항 정리는 영업팀과 고객 사이에서 명확히 이루어져야 하는 겁니다. 지금 와서 그런 식으로 책임을 돌리시면 안 되죠. 어떻게 영업이 그렇게 무책임하게....”
이준혁 팀장 역시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책임을 돌리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기술팀에서 함께했으니 그 정도는 파악하셨을 거라고 당연히 생각한 겁니다. 그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지금 그걸 당연히라고 하시면 어떡합니까! 영업에서 제대로 된 고객의 요구 사항을 기술팀에 전달하지 않으면 우리는 뭐를 근거로 판단을 합니까!”
두 사람의 언성이 점점 높아졌다. 평소 온화한 이준혁 팀장과 냉정한 서민우 팀장이 이렇게까지 부딪히는 일은 흔치 않았다. 내가 급히 두 사람을 진정시켰다.
“잠시만요, 두 분 다 진정하고 들어 보세요. 지금은 서로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닙니다.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가 어렵게 얻어 낸 이 기회가 시작도 하기 전에 위태로워질 수 있습니다. 지금 서로 탓을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조금씩만 양보하고 해결 방법을 함께 찾아봅시다. 문제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해결책에 대해서 논의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그러나 이미 감정이 격앙된 두 사람에게 내 설득은 잘 들리지 않는 듯했다. 잠시 침묵 후, 서민우 팀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지금 이건 분명히 정리해야 합니다. 요구 사항의 범위가 확실히 정해지지 않으면 우리는 절대 납기일을 맞추지 못합니다. 인력을 무작정 늘린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분명한 점은 기존 계획보다 추가 인력이 더 필요하다는 겁니다.”
서민우의 말을 들으며 나는 다시 가슴이 무거워졌다. 추가 인력 투입이 필요하다는 건 결국 비용 증가를 의미했다. 이미 회사의 재정 상태는 팍팍한 상태였고,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은 고스란히 회사 전체에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 뻔했다. 내 표정을 살핀 듯, 서민우 팀장이 덧붙였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려야만 하는 입장을 이해해 주세요. 기존 인력과 예산으로는 절대 안 됩니다. 지금 상태로는 납기일을 맞출 수 없습니다. 향후에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준혁 팀장 역시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역시도 예상하지 못한 추가 요구 사항이라 매우 난감합니다. 고객과 다시 협상을 해야겠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고객 측에서는 이미 이 정도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으니까요.”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결국 나는 두 사람의 의견을 다시 한번 듣고 정리해야 했다.
“좋습니다. 일단 두 분 모두 감정을 추스르시고, 서로 탓하지 말고 협력해서 해결책을 찾는 데 집중합시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내일 다시 모여서 각 팀에서 준비한 구체적인 계획을 바탕으로 다시 논의합시다. 저도 저 나름대로 고민해 보겠습니다. 괜찮겠죠?”
서민우와 이준혁이 서로 어색하게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실을 나오는 나의 마음은 무거웠다. 성공적으로 계약을 이뤄 내 첫 고객을 얻을 것이라는 기쁨은 이미 먼 과거처럼 느껴졌고, 지금 당장 눈앞에 닥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회사는 다시 큰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나는 다시 한번 책임감과 부담감을 뼈저리게 느꼈다. 언제나 사업은 끝없는 문제와 도전의 연속이라는 것을 상기하게 되었다. 우리 회사가 첫 계약을 했다고 기뻐한 것도 잠시, 다시 어두운 터널 속으로 들어선 기분이었다. 내일 다시 열릴 회의에서 이 난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지금까지 이루어 낸 모든 것이 다시 무너질 수도 있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자리에 돌아와 앉으니 긴 한숨만이 조용히 흘러나왔다.
회의실을 나온 후, 내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사무실로 돌아가는 복도는 길지 않았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머릿속에 수많은 걱정이 가득 들어찼다. 지난 미팅에서 봤던 개발팀장 서민우와 영업팀장 이준혁의 언쟁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았다. 두 사람은 평소 업무 스타일이 다르지만 인간적인 관계는 좋았고, 평소에도 자주 서로를 존중하는 편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고객의 요구 사항 문제를 놓고 서로의 책임을 언급하며 언성을 높인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단순히 두 사람의 갈등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더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우리 회사의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이런 상황에서 명확히 드러난 것이다. 창업 후 지금까지, 회사의 성장을 위해 수도 없이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며 왔지만 내부 커뮤니케이션 문제만큼은 언제나 쉽지 않았다. 작은 스타트업일 때는 직원 수도 적고 업무도 명확히 구분되지 않아 자연스럽게 소통이 되었지만, 회사가 점점 커지면서 팀 간, 개인 간 소통의 부재는 점점 더 큰 문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문제를 미뤄온 것이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점점 커져 버렸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