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에서 북한 아저씨들을 만났다.
아저씨들은 북한 정부의 지시에 따라 러시아 카잔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정확히는 동포를 만나러 간다는 말을 반복하셨지만, 그보다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었다.
대신 아저씨들은 내게 더 많은 질문을 건넸다.
남한에서 회사 채용은 어떻게 하냐고, 제주는 어떻게 생겼냐고, 서울 음악을 들려달라고.
나는 외교관도 기자도 아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마치 남한을 대표해 답하는 작은 대사 같았다.
특별히 그때의 시간을 떠올리자면 같은 칸에서 동고동락한 리명석 아저씨와 용화 아저씨가 떠오른다.
기차 안 침대 사이, 조그마한 테이블엔 늘 무언가가 올려져 있었다.
내가 읽던 일본 소설 한 권, 일기를 쓰기 위한 블루투스 키보드,
그리고 아저씨들이 챙겨온 북한산 맥주과자와 땅콩.
어느 밤, 함께 땅콩을 까먹으며 나눈 대화 속에서 리명석 아저씨는 나에게 말했다.
“나중에… 남과 북이 통일되면 말이야, 그땐 신문사에 꼭 글 하나 써라. ‘리명석 아저씨, 어디 계세요?’ 하고.
내가 꼭 그걸 보고 연락할게.”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진짜 꼭이요. 통일되면 제일 먼저 신문에 글 올릴게요."
그 순간이 내게 처음이었다. 누군가와의 우정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단지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나눈 말, 웃음, 헤어지던 순간 아저씨가 흘리시던 눈물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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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약속을 지키는 중이다.
이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나의 사적인 권리이자 책임처럼 느껴진다.
흔히 저작권은 ‘소유의 권리’로만 이해 되곤 한다.
하지만 창작이란 본디 누군가를 떠올리고, 기억하고, 다시 들여다보는 행위에서 출발한다.
그 기억이 글이 되고 그 글이 또 다른 이에게 닿을 때 저작권은 법적 권한의 틀을 넘어선다.
누군가를 기억하고 남기는 일, 그 일에 이름을 붙인다면 어쩌면 그것은 ‘창작’이고 그 결과물에 우리는 ‘저작권’을 붙인다.
저작권은 그래서 존재의 기록을 지킬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타인의 삶을 무단으로 가져오지 않기로 합의한 규칙이자,
누구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삶을 담아낼 수 있다는 선언이다.
여행 에세이를 쓰며 나는 수많은 얼굴을 떠올린다.
복숭아 카샤를 함께 먹던 마샬, 나를 호수로 데려가 준 알리나, 그 모든 이야기의 뒤엔 사람이 있다.
저작권은 결국 우리의 이야기를 지켜주는 것에서 비롯된다.
모든 것을 기록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기억하고 그 감정을 글로 남길 수는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잊지 않기 위해서. 다시 누군가에게 닿기 위해서.
그리고 그 글에 깃든 작은 권리가 우리의 이야기를 지켜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