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를 기다리다가
요즘 일주일에 한 번은 극장에 온다. 매주 금요일 저녁엔 시청역에 내려 따릉이를 타고 흥국화재 건물로 향한다. 주말에 영화를 같이 볼 사람이 있을까 싶어 모임을 주선해 보지만, 반응이 시원찮아 금요일 저녁엔 혼자 영화를 보러 이곳 씨네큐브를 찾는다. 홀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나 같이 영화를 같이 볼 사람이 없어서거나 아니면 혼자 보는 영화를 즐겨서일 것이다.
영화를 보고 서로가 느낀 점을 얘기하며 영화를 복기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영화를 더욱 풍부하게 즐기는 방법이기도 하다. 내 시각과 다른 이의 시각이 다르 듯이 한 영화를 보고도 전혀 다른 관점의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다. 영화를 보고 같이 얘기할 사람들이 없어서 아쉽긴 하지만, 한편으론 혼영의 재미도 솔솔 하기에 아무래도 상관은 없다. 혼영을 보기 시작한 것이 얼마나 됐을까? 성인이 되었을 즈음부터였을까, 시간만 나면 혼자 뻔질나게 극장을 찾았다.
극장에 어두운 암막 안으로 들어서는 낯섦과 설레임이 좋았다. 스크린에 칠흑 같은 공간을 가르고 영사기 빛이 내리쬐면, 모든 것은 사라지고 오로지 투사된 필름 속으로 스며들게 되는 몰입감에 매료되었다.
종로 3가에 트라이 앵글. 피카디리, 단성사, 서울극장.. 그리고 사라져 버린 서울에 수많은 단일 상영관들. 대한, 명화, 대지 등 그 이름들을 요즘 세대들은 알리가 없다. 서울 어느 대로변에서나 볼 수 있던 영화 포스터와 영화관 앞에 옹기종기 모여 기대감에 부푼 마음으로 입장 시간을 기다리던 추억이 고스란하다. 군밤과 번데기, 오징어, 암표장수의 긴밀한 목소리, 추운 겨울 날도 무더운 여름 날도 늘 극장 앞엔 설레임이 있었다.
요즘은 멀티플렉스를 뛰어넘어 OTT가 팬데믹 이후 영화를 즐기는 사람들을 집에다 묶어 놓은 듯하다. 극장을 찾는 인구가 점점 줄고 있는 시대. 적은 비용과 다양한 콘텐츠 그리고 미디어 기기의 발전으로 집에서 봐도 극장에서 보는 퀄리티를 느낄 수 있으니 극장에 굳이 갈 필요를 못 느낀다고들 한다. 그러나 영화관을 찾는 이유는 영화를 영화답게 만드는 분위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같은 영화를 보며 공감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울음소리 또한 영화관 만의 매력 아닌가? 언젠가는 영화관이란 것이 사라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때가 되면 나도 더 이상 영화관을 찾을 기력이 없을지도 모른다. 지팡이를 짚고라도 영화관을 찾아 내 나이보다 오래된 영화 한 편을 감상하는 것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이창>, <시민케인>, <대부>, <퐁네프의 연인들>, <로마의 휴일>, <블레이드 러너>, <아비정전>, <중경삼림>.. 그냥 떠오르는 대로 적어봤다. 아마도 다시 보고 싶은 영화들인 것 같다.
오늘은 <발코니의 여인들>(2025)을 본다. <이사>(1993)를 보려고 했는데 매진이란다. (매진이란 말을 오랜만에 들어본다.) 차선으로 이 영화를 선택했다. 프랑스 영화이고, 포스터부터 남다르다. 재밌을 것 같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상영시간을 기다리는 중이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즐거운 영화관의 공간과 다양한 영화들의 이야기 속에서 머무를 것도 같다. 무엇보다도 영화관을 찾는 시간이 이리 즐거우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