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흰색 트럭(1번째 이야기)
나는 30살이 넘으면서 매년 3개 정도의 새로운 것 혹은 잘 하지 못했던 것을 배워보고자 하는 계획을 세운다. 물론 단순한 계획일 뿐이라서 성공하지 못할때도 많다. 작년의 경우에는 글쓰기를 통해 책 내기(공저), 차를 사고 운전 하기, 수영 배우기 등이었다.
책을 내는 것은 SNS를 통해 그 동안 끄적였던 시(라고 하기에는 좀 민망하다.)들 중에서 한 두개를 공저 프로젝트에 공모했고 운이 좋게 선정되어서 작은 도서가 하나 나왔다. 가명이었지만 내 이름으로 된 글이 종이에 실려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참 큰 행복이었고 감동이었다. 그 뒤로 글쓰기를 좀 더 재미있게 해보고 싶었고 다양한 글쓰기 모임과 지속적인 글쓰기를 위해서 글감을 받아 끄적이는 활동을 했다.
두번째는 수영하기였다. 나는 운동을 정말로 좋아하지 않는다. 땀을 흘리는게 싫었고 '왜 사서 고생하나' 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31살이 되고 32살이 되면서 이제는 운동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빠지던 살이 빠지지 않음을 느꼈고 어깨가 넓은 줄 알았던 나는 좁아진 어깨를 거울에서 마주하고서야 '운동을 해야겠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수영을 배워보고 싶었다. 어렸을때 배우고자 작은 노력들이 있었지만 실패했다. 이제는 생존 수영으로라도 배워두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런닝만큼 늘어난 수영의 인기에 수영장을 등록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그즈음하여 발목을 크게 다쳐서 좋은 핑계거리가 되어버렸다. 실패한 2025년의 과제가 된 수영이다.
세번째는 운전하기였다. 94년생으로 30 초반이 문을 닫아가는 이 나이가 되어서야 이제 차를 샀다. 물론 차를 언제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아직은 통상적으로 적용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나는 조금 늦은 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그동안은 차가 없어서 아쉬운 부분은 딱히 없었다. 여자친구가 있었을때에도 장거리에 서로 살았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서로 만났고 첫 회사는 집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였기에 통근에 큰 무리가 없었다. 아쉬움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부모님이 조금씩 나이들어감이 보이기 시작할 때였다. 그리고 회사에서 차를 운전해야될 일들이 보이기 시작할 때였다.
나는 큰아들이다. 부모님도 오래된 차를 얼마전에 폐차를 하였다. 무려 나보다 1살이나 많은 차량이었다. 잔고장은 있었을지언정 큰 고장은 없이 오래도록 우리 가족의 발이 되어 주었던 흰색 1톤 짜리 트럭이다. 이 트럭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나보다 1살이 많다. 2026년 기준 34살이다. 폐차를 3년전 즘 즉, 내가 30살 즘에 했었으니 자동차는 31살 즘에 사라졌다. 오래도록 함께한 흰색 1톤 트럭, 부모님께서는 농촌에서 과수 농사를 하셨기 때문에 다양한 용도로 필요했던 트럭이었다. 과수를 수확하는 과정에서 필요했을 뿐만아니라 유통, 판매까지 담당한 트럭이다. '유통', '판매'라고 말하니 거창한 말 같지만, 직접 배 상자를 싣고 아파트나 공판장에 부모님과 함께 판매로 따라간 기억이 난다. 정확하게 언제즘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매우 어렸을 적, 나는 트럭에 앉아서 쉬거나 이름 모르는 아파트에 있고(가끔은 내려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부모님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배를 팔았다.(이런 경우는 잦지는 않았고 공판장에 보통 납품을 하였다. 공판장에서 가격이 지나치게 염가인 경우 이렇게 직접 판매를 하셨던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 저학년을 다닐 때면 부모님은 트럭으로 나를 학교까지 데려다 주셨다. 또 데리러 와 주셨다. 학교 정문 앞까지는 올라오지 않으셨다. 학교 정문에서 좀 떨어진 정미소 건물의 차고 주변에 트럭이 있었다. 내가 트럭을 창피해할까봐 학교까지 안올라오셨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저 주차하기가 편해서 거기에 있으셨나 하는 생각도 든다. 진실은 물어보지 않아 모르지만 통학을 함께한 트럭이다. 가끔 외식을 갈 적이면 우리 가족은 부모님, 할머니, 동생 그리고 나 이렇게 5명이다. 그런데 트럭은 운전석을 포함하여 3자리 뿐이었다. 그러면 엄마와 할머니가 자리에 앉고 동생은 엄마 품에 안고 나는 엄마나 할머니의 다리 아래에 공간에 속 들어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다 들어가서 탔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즐거워했던 것은 보통 시내에 목욕을 하러 가거나 짜장면을 먹으러 시내에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트럭의 좌석 아래 다리를 두는 공간은 몸을 움직이기도 사실 힘든 공간이다. 그래도 포근했다. 시끄러울 수도 있었지만 시원했고 밖의 소리는 호기심을 더 자극했을 뿐이다. 할머니가 갑자기 크게 아프게 되고 할머니 자리는 내 자리가 되었고 동생은 여전히 엄마 무릎에 앉아 있거나 내가 있던 그 곳에 있게 되었다.
그런 트럭도 시간이 지나면서 라이트도 깨지고 화물칸의 페인트는 벗겨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