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지식/학문은 '융합'이 아닌 통섭(通涉)/협업의 대상

개념과 통찰-4

by 김덕현

지식/학문/기술의 융합, 그 의미

지식(知識)은 교육, 학습, 숙련 등을 통해 사람이 재활용할 수 있는 정보와 기술 등을 포괄하는 것이다(위키백과). 지식은 어떤 대상에 대하여 배우거나 실천을 통해 알게 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를 가리키며, 사물의 본질과 그 작용원리를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지식의 목적이다(국립국어원 표준대사전). 지식/학문은 탐구 과정 그 자체로, 또는 특정 문제해결에 유용하게 쓰일 때 가치가 있다. 인문학 같은 기초학문은 전자에, 공학/자연과학 같은 응용학문은 후자에 해당한다.


지난 글에서 정리한 것처럼 융합은 (1) 다양한 지식을 연결/통합하는 수렴 과정과 결과물을 보급, 확산하는 발산 과정의 순환이 지속되는 혁신 프로세스(by 미국 NSF), 또는 (2) 참여자들이 지식과 감정을 개방하고 가진 자원과 기량을 연결해서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해 협업하는 프로세스(by 김덕현)이다. 어느 쪽이든, 융합 프로세스는 기본적으로 (1) 지식/기술에서 시작해서 혁신 시스템을 만들고 이를 수요자에게 전달하는 식의 기술주도형(technology push)이거나 반대로 (2) 시장/사회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필요한 제품/서비스나 신기술을 만들어 내는 사회주도형(society pull) 또는 문제해결형이 된다. 2000년대 이후 정부/기업의 융합 정책/전략은 기존 지식/학문/기술을 융합해서 초격차를 만들 신기술을 개발하거나 국가/인류 차원의 난제를 해결할 것을 목표로 한 것이다.


그렇다면 여러 지식/학문을 융합해서 융합 지식/학문을 만드는 목적은 무엇일까, 또 그 결과물은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융합 결과, 본래의 지식/학문이 사라지거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면, 그것은 (화학적) 융합이 아닌 (물리적) 복합에 가깝다. 그러나, 지식/학문 융합 결과, 투입한 지식/학문에 크고 작은 변화가 생길 뿐만 아니라 새로운 지식도 만들어진다고 보면 지식/학문에 대해서는 ‘융합’도 ‘복합’도 모두 적합한 용어라 할 수 없다.


지식/학문은 융합보다는 통섭(通涉)의 대상

‘융합’이란 단어가 국내에서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2002년 미국, 2004년에 EU가 각각 국가 차원에서 발전시킬 미래 기술에 Converging Technology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우리나라는 컨버전스를 ‘수렴(즉, 모이다 또는 모으다)’이 아닌 ‘융합’으로 번역한 것이다. 성균관대 이정모 명예교수는 ‘융합’이란 단어를 사용하게 된 과정과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바 있다(이정모, “인지과학과 학문 간 융합의 원리와 실제”, 한국사회과학, 2010). 기술이나 제품/서비스/산업 등에 ‘융합’을 붙이는 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겠으나 지식/학문, 나아가 인재 교육에 ‘융합’을 붙이는 것은 본의 아닌 오해를 유발할 수 있고 실제 심각한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지식/학문은 융합보다는 통섭(通涉)의 대상으로 인식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각 지식/학문은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독립적으로 발전하지만, 특정 문제해결을 위해 ‘한 곳에 모이면’(: 컨버전스) 새로운 지식을 만들기 위해 서로 소통하고 연결하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지식/학문도 ‘쓸데없는 것’은 없으며, 그 자체로 존재의 의미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특히, 구체적 활용 목적을 정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이론/지식을 탐구하는 것 자체가 본연의 역할인 기초학문이나 순수과학의 정체성을 폄하하거나 훼손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통섭을 특정 지식/학문으로 여타 지식/학문을 통합(統合)한다는 의미의 統攝으로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식/학문 통섭은 바로 학제(적) 접근에 해당

‘지식/학문의 통섭’은 이미 학계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용어인 ‘학제(學) 접근’에 해당한다. 참고로 ‘제()’는 사이(inter)라는 뜻의 한자로 ‘학제간(間)’이라 쓰는 것은 겹말이 된다. 학제 접근은 아래 3가지 유형(‘MIT’)을 포함한다. ‘다학제’는 개별 학문의 독립성을, ‘학제간’은 새로운 지식의 창출을, ‘초학제’는 주어진 문제의 해결에 초점을 둔 것이다. 다만, MIT 모두 ‘개방-연결-협업’이 전제되어야 성과를 낼 수 있다.

多학제(Multi-disciplinary) (예)) 미래형 자동차 교육/연구=자동차+기계+전자/전기+화학

학제間(Inter-disciplinary) (예) ICT+경영, ICT+의료, 토목+건축

超학제(Trans-disciplinary) (예) 초고령화나 세대갈등 해결을 위한 지식 연결.


‘학제 접근’ 즉, ‘지식/학문의 통섭’은 개별 학문/지식의 정체성을 존중하면서 시너지를 내려는 접근이라고 보면 ‘지식/학문 융합’이라는 과도한 목표를 담은 용어가 의도와는 달리 본질을 흐리고 있는 셈이다. 융합 대신 통섭을 쓰거나 상대적으로 명확한 의미를 가진 ‘학제 접근’으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학제 접근과 通涉은 개인이 아닌 팀의 과업

‘융합(형) 인재’로 자주 거론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우리나라의 다산 정약용은 ‘통섭(統攝) 인재’라 할 수 있다. 혼자서 온갖 지식/기술에 통달했으니 말이다. 르네상스 이전에는 한 명의 인재가 여러 분야 지식/학문을 통섭할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오늘날 그런 인재는 만들어지기도 어렵고 실제 바람직한 인재상이라 할 수도 없다. 하나의 학문/지식도 점점 더 깊어지고 있기에 2개 이상의 전문 영역을 이해한다는 것이 실제로는 쉽지 않은 일이고, 대부분의 현실 문제는 한 분야의 지식/학문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인류 차원의 도전 과제(예: 건강/의료, 에너지, 환경, 재난/재해 대응, 갈등해소 등)는 한결같이 온갖 지식/학문을 동원해야 할 정도의 거대 문제이다. 이런 이유로 최재천 교수는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서 넓고 깊게 파라’고 조언한 바 있다. 적어도 현장에서 필요한 인재는 혼자 일하는 ‘융합 인재’ 또는 ‘統攝 인재’가 아니라 함께 일하는 ‘通涉 인재’이다.


넓고 깊게 파는 일은 개인의 과업이 아니라 팀의 과업이다. 혼자서, 또는 특정 분야 전문가만으로 거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적어도 2가지 점에서 잘못된 일이다. 첫째 성공 가능성보다 실패 위험이 더 크고, 둘째 (더 심각한 것은) 실패할 경우, 뒤에 갈 사람들의 의미 있는 도전까지 막거나 방해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혼자서 그런 엄청난 혁신을 이룩한 걸까? 잡스는 ‘혁신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연결하는 것’이고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서 혁신이 일어난다’고 하였다. 아이폰은 ‘최초의 스마트폰’이 아니라 기존 제품을 개선한 것이고, 그 출발점이 된 아이팟과 아이튠즈는 애플 내부의 탁월한 디자이너와 마케터, 외부 프리랜서의 아이디어, 제조 협력사 엔지니어 등이 협업을 통해 만들어 낸 것이다.


많은 문제해결 프로젝트가 실패하는 원인 중 하나는 개인이 하는 일과 팀이 하는 일은 접근방식 자체가 다르다는 점을 가볍게 다루는 것이다. 개인이 하는 일은 문제 정의, 대상 시스템 분석, 해결방안 개발, 해법 적용 및 보완 식으로 접근하면 된다. 그러나, 팀이 하는 일에는 그런 작업 외에 리더/팔로워를 포함한 멤버간 역할 분담, 문제 자체와 해법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공감, 긴밀한 의사소통과 상호 협력 등이 추가되어야 한다. 탁월한 개인이 여러 명 모이더라도 하나의 팀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올바른 해결책을 만들기 어렵다. 학문/지식별 전문가 못지않게, 때로는 그 이상으로, 프로젝트 관리 및 협업 역량을 갖춘 또 다른 전문가의 역할이 필수적인 것이다. //


#지식융합 #지식통섭 #학제적접근 #다학제 #학제간 #초학제 #융합인재 #통섭인재

keyword
작가의 이전글융합은 개방-연결-협업 프로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