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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kbo May 08. 2023

2019.06.23

천의 장막

정말 오랜만에 일기를 쓰는  같다. 트루아와 프랑스를 떠날 때가 되니 행정처리,  정리   것이 너무 많아졌다. 친구들에게 장난  진심 반으로 항상 ‘나는 3월부터 한국이 진짜 그리웠다라고 말하지만, 조금은 이곳에 정이   같기도 하다.


6월의 트루아는 낮과 밤을 구분하기 힘들다. 6시에 눈을 떠도 이미 밖은 밝아져 있고, 밤 10시에도 어둡지가 않다. 한국과는 많이 다른 풍경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 생각에 이곳에 산이 없는 것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산이 없으니까 해가 더 오래 떠 있어서 좀 더 밝은 시간이 긴 것 같다. 그래서인지 한 번씩 9-10시 사이에 밖을 나가봐도 꽤 많은 사람들이 밖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적어도 내가 살고 있는 아나톨 C205호는 한국과 낮과 밤의 시간이 크게 다르지 않다.  7-8시에 방의 불을 끄면 한국처럼 깜깜한 밤이 된다.  이유는 커튼 때문이다 (성능이 굉장히 좋다). 커튼을  올리지 않는데, 사실 원래 이유는 낮이 길어서라기보다는 창문이 워낙 커서 밖에서 안이   보이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점점 낮이  길어지면서 커튼을 올리지 않는 이유  전자의 비중이 커지게 되었다.


유럽에 거의 반년 동안 살면서 익숙해진 것이 많다. 이곳의 날씨와 사람들의 반응, 거의 무조건 차보다 사람이 우선인 문화 등 처음에는 낯선 것들이 이제는 그렇지 않다. 사실 이런 것들은 내가 노력해서라기보다는 생활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다. 생각해보면 한국과 다른 유럽의 환경이나 문화를 받아들이고 익숙해지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배제하고 내가 살아온 대로, 그리고 익숙한 대로만 생활하려고만 했다. 집 근처에 있는 4개의 큰 마트에 정말 다양한 음식과 재료들이 있지만 지난 6개월 동안 내가 사왔던 것들은 야채, 고기, 음료수, 쌀 등이 전부다. 피자를 먹고 싶었는데, 이곳은 배달 문화가 발달되지 않아 한국처럼 쉽게 집으로 피자를 주문하기 쉽지 않다. 직접 가는 방법도 있지만, 거의 하지 못하는 프랑스어로 주문하는 것이 낯설어 그냥 피자 먹는 것을 포기했다. 집 바로 맞은편에 피자가게가 있는데도 말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항상 그랬던 것 같다. 변화를 즐기거나 받아들이기보다 익숙하고 편한 것을 선호했다. 음식점이나 가게도 웬만하면 가본 곳을 선호했고, 가서도 웬만하면 먹어본 메뉴를 선호했다. 변화를 두려워한다기보다는 ‘굳이?’라는 생각과 함께 꺼려 했다. 뭐 대충 같은 말인 것 같기도 하다.


어제 UTT에 계신 한국인 교수님 댁에서 교환학생들과 함께 식사를  , 교수님께서 피자와 kfc 치킨을 시켜주셨다. 오랜만에 먹으니 정말 너무 맛있었다. 진짜 감동적인 맛이었다. ‘진작 가서 사먹을걸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얼마 전에  9시에 커튼을 잠깐 들었다가 밖이 너무 밝아서 충동적으로 산책을  적이 있다. 원래 나는 산책을 어두운 밤이나 새벽에 하는데, 자기  밝은 하늘 아래에서 하는 산책은 굉장히 색달랐다.


많은 노력을 해서 애써 온 장소가 다른 환경을 만들어줬다. 산을 없애고 낮을 길게 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굳이 커튼으로 스스로 산을 다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많이 후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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