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추조 Dec 08. 2016

최순실 게이트를 관전하며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한국에 사는 재밋거리의 하나는 다이내믹 코리아답게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뉴스다. 지난 시월 최순실 게이트가 시작된 이후에는 시시각각으로 전개되는 뉴스거리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매주 토요일 광화문 광장으로 모이는 시민들의 촛불집회가 6차를 넘으면서 모든 이슈를 삼키고는 이번 주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내달리고 있다.


막장 드라마를 능가하는 막장 현실


막장 드라마의 원조는 2008년에 방영된 '아내의 유혹'이라는 일일드라마다. 미국에 살면서 볼 기회는 없었지만 하도 소문이 요란해서 몇 차례 다운로드하여서 보았던 기억은 있다. 자살을 가장한 아내가 얼굴에 점 하나 붙이고 다른 사람을 가장해서 남편에게 복수한다는 얼토당토않은 내용이 줄거리였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40년 관계도 그에 못지않다. 뿐만 아니다. 그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최순실의 모친은 최태민의 다섯째 부인이라고 한다. 최순실의 남편이었던 정윤회는 최태민의 비서를 지냈던 인물로, 최태민이 사망한 다음 해인 1995년 최순실과 결혼했고 1996년 정유라를 낳았다. 정윤회는 전처와의 소생인 아들과 한 번도 연락하지 않고 지냈다고 전해진다. 최씨 일가는 마치 개명이 취미인 듯 이름을 수시로 바꾸는 것도 생소하기 짝이 없다.


나와 형제들과의 관계도 '콩가루 집안'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으나, 최씨 일가나 박근혜 대통령 형제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심지어 최순실의 배다른 오빠는 최태민이 최순실 자매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주장까지 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그 동생들과 법정 소송까지 벌이며 뉴스거리가 되었고, 박지만은 한때 히로뽕으로 몇 차례 구속되기도 했다. 까면 깔수록 드러나는 치부는 평범한 사람의 상식을 넘어선다.


하지만 이런 정도는 가정사의 일이니까 가십거리에 불과했다. 문제는 이런 막장이 국가운영에 그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최순실의 심복 차은택이 추천하는 인물이 장관에 임명되고, 소위 '문고리 3인방'이라고 불리는 대통령 측근 비서관이 섬기는 사람은 대통령이 아니라 최순실이었다. 학교에 출석하지 않고도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대학에서 학점을 받았으며, 교수가 학생을 대신해서 리포트를 써주기도 했다. 최순실에게 돈을 갖다 주거나 충성하면 사면도 받고 '문화계의 황태자'나 '체육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다.


미국인들에게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것이 뜻밖인 것만큼이나 4년 전 박근혜가 당선된 것도 내게는 의외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것 외에 어떤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당선된 이후에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들이 이어졌다. 특히 인사가 그랬다. 자신의 아버지 시대에 활동했던 구시대의 늙고 낡은 인물들을 요직에 중용했으며, 윤창중이나 윤진숙 같은 '듣보잡(?)' 사람들이 등용되었고, 언론은 흙 속에서 찾아낸 인물들이라고 했으나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그동안 이해할 수 없던 모든 일들을 순식간에, 그것도 한꺼번에 이해할 수 있게 해 준 것은 최순실 덕분이다. 그리고 박근혜 씨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자격미달이었지만, 그래도 약간은 맞춘 것 같아서 통쾌했다. 

고맙다, 최순실!


청문회를 보며


뉴스에 관심이 없던 예전에도 '5공 청문회'가 있었고, 지금까지 기억하는 두 가지가 의미있었다. 하나는 노무현이라는 듣보잡(?)을 처음 알게 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납품하러 보낸 직원으로부터 창고지기가 문을 안 열어준다며 온 전화였다. 대통령도 해 먹는 세상인데 담뱃값이라도 주어야 문을 열어주겠다는 억지였다.


어제 그제 이틀간 벌어진 청문회를 보고 느낀 것은, 국회가 이렇게까지 힘이 없느냐는 것과 제대로 추궁하는 국회의원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최순실 청문회에 최순실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요청된 27명의 증인 가운데 절반이 참석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는 재벌 총수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과거에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몰랐다', 현재에 대해서는 '송구하다', 미래에 대해서는 '잘하겠다'라는 천편일률이었다.


눈에 띈 것은 오히려 차은택과 고영태의 솔직한 답변 모습이었다. 피수감자인 고영태는 그렇다 치더라도 수감자인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도 비교적 성실하게 답한 반면에, 같은 수감자인 '체육 대통령'이라는 김종은 비굴하고 초라해 보였다.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그러나 눈에 보이지는 않고 허상뿐인 권력을 한풀 벗겨낸 인간의 모습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깨닫는 좋은 구경거리였다.


김기춘 씨는 역시 대단한 인물이었다. 170이 넘는 아이큐를 가진 거제가 낳은 천재는 그만큼 남달랐다. 12시간 동안 그의 표정, 말투, 자세와 태도는 흔들림이 없었다.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모르쇠로 일관했고 유리한 것은 다 기억해냈다. 누가 봐도 분명한 거짓말을 늘어놓으면서도 진지한 표정을 유지했으며 어조도 아무 변화 없이 차분했다. '왕실장'으로 불리며 대통령을 업고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자신이 저지른 악행을 인정하는 대신, 무능하고 어리석은 인물인양 태연히 연기했다. 300명 국회의원 모두가 덤벼도 그를 당해내지 못할 듯 보였다. 최순실을 모른다는 거짓 주장이 드러난 것도 시민의 제보 덕분이었다. 착각을 했다며 나이 탓을 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김똘똘'로 불렸다는 그의 악행은, 우리 현대사의 핵심일 것이다. 노태우 정권에서 그가 검찰총장이 되었을 때 읽었던 신문기사를 지금도 기억하는 이유는, 자택에서 안방에서 건넌방으로 갈 때도 넥타이를 했을 정도로 완벽을 추구했다는 이상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람을 칭송하고 싶다 하더라도 보통 엉터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군사정권이었기에 그런 기사도 가능했을 것이다.


이렇듯 뛰어난 인물이 권력의 편에 서지 않고, 국가와 사회의 정의를 위해 일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허접한(?) 생각을 잠시나마 해보았다. 유신시대에 국가보안법을 덮어씌우고 고문해서 조작했던 무고한 간첩들, 그렇게 해서 망가진 인생들에게 그는 죽기 전에 참회를 할까?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사과는 할까? 77세니까 오래 살아봤자 20년일 텐데.


<후기>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는 말이 있습니다. 최근에 보고 듣는 한국정세에 그 말을 적용시켜 보았습니다. 나라가 잠시 혼란스럽더라도, 이 사태가 진정되면 2보 전진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이 허상을 쫓았던 현실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니까요. 최소한 80%에 가까운 국민들이 무엇이 실상인지 알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종북'도 실상은 국민의 여론을 자기 편으로 돌리기 위한 허상이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치적도 유신의 허상을 숨기기 위한 과장이었으며,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과 최태민의 손짓에 따라 움직이는 '그림자놀이'에 불과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에게 북한의 의미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