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_난임극복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떨리는 마음으로 병원을 향했다. 신랑의 출근으로 인해 혼자 가야 하는 병원은 사람을 두렵게 했다. 그리고 모든 여성들은 이해할 것이다. 산부인과 가는 것이 얼마나 싫은지.
산부인과 자동문을 열고 딱 들어가는데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마하게 많았다. 제주도에 난임병원이 없기도 하지만 다른 병원의 폐업으로 이 병원으로 사람들이 몰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부터 시작이구나. 긴 기다림.
첫 시작이기 때문에 모든 게 생소했다. 의사 선생님이 뭐라 뭐라 설명을 해주셨는데 기억나는 것은 3일 후부터 주사를 맞으면 된다는 것이다. 채혈을 하고, 본디업(비타민 D) 엉덩이 주사를 맞고, 집에서 스스로 놔야 하는 주사기를 들고 나오는데 뭔가 씁쓸하다. 솔직히 어떤 기분인지 모르겠다. 주변에서, 혹은 티브이에서 보던 난임시술을 내가 한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막연한 두려움과 부담감이 한 번에 몰려왔다.
나이가 들고 결혼이 늦어지면서 결혼과 출산을 염두에 두지 않았었다. 흔히 결혼 적령기라 불리는 나이일 때, 나 역시 연애도 하고 가정을 이루는 미래를 꿈꾸기도 하였다. 하지만 결혼해야 할 나이라는 것에 휩쓸려서 쉽게 결혼을 결정하고 싶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결혼이 미루어졌다. 집에서도 30대 중반까지는 선자리도 알아봐 주시고, 결혼 얘기를 자주 꺼내시더니 30대 후반부터는 더 이상 말씀을 안 하셨다. 막내이기도 하고 언니, 오빠가 전부 결혼해서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으니 나 같은 별종 하나 정도는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하신 듯하다.
40대가 넘어가면서 결혼과 아이에 대한 생각은 접었었다. 혼자 재미있게 살 자신도 있었다. 그런데 2022년 1월 1일 운명적으로 J를 만났다. 개인적으로 너무 힘든 2021년을 보내고 22년부터는 재밌게 지내겠다는 일념으로 동호회를 가입했고, 동호회 모임장이 커피 한 잔 하며 친목을 다지자는 말에 흔쾌히 나간 자리에 J가 있었다. 이 날 이후 자주 만남을 이어가던 어느 날 그가 진지하게 만나 보고 싶다고 했다.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즐거워 나 역시 함께 하고 싶었지만 선뜻 좋다고 할 수 없었다. 그가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꿈이라고 얘기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아이가 없어도 괜찮냐고. 나는 40대라 자신이 없다고. 그는 상관없다고 했다. 그것까지 다 생각해 보고 결정한 일이라며 아이가 생겨도, 생기지 않아도 나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다며 장미꽃을 내게 안겨줬다. 이 날부터 연애를 시작하여 결혼을 하고 난임시술을 시작하는 데까지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결혼해야 진짜 어른이라는 어르신들의 말씀을 이해하게 되었다랄까. 정말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다. 거기에 난임시술까지 더해졌으니 오늘부터는 드라마틱한 삶의 시작이다.
주사를 냉장보관하라는 말에 따라 냉장보관을 하고, 호르몬이 분비되는 10시에 주사를 맞아야 약효가 있다며 신신당부를 했기에 핸드폰 알람을 10시에 맞췄다. 3일 후부터는 정말 시작이구나. 남은 2일 동안 뭐 하지? 쉬는 게 처음인 20년 직장인의 음흉한 마음이 꿈틀거린다. 주사 맞기 전에는 자유를 누리리라.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