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사람들은 나들이 계획에 들떠 있는 5월 연휴에 정말, 아무런 계획도 없고 생각나지 않아 이사하면서 헐빈해진 지갑을 채워보고자 단기, 당일 아르바이트를 찾아보았다.
남녀 무관하게 20세에서 50세까지 할 수 있다는 한 기업 물류의 택배 상차 공고를 보았고 4월 30일, 5월 1일 이렇게 양 이틀 일을 하기로 했다.
4.30
수원역 근처에서 픽업 차를 타고 물류소까지 약 한 시간 정도 이동하여 들어갔다.
낮 1시부터 11시 정도까지 하게 되었고, 새벽 인력 시장에 나가본 적은 없지만 만약 나가게 되었다면 이런 구조와 형태와, 기분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열심히 일했다. 정말.
5.1
오전 중에 따로 전화가 갈 거라는 말에 어설프게 예감은 하고 있었지만 준비 다하고 대기하는 와중에 나오지 말라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내 나름대로는 열심히 일했다고 자신할 수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이 수시로 도와주었던 걸 보면 피해를 줬던 건 사실일 것 같았다.
물건 싣는 것도 가장 늦게까지 한 조가 내가 있었던 조였는데 컨베이어 벨트에서 늦게 내려준 것도 내 영향인지는 모르겠다.
출근 차량을 타기 전 " 김실장한테 전화 안 받았어? "라는 말과 함께 걸려온 김실장 전화는 오늘 무거운 물건이 많아 여자가 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이었다.
그럴 거면 전화 언질을 주었던 반장님이 그냥 말해줘도 될 일이었을 것을..
허탈했다.
그날 그날 어떤 상품이 실리는지 그 사람들이 어찌 알겠나.
여자라서 싫다고 하는 건지, 여자에 더군다나 일까지 못하는 것 같아 싫다고 하는 건지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그게 그거, 피차 도찐 개찐일 것이다.
조금 더 속상하고 창피했던 건 꾀부림 없이 열심히, 바지런히 일했고 여자의 몸으로 현장일을 해보았다는 제멋에 개멋에 취해있었단 거다.
하려고 했던 날에 일이 취소되니 어딘가 모자란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일도 공치고 여기까지 나왔으니 한 번에 돌아가기 싫어 롯데리아에서 햄버거 세트를 사서 돌아갔다.
그리고 우적우적 씹어먹으며 나니어 연대기 3부작을 시리즈로 몰아보았다.
옷장 뒤 또 다른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어린 시절 한때는 사이좋은 오누이 동생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있을 정도로 고전 판타지이자, 오랜 시간 나의 구미와 망상, 그리고 소망을 품게 해 준 이야기였다.
늘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이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고 갈 수 있게 해달라고 바랐다.
그때는 UFO, 미스터리에 관한 방송도 많았고 서적도 넘쳐나던 시절이었는데 돌아오지 않는 실종 아이들이 다른 차원의 세계로 넘어갔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아직도 의심 없이 믿고 싶어 진다.
어른이 된 아이들이 차례차례 나니아 세계에 안녕을 고할 때 울고 싶어 졌다.
아슬란은 부드럽게 등을 밀어주며, ' 이제 다 컸으니 나니아에 돌아 올 수 없단다 ' 라고 말했다.
나는 원해서 자라난 게 아니다.
돌아 갈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시간이 흐르지 않는 유년 시절 어느 한 곳으로 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