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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곰살곰 Oct 24. 2022

세상 하나뿐인 옷을 입히다.

단열작업

추위를 유독 많이 타는 나는 주택의 단열 문제를 들을 때마다 남편에게 걱정 가득한 말을 했었다. 남편은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신경 써서 단열작업을 할 테니 너무 걱정 말라며 나를 안심시키곤 했다. 이런 남편이 선택한 단열 방법은 다음과 같다.  

   

집의 한 벽면이 도로 경계와 바로 붙어 있어서 외단열을 할 수 없는 사정으로 인해 내단열로 결정

각 방을 박스 형태로 바닥/천장/벽면을 모두 단열

외벽과 마주하는 벽면과 천장은 100mm 비드법(EPS) 2종 2호 단열재

내벽면은 50mm EPS 2종 2호와 30mm 압출법(XPS) 1호

바닥은 75mm EPS 2종 2호 선택     


맘 같아서는 모두 100mm 두께로 뒤집어 씌우고 싶었으나 단열재+목 상 작업(30mm)+석고보드(9.5mm) 작업을 했을 때 줄어드는 면적이 너무 많아 그러지 못했다고 한다. 

 

급하게 잡힌 방통 일정 때문에 부랴부랴 단열재를 신청했다. 단열재의 부피가 워낙 크기에 소요될 단열재를 모두 쌓아 둘 곳이 없어 바닥과 벽면 일부에 사용할 단열재만 1차로 납품받기로 하였는데 업무 처리하는 직원의 착오로 인해 모두 한꺼번에 도착했다. 셀프 리모델링은 기술적인 부분도 어렵지만 어떤 자재를 선택할지에 대한 고민부터 배달되어 온 자재를 옮기는 과정도 쉽지 않다.    

부부가 오래된 집을 사서 하나하나 직접 고쳐간다는 말을 들은 업체 사장님은 화물비를 무료로 해주었다. 남편은 그런 사장님의 성의도 있고 다시 돌려보낼 경우 실수한 직원이나 배송하는 직원이 힘들어질 수 있다며 다시 돌려보내지 못했다. 덕분에 어두워지기 전 집 안으로 옮기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1층 2층 빈 곳에 정신없이 적재하느라 발 디딜 틈도 없었다. 바로 사용할 것과 방통 후 사용할 것을 분류하고 방통 후 사용할 것은 비닐로 포장하는 등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정신없었던 그날의 힘겨움은 아직도 생생하다.        

바닥에 단열재를 놓기 위해 고르게 수평 작업부터 시작했다. 반듯한 판재에 수평계를 글루건으로 붙인 후 수평을 봐가면서 작업한다. 어느 정도 수평을 맞춘 후 두툼한 비닐을 2겹으로 깔아 주었다. 오래된 주택이어서 바닥 전체에 콘크리트 통기초가 아니라 벽이 세워지는 부분만 기초가 되어있고, 방바닥 부분에는 황토가 깔린 후에 모래로 다짐이 되어 있는 상태여서 습기가 많이 올라왔다. 이런 습기를 제대로 막지 못하면 여기저기 곰팡이 천국이 되기에 비닐을 깔았다. 비닐이 만나는 곳은 유리테이프로 붙여 준다.        

비닐을 깔고 난 후 그 위에 단열재를 놓고 최대한 밀착시켜가며 이음매 부분을 테이프로 붙여준다. 바닥 단열재를 100mm 하지 못한 것은 기존의 거실 창틀, 출입문 등을 감안했을 때 바닥 높이가 너무 높아져 100mm 단열재를 사용 못했는데 남편은 단열재의 수축을 감안해 50mm 두께의 단열재를 2겹으로 서로 교차되게 시공하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을 전해오기도 했다.    

바닥면과 맞닿아 있는 벽면에 단열재를 붙이기 위해서 우레탄 폼본드를 사용했다. 우레탄 폼과 우레탄 폼본드는 주택 수리하면서 지금도 계속 사용하고 있는데 둘 다 15도 이상의 날씨일 때 작업성이 좋다. 사진의 단열재 작업을 하는 시기가 1월 한겨울이었기에 너무 힘들게 작업했던 것이 떠오른다.    

나의 듬직함이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은...

단열재를 고정하는 디스크 화스너를 화스너 타정기로 고정하면 누르고 있지 않아도 빠르게 작업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목작업을 하면서 에어타카를 이용하여 벽면에 고정을 해봤던 남편이 우리 집 벽돌은 오래되고 건조가 많이 되어서인지 부서지는 게 많다며 가능한 타카 작업은 벽에 직접적으로 하면 안 되겠다고 해서 일일이 하나하나 손으로 눌러가며 고정을 해야 했다. 

부엌에 싱크대가 놓일 부분은 미리 오수배관과 수도배관을 설치하였다. 수도는 나중에 PB배관을 이용해서 설치할 것인데 PB배관을 인입하기 위해서 22mm CD주름관을 깐다. 까만색의 주름관에 나중에 수도관을 넣어서 뽑아낸다고 한다. 이때는 그게 무슨 말인가 했는데 나중에 남편이 하는 작업을 보고 나서야 이해했다.    

어찌 되었든 이런 식으로 바닥에 단열재를 넣고 이음매 테이프 작업을 하며 방통 하기로 한 날의 새벽까지 작업은 이어졌다.    

방통이 맞닿는 아래쪽 부분의 벽면도 단열재 작업을 하고 은박매트를 깔아 주는 등 방통 사전작업을 완료했다. 은박매트는 수량 계산을 잘못해서 꼼꼼하게 빈틈없이 덮지를 못했다.    

남편이 꼭 해보고 싶다던 엑셀 배관작업은 계약된 방통 일자가 하루 앞으로 다가와서 어쩔 수 없이 전문가를 섭외하여 맡겼다.   

작업 당일, 딱딱한 엑셀 배관을 고정하기 위해 와이어 메쉬 철망을 미리 깔고 난 후에 엑셀 배관이 꼬이지 않게 풀어주는 장비에 엑셀관을 넣고 풀어가면서 깔아가는데 괜히 전문가가 따로 있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오후에 방통팀이 와서 크랙을 방지하고 엑셀 배관이 들뜨지 않도록 차광막을 설치한 후 방통 작업을 시작했다. 정신없던 방통 작업을 마치고 영하권의 날씨에 시멘트가 얼지 않도록 열풍기를 대여해서 틀었다. 소음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니어서 평소 조용한 남편은 동네분들이 뭐라 하지 않을까 걱정이었던 대포 같은 열풍기는 이젠 다시 보고 싶지 않다.    

방통이 끝나고 2차 단열작업에 이어졌다. 방학이라 시간이 많아진 아이가 엄마, 아빠를 보러 집에 들렀던 어느 날, 단열재에 우레탄 폼본드를 바르고 있는 아빠를 보더니 재미있겠다며 관심을 보였다. 아빠에게 우레탄 폼본드를 바르는 방법을 배우더니 이내 여기저기 하트를 그리기 시작한다.    

처음 보는 낯선 풍경일 텐데 해보고 싶다며 팔을 걷어붙이는 딸아이는 비타민이 되어주었고 작업에 있어서는 꼼꼼하고 정확한 것을 추구하는 남편이 손이 더 가는 딸아이의 작업에도 미소만 짓는 모습이 더해져 훈훈한 풍경이 되었다.

      

아빠의 사랑을 느껴서일까. 우레탄폼도 쏘고 단열재를 붙여서 고정하는 작업을 도와주던 딸아이로 인해 작업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도와주니 진행이 정말 빨라졌다는 이야기에 아이는 작업복까지 갖춰 입고 본격적으로 동참하기 시작했다.    

추운 날씨에도 귀여움 발산하며 힘을 주던 딸아이에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천장에 단열재를 붙이는 작업은 벽에 붙이는 일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다. 난생처음 해보는 단열재 부착이었는데 직접 해보니 여간 까다로운 공정이 아니었다. 우레탄 폼 본드는 단열재에 도포한 후 바로 붙이면 폼본드가 사그라져 접착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그래서 끈적거려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접착할 곳에 붙여야 하는데 붙이고 나서도 완전히 고정될 때까지 누르고 있어야 한다. 수분을 공급하면 접착력이 더 높아지기에 물분무기를 이용하여 단열재와 천장 또는 벽면에 미리 물을 뿌려주며 작업을 했다.

     

무엇보다도 천장에 단열재를 붙일 때 고정될 때까지 누르는 작업은 정말이지 힘들었다. 손으로 누르고도 있어보고 팔이 아파 머리로 받쳐도 보고 남편이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벌을 섰는지 모른다. 하늘을 받치고 있다는 아틀라스 신의 고통이 생각날 정도였다.   

천장에 단열재를 붙이기 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을 많이 했었다. '왕자 행거'를 이용해서 단열재를 지지하는 모습도 봤는데 유효 길이가 280cm 정도라 우리 집 층고와는 맞지 않았고 가격도 그다지 싸지도 않아서 그냥 패스했었다. 그런데 작업이 너무 힘들다 보니 그냥 구매해서 아래쪽에 단열재를 받치고 지지해볼까라는 고민을 했던 기억도 난다. 다행히 몸이 힘드니 머리가 방법을 찾아냈다. 단열재로 기초단을 높이 쌓은 후 단열재를 이용해서 받쳐주니 받치는 면적도 크고 편해졌다. 그야말로 신세계가 열린 기분이었다.  

   

단열재 부착 후 단열재 사이의 틈도 우레탄폼으로 꼼꼼하게 메워주었다. 작업 보조와 분위기 업~ 역할까지 담당했던 딸아이가 또 다른 즐거움을 만들기 시작했다. 단열재가 붙길 기다리는 시간의 지루함을 그림으로 채우기 시작한 것이다.    

벽에 붙어있는 단열재는 아이의 도화지가 되었고, 어두운 회색빛은 아이의 손끝으로 인해 세상에서 하나뿐인 단열재가 되어갔다.  

      

아이가 그려놓은 그림을 보던 남편이 어느 날 펜을 들었다. 딸아이가 오면 놀라게 해 주겠다며 아이가 얇은 펜으로 그린 그림을 진하게 덧대더니 갑자기 스마트폰을 빼서 이미지를 검색하여 아빠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남편의 재치 가득한 그림이 한쪽 벽면에 채워졌고, 재치 있는 문구로 더욱 빛을 발하는 아빠의 그림을 볼 아이의 반응이 궁금해졌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아빠의 그림에 답 하는 딸아이의 재치 가득한 그림에 웃음꽃이 피었다.     

단열재 작업이 마무리되고 목공 작업을 하기 전 부녀의 재치와 솜씨가 가득한 시간을 사진으로 남겨놓았다. 훗 날 시간이 흘러 이 집에 살게 될 누군가가 집을 고치기 위해 석고보드를 떼어냈을 때 숨겨진 그림을 발견하면 어떤 기분일까?

     

조용하다 싶으면 어디선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딸아이를 보는 일은 피로회복제였고 아이가 그린 그림에 담겨있는 이야기를 상상해보는 시간은 힘겨운 집수리 시간 속 또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목작업이 진행되면서 좁아진 단열재는 아이에게 또 다른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 아이와 함께한 시간을 담는 지금도 그때가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처음엔 남편의 단열작업 방법을 보며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아내를 위한 남편의 눈높이 설명이 이어졌다.      

"자기야 한 겨울에 추워서 오리털 점퍼를 입었어요. 그런데 그 점퍼에 팔 부분은 없다고 생각해봐요. 아무리 두껍고 좋은 옷이라고 해도 제대로 보온이 안 되겠죠? 그런 원리라고 보면 돼요. 집 전체를 박스라고 생각하고 빈틈없이 감싸야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열 손실이 커져서 단열 효과가 떨어지는 거죠 “

     

남편의 꼼꼼한 시공과 아이의 손길이 깃들어 있는 단열재라 더욱 단열효과가 뛰어난 것 같다. 사실 남편의 단열 방법을 들은 주위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지인이나 직접 시공하는 업체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정보를 찾고 공부해가며 주위의 이야기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을 선택했다. 이사 후 첫겨울을 나며 보일러를 조금만 돌려도 따뜻해지는 집안 공기에 힘들었던 시간보다는 남편의 선택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더불어 따뜻한 공기만큼이나 훈훈했던 풍경이 떠오른다. 딸아이 역시 그날의 기억이 종종 떠오르는 것 같다.

      

"엄마, 우리가 그린 그림은 잘 있겠죠?" 

    

이제는 석고보드와 벽지로 마감되어 보이지 않지만 그림에 담긴 희로애락은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엄마,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이 집은 못 팔 것 같아요."     


자신의 노력이 깃든 집을 대하는 딸아이의 이야기에 고단했던 시간이 뿌듯함이 되었다.


직접 집을 고쳐가는 시간이 쉽지는 않았지만 셀프 리모델링으로 인해 가장 힘들었던 건 아이들이었다. 한창 예민한 나이에 개인적 공간은 꿈에도 못 꾼 채 불편함을 감수한 아이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다. 살면서 늘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일 중 어떤 시간을 더 의미 있고 크게 기억하며 내 삶의 방향 속에 넣을 것인지는 본인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본다. 다행히도 우리 아이들은 또 하나의 경험으로 그 시간을 기억해주고 있어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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